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대한민국은 그렇게 바보가 되고 말았다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8.12 16:05
  • 호수 1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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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대회’로 변질된 새만금 잼버리대회 
국민 자부심에 찬물 끼얹은 전·현 정부, 성찰 없이 또 ‘네 탓’만 반복

“전라북도 새만금은 대한민국의 의지와 도전정신이 푸른 바다 위에 새롭게 일궈낸 희망의 땅이다.” 2015년 당시 송하진 전북지사가 2023년 세계잼버리대회 유치에 나서면서 했던 말이다. 그때 송 지사는 “새만금 청년드림과 미래 백지의 땅에서 세계 청년들의 꿈과 희망을 무한대로 그려 넣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8년 후 새만금에서 열린 잼버리대회는 정상적인 야영이 불가능한 상황을 맞았고, 느닷없는 ‘관광대회’가 되고 말았다. 세계스카우트연맹의 야영장 철수 결정은 태풍 때문이었다고 하지만, 기초시설조차 갖추어지지 못한 야영장으로 새만금은 ‘희망의 땅’이 아닌 ‘고통의 땅’으로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결국 관광으로 ‘땜질’할 것이면 대체 새만금 잼버리대회 준비에 뭣 하러 1171억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었던 것인가.

‘청년들의 꿈과 희망’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폭염에 따른 온열질환, 배수조차 되지 않는 야영장에 몰려든 해충들의 공격, 화장실과 샤워장 같은 기초시설조차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데 따른 ‘청년들의 고통’이 가득했다. 이번 잼버리대회 사태는 대한민국이 이젠 선진국이라고 믿고 있던 국민의 자부심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무려 8년이 넘는 기간 동안 준비했는데도 화장실과 샤워장 하나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니. 폭염의 한복판 텐트 속에서 대체 어떻게 지내라고 나무 그늘 하나 없는 허허벌판을 대회장으로 결정한 것이었을까.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광경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목격되었으니 대회 참가자들은 물론이고 국민이 받았던 충격 또한 간단할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사용한 예산 가운데 740억원이 인건비를 중심으로 한 운영비로 사용되었고, 정작 야영장 조성에는 395억원만 지출되었음이 밝혀졌다. 관계기관 공무원들은 8년간 새만금 잼버리를 명목으로 99번의 해외출장을 다녀왔음도 알려졌다. 세계잼버리대회를 개최한 적도 없는 이탈리아와 스위스는 왜 갔는지 알 수 없다. 그 많은 예산을 투입한 대회가 왜 그 모양이었는가라는 국민적 의문에 대해서는 앞으로 엄정한 조사가 따라야 할 것이다. 국가적 망신거리가 된 이번 사태의 과정을  따져보고 책임의 소재를 가려야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성찰은 없이 또다시 ‘네 탓’ 공방으로만 치닫는 여야 정치권 모습은 지켜보기에 불편함을 넘어 지겹고 분노스럽다.

ⓒ시사저널 임준선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서 조기 퇴영한 우크라이나 스카우트들이 8월8일 인천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연세대 국제캠퍼스에 도착해 짐을 찾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사과 먼저 하고 상대 당을 비난하는 게 순서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에 사태의 책임이 있음을 부각시킨다. “잼버리대회는 문재인 대통령의 첫 수석비서관급 회의에서 얘기가 나왔던 부분이고, 일사천리로 특별법까지 통과시켰다. 또 민주당 소속 전·현직 도지사들이 집행위원장을 해왔다”면서 “책임소재를 굳이 따지자면 문재인 정부와 전북도에 있다”는 것이 국민의힘의 주장이다. 애당초 야영장으로 부적절한 새만금에 대회를 유치한 민주당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에 ‘원죄’가 있음은 사실이지만,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부 또한 제대로 점검하고 대비하지 못한 책임에 몸을 낮춰야 마땅하다. 

반대로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반박한다. “정부의 무책임이 부른 예고된 참사”임에도 “윤석열 정부는 ‘남 탓’으로 열심히 책임 회피에 매진 중이다. 정말 뻔뻔한 정부”라는 것이다. 민주당은 “지금 윤석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 있게 수습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물론 윤석열 정부가 정권을 맡은 이후 점검과 폭염 대책 수립을 소홀히 했음은 드러났지만, 그렇다고 민주당이 마치 남의 일인 양 상대 탓만 하는 건 볼썽사납다.

‘네 탓’만 하는 정쟁 상황에서 이원택 민주당 의원의 진단은 그나마 합리적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대회 준비 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던 이 의원은 “기반시설을 구축하는 것은 아무래도 문재인 정부가 역할을 했어야 하는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문재인 정부 같은 경우 전기·통신 인프라를 깔거나 도로를 깔거나 부지 매립 등 기반시설을 조성하는 것인데 이런 부분에 대한 상호관계 평가는 분명히 필요해 보인다”며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물론 이 의원은 “폭염(대책)은 그늘막을 설치하거나 냉풍 장치를 주거나 생수를 공급하거나 대집회장에 에어컨 설비를 하는 것 등인데, 이런 것은 충분히 윤석열 정부하에서 판단하고 실행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이게 잘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은 윤석열 정부도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역시 민주당의 이상민 의원도 “전 정부든, 전북도든, 현 정부든 전체를 다 성역 없이 조사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서 “민주당 정부가 들어섰던 문재인 정부 때의 치부를 그냥 감추거나 변명하거나 또는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면 민주당도 신뢰를 구축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는 새만금 잼버리대회 유치 후 부지 매립과 배수시설 등 기반시설을 구축했어야 했고, 민주당의 지방정부였던 전북도는 화장실·샤워장 같은 각종 편의시설들을 제대로 준비했어야 했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는 정권을 맡은 후 중앙정부 차원에서 준비 상황을 점검하고 특히 폭염에 대한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와 전북도는 대회 유치 이후 대체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는 결과를 드러냈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의 여성가족부 장관은 국정감사장에서 “물론이다. 태풍·폭염에 대한 대책을 다 세워놓았다”고 큰소리만 치다가 이런 결과를 방치한 꼴이 되었다. 여야 어느 쪽도 잼버리대회 파행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먼저 자신들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성찰하고 사과라도 한 후에 상대 쪽의 책임을 비판하는 것이 순서다.

 

돈 쏟아붓고 애들 고생시키고 나라는 망신거리

필자는 새만금 잼버리대회가 파행길로 치닫고 나서야 새만금 사업이 초래한 갯벌의 죽음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를 봤다. 영화의 제목 ‘수라(繡羅)’는 ‘아름다운 비단에 놓은 수’라는 뜻이다. 그러나 아름다웠던 갯벌은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라던 수많은 생명이 죽어가는 ‘아수라(阿修羅)’의 세계가 되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지금 우리가 새만금 잼버리대회 책임을 놓고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벌이는 정쟁만 바라보고 있을 일은 아니다. 애당초 오직 면적이 넓다는 이유만으로 새만금에서 대회를 치르고자 했던 사람들의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세계 청소년들이 가장 좋은 환경에서 대회를 치르도록 하는 목적이었다면 나무 한 그루 없는 허허벌판을 밀어붙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결국은 잼버리대회를 구실 삼아 ‘돈 먹는 하마’가 된 새만금의 갯벌 매립을 계속하려던 이해당사자들, 그리고 잼버리대회를 내세워 새만금 공항, 새만금 고속도로 같은 SOC 사업들을 확보하려던 욕심이 낳은 재앙이었다. 기존 매립지도 아닌 ‘해창 갯벌’을 굳이 새로 매립해 배수가 더욱 어려운 최악의 조건을 자초한 이유도 그런 것이었다.

그러니 새만금 사업을 홍보하고 계속하는 대가로 우리가 얻은 것은, 돈은 쏟아붓고 아이들은 고생시키고 나라는 망신거리가 된 상황이다. 2023년 8월, 대한민국은 그렇게 바보가 되고 말았다. 부실투성이의 새만금 잼버리대회가 남긴 상처는 우리에게 두고두고 남게 되었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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