미·중 반도체 전쟁의 최대 피해자 된 한국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7.16 08:05
  • 호수 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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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갈륨·게르마늄 수출 통제” 조치, 美 아닌 칩4 동맹 겨냥한 것
발등에 불 떨어진 한국, 中 대체할 광물 수출 파트너 찾아야

7월9일 중국 베이징 도심에 자리 잡은 주중 미국대사관에서 6일부터 중국을 방문 중이던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귀국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가졌다. 옐런 장관은 7월7일 리창 중국 총리를 비롯, 허리펑 재정담당 부총리, 류쿤 재정부장 등과 잇달아 회담을 가졌다. 방중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옐런 장관은 “중국에 대한 디커플링(decoupling)을 추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디커플링’은 산업망이나 공급망에서 특정 국가를 배제하는 정책을 가리킨다. 미국은 지난 수년 동안 중국에 대한 반도체 디커플링 정책을 취해왔다.

그런데 지난 5월 G7 정상회의를 전후해 정책 기조가 바뀌기 시작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정상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중국과 디커플링하려는 것이 아니다”면서 “위험을 디리스킹(de-risking)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다변화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바이든 대통령이 들고나온 ‘디리스킹’은 중국으로 인해 발생하는 안보 위험의 제거를 가리킨다. 이에 대해 중국은 “디커플링이든 디리스킹이든 모두 중국을 적대시하는 정책”이라면서 잔뜩 경계해 왔다. 그래서인지 옐런 장관은 방중 내내 중국을 설득하기 위해 애를 썼다.

옐런 장관은 “디커플링은 미·중 양국에 재앙이 될 것이고 세계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실행할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디커플링과 공급망 다양화는 분명히 다르다”면서 미국의 첨단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막는 디리스킹을 해나갈 것을 밝혔다. 옐런은 지난 6월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에 이어 미국 최고위 관료로는 올해 2번째로 중국을 찾았다. 이로써 지난 2월 중국 정찰풍선의 미국 영토 침입 사건으로 경색됐던 미·중 관계는 확연한 해빙 무드로 들어섰다. 옐런 장관이 공식 석상에서 2번이나 중국에 대해 디커플링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AFP 연합
7월8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열린 회담에서 옐런 미국 재무장관(왼쪽)과 허리펑 중국 부총리가 악수하고 있다. ⓒAFP 연합

美·日·대만은 中 수출 통제 영향 별로 안 받아

그러나 옐런 장관을 맞이하는 중국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7월3일 중국 상무부는 “8월1일부터 갈륨·게르마늄과 그들의 화합물을 수출 통제 대상으로 한다”고 발표했다. 향후 이 광물의 수출을 위해서는 상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수출업자는 해외 구매자에 대한 자세한 사항을 보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무부는 이 조치가 “중국의 국가 안보와 이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즉, 갈륨과 게르마늄의 수출 통제를 자국을 위한 무기로 이용하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갈륨과 게르마늄이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핵심 광물이기 때문이다.

갈륨은 전송 속도와 효율을 높이기 위해 화합물 반도체, TV와 휴대전화 충전기, 태양광 패널, 레이더, 전기차 등에 사용된다. 특히 비화갈륨은 실리콘보다 열과 습기에 강하고 전도성이 높아 첨단 반도체 소재로 쓰인다. 게르마늄은 광섬유 통신, 야간투시경, 인공위성용 태양전지 등에 사용된다. 두 광물은 다이아몬드 결정격자구조를 가져 전 세계적으로 생산량이 적다. 무엇보다 중국이 갈륨과 게르마늄 생산과 공급을 거의 장악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연구에 따르면 현재 중국은 갈륨과 게르마늄 세계 공급량의 각각 94%, 83%를 차지한다.

그런데 중요한 건 중국의 이번 수출 통제 조치는 미국을 직접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지난 수년 동안 미국이 펼쳤던 반도체 디커플링 정책의 핵심이었던 ‘칩(Chip)4’ 동맹을 겨냥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갈륨과 게르마늄을 비롯한 실리콘, 안티몬화 인듐 등 반도체 재료 광물의 최대 소비국이 대만, 중국, 한국이기 때문이다. 6월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세계 반도체 재료 소비시장 규모는 727억 달러였다. 대만이 200억 달러어치를 소비해 13년 연속 1위 자리를 지켰고, 한국은 129억 달러로 3위였다.

대만은 미국이 지난해 출범시킨 칩4 동맹에 일본과 함께 먼저 참여했다. 한국도 같은 해 12월 참여를 공식 선언했다. 중국은 미국의 글로벌 반도체 동맹이 있는 한 디커플링 정책은 변함이 없다고 보고 있다. 중국의 이런 우려는 기우가 아니다. 6월30일 네덜란드 정부가 자국의 반도체 노광장비 제조업체 ASML이 생산하는 심자외선(DUV) 노광장비의 중국 수출 승인 요구조건에 대한 새로운 규정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2019년부터 네덜란드는 미국의 요구에 따라 ASML이 생산하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의 중국 수출을 금지했다.

EUV 노광장비는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해 10월 미국이 발표한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와 장비의 수출 통제규정에 따르면, 첨단 반도체는 △28나노미터 이하 로직 반도체 △18나노미터 이하 D램 △128단 이하 낸드플래시 등을 가리킨다. 그동안 네덜란드는 28나노미터 이상을 생산할 수 있는 DUV 노광장비에 대해서는 수출을 금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수출 금지를 예고했고 9월부터 실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DUV 노광장비마저 확보하지 못하면, 중국은 자동차와 스마트 가전용 반도체 생산에 타격을 받는다.

그렇기에 중국의 위기감은 더욱 고조됐다. 따라서 네덜란드의 발표 며칠 후에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 통제를 발표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를 과거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면서 무기화했던 사례와 비교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당시와 전혀 다르다. 중국이 희토류를 무기화한 것은 2010년 일본과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영토 분쟁을 벌이면서였다. 중국은 희토류의 대일 수출을 제한했지만, 지금처럼 사전에 공지하거나 “국가 안보와 이익”을 내세우지 않았다. 

문제는 갈륨과 게르마늄의 수출 통제가 시행돼도 미국은 타격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에는 적지 않은 갈륨과 게르마늄이 매장돼 있고, 1984년에 전략자원으로 분류해 비축해 놨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당장 갈륨과 게르마늄을 써야 할 한국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재료 광물을 확보하지 못하면 반도체 생산라인이 돌아갈 수 없다. 중국의 노림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원천기술과 설계는 미국이, 장비와 부품, 재료 가공은 네덜란드와 일본이, 완제품은 한국과 대만이 생산하는 미국 중심 글로벌 반도체 생산망의 틈새를 파고들어 공격한 것이다.

 

철저히 경제적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미·중

따라서 이런 상황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볼 나라는 단연 한국이다. 중국은 대만을 자국의 일부로 보기 때문에, 대만에 대한 반도체 재료 광물의 수출을 제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대만 반도체 기업들도 오랜 기간 중국 기업과 끈끈한 협력관계를 맺어온 안전판이 있다. 그에 반해 한국 업체들은 중국을 대체할 광물 수출 파트너를 찾아야 하는 등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게다가 DUV 노광장비의 중국 수출이 막히면, 중국 현지공장 운영에 큰 차질을 빚게 된다. 현재 삼성전자는 시안에, SK하이닉스는 우시와 다롄에 대규모 공장을 두고 있다.

달리 주목할 점은 미국이 중국에 대한 반도체 정책을 디리스킹으로 전환한 배경이다. 이는 칩4 동맹을 결성한 취지가 퇴색되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의 태세 전환은 철저히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다. 7월8일 미국 뉴욕타임스는 “세계 반도체 매출의 3분의 1을 중국이 차지하기에 일부 미국 반도체 기업의 매출 60~70%가 중국에서 나온다”고 보도했다. 이런 현실로 인해 지난 5월 중국 당국의 제재를 받은 미국 마이크론은 6월에 6억 달러의 대중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따라서 향후 미·중은 주판알을 튀기면서 반도체 전쟁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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