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붙은 ‘이념 논쟁’, 與 ‘총선 전략’ 아닌 ‘尹의 신념’?
  • 변문우 기자 (bmw@sisajournal.com)
  • 승인 2023.08.29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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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연일 ‘공산 세력’ 직격 메시지…정율성·홍범도 ‘이념 논쟁’도 가열
“‘보수집결’ 총선 전략” 분석…‘역사관 바로 잡자’ 尹 의중 반영 주장도

정치권에 때아닌 ‘이념 논쟁’이 일파만파 확산하는 모습이다. 항일운동가로 추앙받는 정율성 작곡가와 홍범도 장군에 정부 여당이 ‘공산당 세력’이라는 낙인을 찍으면서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이 전날(28일) 국민의힘 의원 연찬회에서 “나라를 제대로 끌고 갈 수 있는 철학이 바로 이념”이라며 관련 논쟁에 불을 붙였다. 

일각에는 여당이 차기 총선에 ‘보수 유권자’를 총집결시키기 위해 고의적으로 이념 논쟁을 촉발시켰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여권 내부에선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자유주의 이념을 강조해온 만큼, 이번 사안도 대통령의 ‘오랜 신념’에 따른 행보라는 주장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8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서 축사에 앞서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8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서 축사에 앞서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尹도 정부도 “국가에서 제일 중요한 게 신념”

이념 논쟁은 최근 윤 대통령이 각종 공식석상에서 ‘공산 전체주의 세력’을 직접 직격하며 가열됐다. 그는 지난 15일 광복절 기념식 경축사에서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며 이들에 굴복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대통령은 25일 국민통합위원회 행사에서도 “시대착오적인 투쟁과 혁명, 그러한 사기적 이념에 우리가 굴복하거나 휩쓸리는 것은 결코 진보가 아니며 우리 한쪽의 날개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28일 국민의힘 연찬회 자리에도 “국가의 정치적 지향점과 가치에서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라며 “어느 방향으로 우리가 갈 것인지를 명확하게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른 이념을 갖고 있는 세력과는 타협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발맞춰 정부도 이념 논쟁에 뛰어든 모습이다. 국방부는 육군사관학교 내부와 국방부 앞에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 추진 의사를 밝혔다. 홍 장군이 독립운동 과정에서 소련 공산당에 입당한 전적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가보훈부도 광주시에서 추진 중인 정율성 기념공원 사업을 두고, 박민식 장관이 직접 나서 “정 작곡가가 공산주의자”라며 사업 중단을 촉구했다. 여당도 각종 논평으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지원사격에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이 7월14일 폴란드 바르샤바 한 호텔에서 열린 한·폴란드 비즈니스 포럼에서 축사를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7월14일 폴란드 바르샤바 한 호텔에서 열린 한·폴란드 비즈니스 포럼에서 축사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승만 존경’ 尹 신념 행보?…“이념 과잉” “검찰 DNA” 지적도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과 정부의 일관된 ‘이념 강조’가 내년 총선 전략의 일환이란 평이 지배적이다. 이른바 ‘진보=공산당 추종 세력’이라는 프레임을 내세우며, ‘보수 집토끼’를 잡고 나아가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게도 흠집을 내려 한다는 것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이념 논쟁은 여권의 핵심 총선 전략”이라며 “자유 보수 세력과 뭉쳐서 공산 전체주의 세력과 싸우는 프레임 작업을 하고 있다. 여기에 부처 장관들과 의원들까지 나서서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이념 논쟁이 의도된 총선 전략’이라는 평에 대해 여권 내부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윤 대통령의 최근 이념 관련 발언은 여당 지도부와 상의하거나, 참모와 논의하지 않은 윤 대통령 사견에 가깝다는 전언이다. 이 탓에 여권 내부에서도 윤 대통령의 공개 발언에 당황한 이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의 ‘역사 신념’이 주요하게 작용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앞서 대선 후보 시절 매체 인터뷰를 통해 본인의 ‘자유주의 이념’ 소신을 밝혀온 바 있다. 대통령실 한 관계자는 이날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윤 대통령은 오래 전부터 문재인 정부의 안보정책 등을 지적하며 역사관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해왔고, 이승만 대통령을 존경하는 대통령으로도 꼽은 바 있다”며 “최근 일련의 메시지를 총선 전략과 분리시킬 수는 없지만 본인의 소신이 강하게 들어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이 같은 행보에 여권 내부에서도 ‘과잉이념’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친윤(친윤석열)계 인사인 김병민 국민의힘 최고위원도 28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저는 (지도부 내에서도 해당 처사가) 과유불급이라는 제 목소리 좀 내고 싶다”고 밝혔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페이스북을 통해 “항일 독립전쟁의 영웅까지 공산주의 망령을 뒤집어씌워 퇴출하려고 하는 것은 오버해도 너무 오버”라고 비판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윤석열 정권의 이념 과잉이 도를 넘고 있다”고 직격했다.

야권에선 윤 대통령 특유의 ‘검찰 DNA’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진보 진영을 협치의 대상이 아닌 마치 ‘검거·타도의 대상’으로 낙인찍으려 한다는 의심에서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이념 논쟁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국민과 이념을 편 가르는 나라가 요즘 세상 어디에 있나”라며 “근데 이게 또 (선거에서) 통하니까 대통령도 검찰일 때의 태도를 버리지 않고 써먹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상병 평론가는 “결국 정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며 “네거티브로만 가면 우리나라 정치에 미래는 없다”고 혹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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