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통한 ‘범죄의 전염’이 낳은 참극 [임명묵의 MZ학 개론]
  • 임명묵 작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8.14 10:05
  • 호수 1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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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홍콩 쇼핑몰 묻지마 살인, 온라인 네트워크 타고 7월 신림역·8월 서현역 사건으로 이어졌을 수도

폭우가 끝나고 끓는 듯한 폭염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폭염 속에서 섬뜩한 소식들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7월21일에는 서울 신림역에서 묻지마 칼부림 사건이 발생해 1명이 죽고 3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 후 ‘신림역에서 나도 같은 범죄를 저지르겠다’는 식의 게시글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등장했다. 약 10건이 입건되어 일부 피의자는 구속되기도 했다. 이러한 범죄 예고 행태는 신림역 사건으로부터 2주 남짓 후에 발생한 서현역 칼부림 사건으로 불행하게 현실화되기도 했다.

최근 묻지마 칼부림이 단순히 신림역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서현역에서 일종의 연속적 사건이 될 수 있음이 드러나면서, 대한민국 전역이 묻지마 범죄와 흉기 난동으로 인한 공포에 휩싸였다. 서현역 사건이 발생하고 하루밖에 지나지 않은 8월3일에는 고속버스터미널역에서 흉기를 소지한 20대 남성이 체포되는 일이 발생했다. 4일에는 용인시에서 역시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린 40대 남성이 체포되었다. 온라인에는 신림역 사건 이후보다 훨씬 더 큰 기세로 살인이나 범죄를 예고하는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8일 오전까지 경찰에 검거된 인원만 67명이었다. 절반 이상이 10대 청소년들의 ‘장난’으로 밝혀졌지만, 서현역 사건의 범인도 범죄 예고 게시글을 올렸기 때문에 하나라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갑작스럽게 폭발한 흉기 난동의 원인은 무엇일까? 사실 원인 자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분석이 이루어져 왔다. 물론 묻지마 범죄의 동기나 범죄자들의 특성에도 일반화하기 어려운 복잡한 면모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체로 대도시 환경에서 사회적으로 고립된 이들이 사회를 향한 자신들의 분노를 폭력적인 방식으로 각인시키려고 하는 것이 묻지마 범죄의 주요 원인인 듯하다.

‘서현역 흉기난동’ 피의자 최원종(22)이 8월5일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묻지마 범죄 현장, 인터넷 전역으로 전파돼

그리고 최근 묻지마 범죄에도 결국에는 인터넷의 영향력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을 서로 연결해 주는 도구인 인터넷은 역설적으로 현실의 사회적 관계를 맺지 않고 살 수 있게끔 도와주며 고립 인구를 크게 늘렸다. 이런 상황에서 인터넷을 통해 오가는 자극적인 메시지·영상·이미지들은 사회적 전염을 일으키는 강력한 매개가 되었다. 2018년 전후로 스리랑카나 미얀마에서 발생한 민족 갈등과 폭동에 페이스북이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인터넷이 얼마나 사회적 전염을 빠르게 촉진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였다. 올해 여름에 일어난 범죄 및 그 예고 또한 마찬가지다. 서현역 사건의 범인은 어쩌면 다른 때 범행을 저지를 수도 있었겠지만, 8월2일 구태여 범죄를 저지른 이유에는 2주 전에 있었던 신림역 사건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이 두 사건에 자극받아 인터넷을 메운 범죄 예고 게시글들은 말할 것도 없다. 묻지마 범죄의 동기에는 금전적 이익도 없고, 범인들이 처벌을 피하려 하지도 않기 때문에 범죄 소식이 주는 사회적 전염 효과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물론 범죄에 대한 보도는 신문·라디오·TV의 시대에도 있었고, 그러한 레거시 미디어도 묻지마 범죄의 전염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러나 레거시 미디어 시대는 어떤 것을 보도하고 전달할지를 정보 공급자가 통제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오늘날과는 달랐다. 오늘날에는 스마트폰으로 직접 촬영한 영상들부터 범행 현장을 담은 CCTV 영상까지 무수한 자료가 인터넷 공간을 떠다니며, 이 흐름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신림역 사건이나 서현역 사건의 경우에도 범인이 갑작스럽게 나타나 피해자들을 향해 흉기를 휘두르는 장면이 고스란히 촬영되어 인터넷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이는 사회 전반적으로는 일상의 공간에서도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퍼트려 사람들을 위축시킨다. 신논현역에서 BTS 팬들이 공연 영상을 보다가 갑작스럽게 소리를 지르면서, 이를 흉기 난동이나 테러로 오인한 승객들이 대피 소동을 벌인 것이 대표적인 예다. 무엇보다 그러한 범죄 이미지와 영상에 실제 자극받아 자신이 사회에 공포를 각인시킬 수 있다고 믿게 되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가장 위협적일 테다.

게다가 이러한 사회적 전염이 국경을 넘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은 앞으로 더욱 큰 위협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흐름의 시발점이 된 신림역 사건의 범인 조선은 범행 전에 홍콩 쇼핑몰 묻지마 살인 사건을 검색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범행 현장이 드러난 CCTV 영상으로 유명했었다. 이런 이유로 조선이 홍콩 쇼핑몰 사건을 염두에 두고 모방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언급되기도 했다. 실제로 그렇다면, 6월의 홍콩 사건이 온라인 네트워크를 타고 7월의 신림역 사건과 8월의 서현역 사건까지 이어지는 흐름에 포함되는 셈이다.

ⓒ시사저널 박정훈
연이은 흉기난동 사건 발생과 살인 예고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던 8월7일 서울 강남구 강남역 앞에 경찰특공대와 전술장갑차가 배치돼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인터넷에 유통되는 자극적 정보들 통제해야 

실제 범행뿐이 아니라 창작 미디어도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2021년 10월에는 일본 도쿄의 지하철에서 흉기난동 방화 사건이 벌어졌는데, 범인은 미국의 유명 캐릭터인 ‘조커’ 복장을 하고 있었다. 《다크 나이트》나 《조커》 등 영화에서 조커는 폭력을 통해 세상에 혼란을 가중하는 카리스마적 범죄자로 묘사되곤 한다. 영화의 주제 의식이나 캐릭터의 이미지가 워낙 시대를 잘 담아내 역설적으로 시대를 만들어가고 있는 사례가 된 셈이다.

온라인을 통한 사회적 전염은 흉기난동에서 그치지 않는다. ‘베르테르 효과’로 유명한 자살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올해 4월에는 일본에서 여고생 둘이 라이브 방송을 송출하면서 동반 자살해 이슈가 되었다. 그 직후 한국에서도 디시인사이드의 우울증 갤러리 이용자였던 여고생이 역시 방송을 송출하며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어쩌면 선하고 긍정적인 사회적 전염보다는 자극적이고 파괴적이며 폭력적인 이미지와 영상들이 더 사회적 전염 효과를 확실하게 일으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최근의 사건들은 인터넷에 유통되는 이러한 자극적인 정보들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를 둘러싼 논의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미지와 영상이 국경을 넘어 초국적으로 흘러가니 당연하게 해법도 초국적이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인터넷과 각종 SNS 플랫폼이 새로운 세대로 올수록 ‘공기와도 같은’ 것이 된 오늘날에는 더더욱 그렇다. 물론 앞으로의 시대를 위한 인터넷 거버넌스를 어떻게 도출할 것인지, 그리고 도출되기 이전에는 어떻게 혼란의 전염을 다스려야 하는가라는 골치 아픈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다만 개인으로서는, 부정적인 사회적 전염에 영향을 받지도 주지도 않기 위해 자극적인 자료를 굳이 찾아보지 않고, 또 굳이 전달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 현재로서 합의할 수 있는 그나마의 답일 것이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임명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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