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들은 왜 대형 커뮤니티를 외면하는 걸까 [임명묵의 MZ학 개론]
  • 임명묵 작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9.26 11:05
  • 호수 1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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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별·성별 사회적 여론 형성하던 20~40대와 양상 달라
특정 관심사 공유하는 소규모 친밀 공동체에 더 집중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어느 날 부탁을 하나 해왔다. ‘인터넷 세계에 대해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필자처럼 하루 내내 인터넷 세계에 몸담는 친구가 아니었기 때문에, 남초 커뮤니티와 여초 커뮤니티, 아이돌 커뮤니티와 웹소설 커뮤니티, 40대가 모이는 커뮤니티와 대한민국 인터넷 세계의 중원(中原)이라고 할 수 있는 디시인사이드, 그리고 유튜브 생태계까지. 이 광활한 세계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게 만드는 데는 몇 주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친구는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서로의 공간에 모여 ‘치열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을 실감하자 놀랍다고 말했다. 한국 인터넷의 모습은 현대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여론의 파편화 경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과거에 ‘현대 미디어’라는 것은 사실 여론의 파편화가 아니라 여론의 통합을 이끄는 힘이었다. 전국적으로 정보와 의견을 퍼트리는 신문이 등장했고, 국민 여론이 생길 수 있었다. 이후 통신 기술이 텍스트를 넘어 소리와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게 되면서 국민 여론의 통합은 절정에 이르렀다. 라디오와 영화, 텔레비전은 텍스트보다 더 호소력 있게 사람들에게 다가갔는데, 이러한 미디어 장치를 운영할 수 있는 이들은 전국적으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여론을 관장하는 엘리트들은 대중에게 자신들의 의제를 일방적으로 공급할 수 있었다.

대중사회 최후의 전성기였던 냉전이 끝나가며 여론은 쪼개지기 시작했다. 위성 방송국은 국경을 넘나들며 일국 엘리트의 여론 장악력에 흠집을 냈다. 국가 수준의 역량을 지니지 않아도 수많은 대중에게 정보를 확산시킬 수 있는 수단이 생겨나고 있었다. 판을 완전히 뒤흔든 것은 인터넷이었다. 인터넷에서 사람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수없이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사람들이 길을 찾는 방향은 간단했다. 자신들과 관심사를 공유하는 이들끼리 뭉쳐, ‘주류 미디어’가 집중적으로 다루지 않는 주제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주제는 자동차, 교통, 카메라, 판타지와 무협, 야구와 축구, 육아까지 모든 게 될 수 있었다.

ⓒ일러스트 정찬동
ⓒ일러스트 정찬동

대형 커뮤니티 대신 오픈 채팅방 등 선호

그러나 국민 여론을 확인하고 싶다는 열망은 인터넷 시대에도 당분간 꺾이지 않고 계속될 것이었다. 정말 흥미롭게도 처음에는 특정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뭉친 커뮤니티들이 나중에 가면 수많은 사람이 북적이는 대형 커뮤니티로 변화하는 경향이 일관되게 나타났다. 오늘날 다종 다양한 이슈가 논해지는 대형 커뮤니티의 이름에서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디시인사이드는 디지털카메라(DC) 커뮤니티에서 출발했고, MLB파크(엠팍)는 야구에서, 대표적인 여초 커뮤니티인 더쿠는 일본 대중가요를 다루면서 시작했다. FM코리아의 FM도 ‘풋볼 매니저’를 뜻하는데, 이 사이트가 본래 축구 커뮤니티임을 보여준다.

이런 대형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자신들의 당초 관심사를 논하다가도 그때그때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안을 게시판에 공유했고, 그런 이슈에 대한 반응이 여론으로 커질 때도 많았다. 이런 과정을 반복적으로 거치면서 당초 주제와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도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에 정착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물론 이런 커뮤니티는 세대와 성별 특성을 강하게 반영한다는 점에서, 국민 여론보다는 더 구체적 범주의 여론을 확인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클리앙은 40대 남성 여론을, FM코리아는 20·30대 남성 여론을 알려주는 지표처럼 인식되었다. 물론 이것이 얼마나 대표성 있는 표본이었는지에 관한 의심도 많았다. 그러나 인터넷 커뮤니티가 어쨌든 사회적 이슈에 대해 특정 세대와 성별이 모여 북적북적 얘기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여론을 빠르게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1~2년 동안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흥미로운 흐름이 있다. 2000년대 이후 세대부터, 특히 지금의 10대들부터는 이러한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학내일의 2021년 조사에 따르면 포털에 기반한 카페 커뮤니티는 20대의 약 45%, 30대의 약 58%가 이용하고 있었지만, 10대는 고작 25.8%만 이용했다. 자체적 대형 커뮤니티는 20대가 29.6%, 30대는 22.4%가 이용했지만, 10대는 8.1%만 이용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진정한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할 수 있는 10대는 인터넷의 어떤 공간에서 모이는 걸까.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이 62.9%, 페이스북 그룹이 37.1%를 기록했다.

 

‘친목’에 더 중점 두는 여론 파편화 심해져

이러한 변화는 어떻게 등장하게 된 것일까. 애초에 10대가 문화적 차이가 있는 기성세대 커뮤니티에 굳이 갈 필요를 못 느낀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20대와 30대는 10대 때부터 기성세대 커뮤니티에 참여해 정착한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FM코리아나 더쿠 이용층에는 20대부터 40대가 혼재되어 있는 것이다. 즉 지금의 10대부터는 아예 인터넷 공간을 다루는 양상이 바뀌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맞다.

10대의 인터넷 사용 양태의 변화는 ‘여론 파편화’라는 일관적 경향의 심화라고 해석하면 조금은 더 이해하기 쉬워진다. 수많은 사람이 북적이며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는 현재의 대형 커뮤니티는 분명 과거 국민 문화에 비해 한참 파편화된 형태지만, 어쨌든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 여론을 생산하고 있다. 반면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이 있던 현재의 10대가 추구하는 소통 방식은 그와 달리, 여론이라는 걸 형성할 수도 없는 작디작은 관심사를 공유하는 정말 소규모의 사람끼리 친밀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인 듯하다. 옛 커뮤니티에서는 ‘친목질’로서 커뮤니티의 올바른 여론을 해친다고 배격되었던 행위가, 이제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된 것이다. 디스코드, 트위터, 오픈 카카오톡, 페이스북 그룹은 모두 이러한 ‘친목’의 소규모 커뮤니티를 만들어주는 플랫폼이다.

여론 파편화의 최종적 결과는 여론의 붕괴일까? 물론 당분간은 온라인 대형 커뮤니티를 통해 ‘특정 세대, 특정 성별’의 을 여전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청년 을 확인할 수 있는 커뮤니티는 정말 머지않아 구성원과 함께 늙어가며 중장년 여론을 확인하는 창구가 될 것이다. 문제의 초점은 이제 막 청년이 되고 앞으로 청년이 될 인구의 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들 사이에 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가 등으로 맞춰질지도 모르겠다. 수없이 작은 주제로 파편화된 친밀한 공동체 사이를 관통하는 공통의 이슈를 찾아내는 것은 문맹으로 가득한 촌락에 신문명을 퍼트리려 했던 200년 전의 지식인들의 과제보다 더 어려운 과업이 될 듯하다.

임명묵 작가
임명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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