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체포특권 포기’ 백지화? 이재명 ‘단식 호소’ 통할까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3.09.20 15:0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李, 표결 하루 앞 “檢독재 폭주기관차, 국회서 멈춰 달라”
당내 의견 분분…“약속 지켜야” vs “검찰탄압 맞서야”

“저에 대한 정치 수사에 대해서 불체포 권리를 포기하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6월19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검찰이) 소환한다면 10번이 아니라 100번이라도 응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제 발로 출석해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검찰에 무도함을 밝히겠다”고 덧붙였다. 예고되지 않은 이 대표 발언에 야당 의원들은 박수로 화답했고, 여당 의원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로부터 세달 뒤, 이 대표가 돌연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을 번복하는 모양새다. 이 대표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부결해달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냈다. 친이재명(친명)계에선 ‘검찰의 부당한 영장 탓’이라며 이 대표 호소에 호응하고 있지만, 당내 비이재명(비명)계와 여권에선 ‘약속을 어겼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단식 중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7일 오후 동료 의원들의 중단 요청을 뒤로한 채 당 대표실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단식 중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7일 오후 동료 의원들의 중단 요청을 뒤로한 채 당 대표실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李 “檢의 정치공작…국회의 결단이 필요”

단식 21일째인 이 대표는 20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명백히 불법부당한 이번 체포동의안의 가결은 정치검찰의 공작수사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며 “검찰독재의 폭주기관차를 국회 앞에서 멈춰세워주십시오. 위기에 처한 헌법질서와 민주주의를 지켜주십시오”라고 적었다. 사실상 체포동의안 ‘부결’을 호소한 셈이다.

이 대표는 검찰이 부당한 영장 청구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검찰은 지금 수사가 아니라 정치를 하고 있다”며 “가결하면 당 분열, 부결하면 방탄 프레임에 빠트리겠다는 꼼수다. 중립이 생명인 검찰권을 사적으로 남용해 비열한 ‘정치공작’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돈 벌면 제3자 뇌물죄, 돈 안 벌면 배임죄라니 정치검찰에게 이재명은 무엇을 하든 범죄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회 비회기가 아닌 회기 중 체포동의안을 보낸 검찰의 책임을 부각했다. 이 대표는 “앞으로도 비회기에 영장을 청구하면 국회 표결 없이 얼마든지 실질심사를 받을 수 있다”며 “그럼에도 윤석열 검찰이 정치공작을 위해 표결을 강요한다면 회피가 아니라 헌법과 양심에 따라 당당히 표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당을 향해 ‘부결’ 표결을 거듭 호소했다. 그는 “검찰의 영장청구가 정당하지 않다면 삼권분립의 헌법질서를 지키기 위한 국회의 결단이 필요하다”며 “지금 이 싸움은 단지 이재명과 검찰 간의 싸움이 아니다. 윤석열 정권은 검찰을 앞세워 헌정질서를 뿌리째 뒤흔들고 입법부를 짓밟으며 3권 분립을 파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가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 대표의 빈자리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가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 대표의 빈자리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野 표심 오리무중…계파 간 의견 갈려

이 대표의 호소가 통할지는 미지수다. 당장 여권의 반응은 냉담하다. 이 대표가 ‘대국민 약속’을 손쉽게 깨버렸다는 지적이다. 동시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전망도 회자되는 모습이다. 지난 6월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 선언을 했던 당일, 한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그걸(불체포특권 포기) 어떻게 실천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우려한 바 있는데, 실제 한 장관의 냉소적인 전망이 적중한 모양새가 됐다.

민주당 내 의견은 계파에 따라 갈린다. 당 지도부를 포함한 친명계는 이 대표 부결 호소에 적극 호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가 밝힌 ‘불체포특권 포기’란 검찰이 ‘정당한 영장’을 청구했을 때 가능한 것인데, 검찰이 ‘부당한 영장’을 청구했기에 불체포특권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에서다.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 대표를 구속하겠다는 것은 야당 탄입이고, 정적 제거, 야당 분열 공작”이라며 “외계인이 쳐들어오면 전 지구인이 단결 투쟁해야 하듯 야당 파괴 공작을 위해 흉기를 들이대면 뭉쳐서 싸우는 길 말고 무슨 선택이 있을 수 있느냐”고 강조했다. 장경태 의원도 이날 YTN라디오에서 “부당한 영장청구에 대해서는 상당한 공감대는 이뤘다”면서 “많은 의원들이 ‘검찰의 무리한 수사는 국정운영을 좌지우지하려고 하는 민주주의 훼손의 일환’이라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원칙론을 강조하는 비명계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5선 중진의 이상민 의원을 비롯해 김종민·이원욱·조응천 의원 등의 비명계는 체포안 투표를 가결시켜야 ‘방탄 정당 프레임’을 깰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월27일 진행된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에서도 최소 31~38표의 이탈표가 발생한 바 있다.

비명계 대표인 조응천 의원은 지난 1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이 대표가) 검찰의 무도한 수사에 맞서서 증거도 없고 말도 안 되는 수사인데 내가 당당히 걸어가서 영장을 기각 받고 오겠다, 가결시켜달라고 말씀을 해 주시는 게 제일 낫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비명계 한 의원도 “(불체포 특권포기) 약속을 호떡 뒤집듯 뒤집으면 앞으로 당 대표 메시지에 어떤 힘이 실리겠나”라고 반문한 뒤 “검찰의 기소가 부당하다면 사법부가 기각할 것이고, 그러면 대정부투쟁에도 힘이 실린다. 이번에도 체포동의안이 부결되면 총선까지 ‘방탄’만 하게 되는 꼴”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오는 21일 예정된 국회 본회의에서 이 대표 체포동의안과 한덕수 국무총리 해임안이 동시에 표결에 부쳐질 예정이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 결과는 다수당인 민주당이 열쇠를 쥐고 있다. 체포동의안은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 찬성으로 가결된다. 현재 재적 의원은 297명으로 가결 정족수는 149표다. 체포동의안이 부결되면 영장은 그대로 기각되지만, 가결 시에는 법원의 영장실질심사 기일이 정해진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