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우선순위가 틀렸다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9.18 08:05
  • 호수 1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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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가 며칠 앞으로 다가오면서 동네 시장이나 마트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해졌다. 지난 주말, 몇 가지 생필품과 명절 선물을 사러 간 마트에도 평소보다 많은 사람이 몰려 북적거렸다. 최근 들어 마트에 갈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랐다. 특히 채소류 가격에 입이 쩍 벌어지고 만다. 그런 상황이 미안해서인지 일부 품목에 ‘물가 안정 특별가’ 같은 표지가 붙어있기는 하나 그 가격 또한 만만치 않다.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은 더 싼값의 가격표가 달려 있는 물건 앞으로 옮겨지고 마는데, 그런 모습 자체가 스스로 안쓰럽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이쯤 되면 즐거움이 앞서야 할 명절이 오히려 심난한 고통의 시간으로 느껴질 정도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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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늘 현재의 상황에서 불이 댕겨지고 미래에 대한 상상이 보태지면서 심지를 키우기 마련이다. 지금 국민들이 시장에서 마트에서, 음식점에서 느끼는 민생 불안도 마찬가지다. 현실에서 갖게 되는 우려 이상으로 미래에도 지금과 같은 물가 상승세가 지속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더 무섭게 다가든다. 이런 염려는 막연한 걱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당장 현실의 경제 지표가 예사롭지 않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얼마 전 발표한 보고서는 “국제유가 상승으로 소비자물가 상승세가 확대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중국 경기 불안 등 높아진 대외 불확실성이 경기 부진 완화 흐름을 제약할 가능성이 있다”고도 했다. 한마디로 올가을 한국 경제가 순탄치 않으리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더해 고용 상황도 좋지 않다. 9월10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올 하반기 신규채용 계획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한 기업의 절반에 가까운 48.0%는 하반기 신규채용 계획을 수립하지 못했고, 16.6%는 채용 계획이 아예 없다고 한다.

경제가 이 지경인데도 정치권 상황은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답답하기 그지없다. 경제 문제가 아닌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 흉상(胸像)이 엉뚱하게 뜨거운 이슈가 되어 있을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하랴. 경제가 든든하게 뒷받침돼 민생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상황이라면 그런 논란도 가능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런 일로 시간을 흘려보내도 좋을 만큼 한가로운 시기가 아니라는 얘기다. 당장 먹고살기가 힘든 마당에 왜 느닷없이 홍범도 장군이 논란의 중심으로 소환되어야 하느냐는 비판은 그래서 나온다. 시사저널 제1768호 ‘임명묵의 MZ학 개론’에서 언급되었듯이 지금의 한국 청년층 등은 ‘당면한 생활 문제가 훨씬 더 중요하지, 이념이나 역사의 추상적 차원에 대한 세세한 논쟁을 따라갈 심리적 여유가 없다ʼ. 국민이 원하는 경제 상황을 만들기 위해 죽기 살기로 노력하기는커녕 때아닌 이념전쟁에 몰두하면서 총리가 아무리 “국민도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말한들 국민에게 무슨 호소력이 있겠는가.

매사가 그렇듯 답은 언제나 현장에 있다. 후쿠시마 원전 방류 이후 국내 수산물 판촉에 팔을 걷어붙인 여당 의원들이여, ‘먹방’은 이제 할 만큼 했으니 그만 자리를 파하고 동네 시장 혹은 마트로 달려가라. 그리고 그곳에서 들리는 서민들의 한숨소리부터 귀담아들으라. 여기엔 야당 의원이라고 예외일 수가 없다. 학교 내 흉상에 비할 바 없이 소중하고, 여야 모두가 당장에 챙겨야 할 민생이 그곳에서 가장 생생히 꿈틀거리기 때문이다. 정책과 논란에도 설 자리는 따로 있다. 각자의 삶이 뜨겁게 엉켜 복작일 추석 즈음엔 더더욱, 경제가 그 우선순위의 맨 앞에 놓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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