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 재해’로 국감 증인 채택된 SPC·DL 회장, 도피성 해외출장?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3.11.17 14:05
  • 호수 1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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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참해도 솜방망이 처벌

허영인 SPC그룹 회장과 이해욱 DL그룹 회장이 12월1일 청문회에 서게 됐다. 연이은 중대재해로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해외출장을 이유로 불출석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해외출장은 도피성이라는 의심을 받는다. 그동안 기업인들이 국감 출석을 피하기 위한 카드로 해외출장을 애용해 왔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기업인들이 국감 증인 출석을 꺼리는 배경이 납득이 간다는 반응 일색이다. 국감장이 기업인에 대한 망신 주기의 장으로 전락했다는 이유에서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 ⓒ
허영인 SPC그룹 회장 ⓒ시사저널 최준필

국감에서 망신당하느니 차라리 벌금 낸다?

허 회장과 이 회장은 10월26일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됐다. 산업재해가 끊이지 않으면서 사회적인 지탄을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10월 SPC그룹 계열사인 SPL 제빵공장에서는 20대 근로자가 소스 배합기에 몸이 끼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허 회장은 3년 동안 1000억원의 안전경영 예산을 투입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불과 10개월 만인 올해 8월 또 다른 계열사인 샤니 제빵공장에서 50대 노동자 사망 사고가 벌어졌다.

DL그룹의 경우 핵심 계열사인 DL건설에서 지난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7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해 8명의 근로자가 목숨을 잃었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단일 기업 기준 최다 중대재해 사망 사고 발생 건수다. 그러나 허 회장과 이 회장은 국감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해외출장이 이유였다.

허 회장은 국회에 제출한 불참 사유서를 통해 K푸드 세계화와 SPC그룹의 글로벌 사업 확장을 목표로 독일 뮌헨에서 10월21일부터 26일까지 진행되는 국제제과제빵박람회(IBA)에 참석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IBA에 참석한 유럽 기업들과 안전 시스템 확충 및 자동화 설비 투자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계획이어서 안전투자계획 이행을 위해서라도 허 회장의 직접 참석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뉴시스
이해욱 DL그룹 회장 ⓒ뉴시스

이 회장은 국가와 기업 발전에 필수적인 미래 신기술 분야의 기술 확보와 신규사업 기회에 대한 논의를 위한 미국행을 국감 불참 사유로 들었다. 이 회장은 해당 출장이 그룹 차원의 투자 확대 논의와 중요 친환경 미래기술 확보를 위한 자리이니만큼 총수인 자신이 직접 참석해야 한다고 했다.

허 회장과 이 회장은 모두 해외출장이 국감 증인으로 채택되기 전에 계획됐다고 입을 모았다. 해외출장과 국감 증인 채택은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허 회장과 이 회장 해외출장이 ‘도피성’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여전하다. 해외출장은 그동안 기업인들의 국감 불출석 ‘단골 사유’였기 때문이다.

실제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도 해외출장을 이유로 이번 국감에 불참했다. 그는 횡령 등 은행권의 내부 통제 부실과 과도한 예대마진 수익, 셀프 연임이 횡행한 금융지주 지배구조 등과 관련해 10월27일 정무위원회 종합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됐다. 윤 회장의 국감 출석은 자연스럽게 금융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올해 국감에서 유일하게 증인으로 채택된 금융지주 회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 회장은 해외출장을 이유로 국회에 국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10월13일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 참석을 시작으로 일본, 싱가포르, 홍콩 등 아시아 지역 주요 주주 및 전략적 제휴기관 총 17곳에 대한 해외 기업설명회(IR) 활동을 위한 해외출장으로 국감 출석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정무위는 윤 회장의 불출석 사유의 정당성 여부를 검증하기 위해 금감원에 조치를 요구한 상태다. 금감원은 최근 KB금융그룹에 윤 회장의 불출석 경위에 대한 소명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금감원은 윤 회장의 국감 불출석에 정당한 사유가 있었는지 확인한 후 필요한 조치를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증인 출석 강제할 제도 미비

최정우 포스코 회장도 해외출장으로 국감에 불출석했다. 최 회장은 올해 태풍 카눈이 북상하며 포항제철소가 긴장 상태에 놓인 상황에서 사외이사들과 캐나다를 방문해 골프를 쳤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또 회사차 사적 유용과 자사주 매입, 청탁법 위반 등의 의혹도 국감에서 다뤄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최 회장은 국감을 앞둔 10월10일 유럽 지역 대형 투자자 대상 IR 행사 참석을 위해 출국했다.

이 밖에 하도급법 위반 의혹 등과 관련해 증인으로 채택된 윤영준 현대건설 대표와 아이돌 경선 프로그램 순위 투표 조작 혐의로 물의를 빚은 PD들의 무원칙한 복직과 고강도 구조조정 논란 등과 관련해 국감 출석을 요구받은 구창근 CJ ENM 대표 등도 해외출장을 이유로 국감에 불출석했다.

해외출장 외에 질병을 이유로 국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한 이들도 있다. 그러나 성공률은 높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맹점 갑질 논란으로 증인 출석 요구를 받은 버거킹 운영사 비케이알의 이동형 대표가 그런 경우다. 그는 10월16일 국감에 코로나 감염을 이유로 불참했지만, 같은 달 26일 국감장에 서야 했다. 임금 체불 문제로 출석을 요구받은 박영우 대유위니아그룹 회장도 질병을 이유로 10월17일 국감에 불출석했다. 그러나 이후 정상적으로 출근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면서 그는 같은 달 26일 종합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야 했다.

매년 국감 때마다 대기업 총수 등 주요 기업인들이 증인으로 거론되지만, 출석은커녕 증인 채택조차 쉽지 않다. 올해도 4대 그룹 총수들의 증인 채택 여부가 세간의 이목을 끌었지만, 여야가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서 무산됐다. 기업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일종의 배려를 했다는 평가다. 여기에 기업의 대관 업무 담당자들도 국감 시즌이 다가오면 자사 총수의 증인 채택을 막기 위해 치열한 로비전을 펼친다.

총수가 증인으로 채택되더라도 실제 출석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해외출장이나 질병 등을 이유로 국감 증인 출석을 회피하기 때문이다. 물론 국감 불출석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마련돼 있다. 우선 국회는 증인이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을 거부한다고 판단되면 동행명령장을 발부할 수 있다. 그러나 동행명령에는 법적 강제력이 없어 실효성을 두고 계속 의문이 제기돼 왔다.

또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하거나 동행명령을 거부한 경우 국회가 고발할 수 있지만 이 역시 효과는 미미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벌금형 등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실제 2012년 골목상권 침해 논란으로 국감 증인에 채택됐지만 불출석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법원은 각각 벌금 1500만원과 1000만원을 선고했다.

이 때문에 국회는 관련 제도 개편을 추진 중이다. 현재 국감 증인 출석 등을 규정한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다수 발의돼 있는 상태다. 증인을 강제 구인할 수 있는 내용이 담긴 법안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 국감 참고인이 해외출장 중이면 화상으로라도 연결하자는 법안도 현재 계류 중이다.

ⓒ연합뉴스
박영우 대유위니아그룹 회장, 조익서 오티스엘레베이터 대표, 이국환 우아한형제들 대표, 홍용준 쿠팡CLS 대표(왼쪽부터)가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감이 ‘망신 주기의 장’ 전락했다는 지적도

재계 일각에서는 기업인들이 국감 출석 회피에 필사적인 모습을 보여온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감이 기업인을 상대로 현안에 대한 답변을 듣기 위한 자리가 아닌 국회의원들의 인기몰이를 위한 ‘호통치기’나 ‘망신 주기’의 장으로 전락했다는 이유에서다. 또 민원 해결을 위한 용도로 증인 신청을 하는 등 제도를 남용한다는 지적도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 때문에 그동안 재계를 중심으로 국감 증인 채택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왔다. 이런 여론을 의식한 듯 앞서 여당인 국민의힘은 이번 국감 시작부터 불필요한 기업인 증인 채택을 자제하자는 방침을 세운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매년 국감 때 국회가 기업 총수들과 경제인들을 무리하게 출석시켜 망신을 준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며 “경제성장의 엔진이며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들에 국회가 불필요한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윤 대표는 “기업들에 대한 국감 증인 신청이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이뤄지도록 뜻을 모아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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