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국정원 ‘3차 전쟁’...“대통령실, 권춘택 1차장 주가조작 기업 연루 혐의 확인”
  • 조해수·김현지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3.11.24 11:00
  • 호수 1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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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1차장-S 인사기획관 ‘경질’
공직기강비서관실, 권 1차장 혐의 직접 조사

▶국정원 1차 전쟁: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이 문재인 정부 서훈·박지원 전 원장 때 주류였던 세력과 이념 및 인사 문제를 놓고 치열한 내부 투쟁을 벌였다. 이는 국정원 지휘부 간 대립으로까지 비화했다. ‘이념적 선명성’을 중시하는 김 원장과 ‘법적 하자가 있는 과거 인물의 복귀는 지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조상준 전 기획조정실장의 1차 전쟁이 벌어졌다. 조 전 실장은 2022년 10월, 임명된 지 4개월여 만에 물러났다(2월3일자 <[단독]“국정원에 두 개의 태양은 없다” 인적 청산-간첩 수사 내홍 진압> 기사 참조).

▶국정원 2차 전쟁: 이른바 ‘6월 인사파동’이다. 2023년 6월초 김규현 원장이 제청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재가한 국정원 1급 보직 인사가 일주일 사이에 번복됐다. 10여 명의 승진·영전 인사 중 K 전 방첩센터장과 그의 동기 3명, 주미대사관 공사(거점장), 주일대사관 공사, 해외분석국장과 인사 책임자인 인사처장이 대기발령 조치된 것이다. 고위급들에 대한 인사 번복은 국정원 62년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6월16일자 <[단독]“국정원 8인회 숙정?…김규현 원장, 尹 대통령 독대했다”>, 6월23일자 <[단독]국정원 인사 파동, 김태효·조상준에서 시작됐다> 기사 참조).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이 11월1일 국가정보원 청사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원 국정감사에 참석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국정원에서 ‘3차 전쟁’이 발발했다. 지난 ‘6월 인사파동’ 이후 국정원이 또다시 언론지상을 달궜다. 11월초, 김규현 원장 교체설이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그러나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사실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오히려 국정원장 교체설이 흘러나온 것에 대한 문책 등을 이유로 권춘택 1차장이 경질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서울 용산 대통령실의 공직기강비서관실이 관련 첩보를 바탕으로 권 1차장의 기업 비리 연루설에 대해 ‘직무감찰’을 진행해 내용 일부를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11월10일자 <[단독]권춘택 국정원 1차장 경질…“김규현 국정원장 교체설에 대한 문책 성격”> 기사 참조).

이뿐만이 아니다. 6월 인사파동 이후 국정원 인사기획관으로 특별 임명된 S씨가 최근 ‘의원면직’된 것으로 파악됐다. 문재인 정부 때 저지른 인사 청탁 등의 비리가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인데, 이 역시 권춘택 1차장의 경질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파동’ 이후 반격 나선 김규현 원장

권춘택 1차장과 S 인사기획관의 경질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권 1차장은 유력 일간지가 윤석열 정부 ‘초대 국정원장’이라고 대서특필(오보로 밝혀짐)했을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다. 게다가 권 1차장은 국정원 공채 출신으로 이른바 ‘박힌 돌’인 반면, 김규현 원장은 외무부 출신으로 ‘굴러온 돌’이다. 간첩 검거에 소홀했던 문재인 정부의 잔재 청산 등 새 정부의 국정원 개혁 노선에 대해 미묘한 입장 차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실제로 김 원장이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추진한 반면, 권 1차장은 ‘내부 인화’를 우선시했다.

S 인사기획관은 6월 인사파동, 즉 ‘국정원 2차 전쟁’ 때 인사 전횡자로 지목돼 면직처리된 K 전 방첩센터장과 대척점에 서있는 인물이다. S 인사기획관은 문재인 정부 시절 국정원 핵심으로 활동한 반면, K 전 방첩센터장은 김규현 원장의 비서실장을 지내며 민주노총 등에 숨어있는 간첩 색출에 앞장섰다. 대북 문제에서 S 인사기획관이 전 정권의 입장과 가깝다면, K 전 방첩센터장은 현 정부의 노선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국정원 3차 전쟁’에서 김규현 원장을 견제해 왔던 권춘택 1차장-S 인사기획관 등 반대파가 숙정되면서 김 원장 체제가 더욱 공고해졌다고 볼 수 있다. 6월 인사파동으로 K 전 방첩센터장과 그의 국정원 동기(30기) 3명 등 김 원장의 지지 세력이 축출된 후, 김 원장이 반격에 나서 마침내 국정원을 장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권 1차장은 대통령실 조사 결과에 따라 사표를 내긴 했지만, 후속 인선 등 절차상 문제가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사저널은 국정원에서 벌어진 ‘3차 전쟁’의 전말을 공개한다.

권춘택 국정원 1차장 ⓒ국회사진취재단
권춘택 국정원 1차장 ⓒ국회사진취재단

권 1차장 “나도 속았다” 해명한 것으로 알려져

최근 몇몇 언론을 통해 김규현 원장 교체설이 제기됐다. 11월8일 한 언론은 ‘지난 6월 인사 문제로 경질됐던 전 방첩센터장 K씨가 면직된 이후에도 김 원장을 통해 인사에 개입하려 한 정황이 추가로 발각됐다. 이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조사에 들어갔고, 김 원장이 사의를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11월9일 다른 언론을 통해 ‘김 원장이 지난주 윤석열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하고 11월3일에는 국정원 일부 간부와 예정에 없던 오찬을 함께 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11월10일에는 ‘김 원장의 교체가 임박했으며, 현재로선 그 후임엔 김용현 경호처장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그러나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김규현 원장 교체설에 대해 “아는 바 없다”고 공식 부인했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의 또 다른 관계자가 시사저널에 전한 바에 따르면, 김 원장 교체설은 사실과 다를 뿐 아니라 대통령실에서 이런 얘기를 만든 ‘배후’를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정보기관의 인사 문제가 6월에 이어 또다시 언론에 무분별하게 유출된 것에 대해 ‘엄중 경고’를 한 셈이다.

아니나 다를까, 곧이어 국정원 내부자의 이름이 거론됐다. 권춘택 1차장이다. 이 관계자는 “권 1차장이 국정원 조직 안정을 위해 자리에서 물러날 것으로 알고 있다. 언론을 통해 보도된 국정원장 교체설에 대한 문책의 성격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대통령실에 권춘택 1차장과 관련한 비위 첩보가 올라갔고 윤석열 대통령도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권 1차장에 대한 직무감찰을 진행했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권 1차장에 관한 일부 혐의를 확인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 혐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신기술을 내세운 A 기업이 주가조작 사고를 치고 회사 대표가 미국으로 잠적했다. 최근 귀국한 A 기업 대표가 활동을 재개하며 권춘택 1차장을 만났다. 이에 대한 비위 혐의(투자 사기, 주가조작 등)를 잡고 감찰이 진행됐는데 일부 확인됐다. 권 1차장은 감찰조사에서 ‘나도 속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고위공직자의 부패 게이트로 비화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국가정보원 전경 ⓒ국가정보원 제공
국가정보원 전경 ⓒ국가정보원 제공

S 인사기획관, ‘인사 비리’로 사직

비슷한 시기에 국정원 내에서 또 하나의 ‘폭탄’이 터졌다. S 인사기획관의 비리가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에서 국정원 고위 간부를 지낸 N씨의 파일에서 S 인사기획관이 청탁·알선 등 인사 비리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났다. 징계를 줄 수도 있는 사안이었으나, 김규현 원장이 그동안의 공을 고려해 S 인사기획관을 ‘의원면직’(본인의 의사에 따라 해임하는 것, 사직)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S씨는 6월 인사파동으로 국정원 인사처장이 대기발령 조치를 받자 그를 대신하기 위해 인사기획관에 특별 임명됐다. 이와 관련해 한 핵심 관계자는 “S 인사기획관은 문재인 정부 시절 ‘국정원 적폐청산 TF’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인물이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되자 캠프 사람과의 인연을 동아줄 삼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파견까지 나갔다”면서 “6월 인사파동 당시 김규현 원장이 정신적으로 위축되고 조직 장악력을 일부 상실한 상황에서, 몇몇 간부가 S의 인사기획관 임명을 관철시켰다”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 국정원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6월 인사파동과 연결돼 있다. 인사파동은 김규현 원장의 측근인 K 전 방첩센터장의 ‘인사전횡’에서 촉발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당시 K 전 방첩센터장은 1년 새 3급(비서실장)에서 2급(방첩센터장), 1급으로 고속 승진했다. 이 정도로 빠르게 승진한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면서 “K의 동기 3명도 함께 1급으로 승진했다. K가 국정원 요직에 자기 사람을 심으면서 세력화에 나섰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충남 예산군 예산읍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충남도연맹을 압수수색한 11월7일 국정원 관계자가 건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尹 대통령, 김규현 원장 여전히 신임”

반면, 6월 인사파동이 국정원 주류와 비주류의 충돌이라는 시각도 있다. 김규현 원장과 K 전 방첩센터장은 국정원 비주류다. 관계자는 “김 원장은 국정원에서 ‘히딩크’ 같은 존재”라면서 “김 원장은 외교관 출신으로 국정원 외부에서 온 사람이다. 외국인인 히딩크 감독이 지연·학연·파벌을 중시하는 한국 축구계의 오랜 관행을 깨뜨렸듯이, 김 원장은 종북좌파는 물론 국정원 내 기득권을 누려왔던 각종 ‘라인’들을 척결하고 새판을 짜려 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K 전 방첩센터장에 대해서는 “국정원 직원 약 50%가 좌파적 성향을 지녔고, 약 47%는 정권 부침에 따라 좌파 혹은 우파에 기생해온 이익형 집단”이라면서 “3% 정도만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고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 혼심의 힘을 쏟고 있다. K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말했다.

김규현 원장은 비주류였기 때문에 강도 높은 국정원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한 주류의 반감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6월 인사파동 당시 K 전 방첩센터장 측은 시사저널에 “K 전 방첩센터장 축출은 시작에 불과하다. 결국 김 원장의 옷을 벗기는 것이 국정원 내 좌파와 기득권 세력의 최종 목표”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들의 말처럼, 6월 인사파동 이후 해가 바뀌기도 전에 ‘국정원장 교체설’이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심지어 ‘K 전 방첩센터장이 또다시 인사에 개입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와 관련해 K 전 방첩센터장 측은 시사저널에 “억울하다”면서 “(K 전 방첩센터장은) 6월 인사파동 후 시골에 칩거하고 있다. 국정원과 거리를 두고 자숙하고 있는데 무슨 인사 개입이냐”고 해명했다. 관계자도 “6월 인사파동을 마무리 짓기 위해 S 인사기획관과 함께 감찰실장이 새롭게 부임했다. 둘은 국정원 33기로 동기 사이”라면서 “신임 감찰실장이 K 전 방첩센터장 측을 탈탈 털었다. 어떤 사람은 5번이나 조사를 했다. 그러나 더 이상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국정원장 교체설’로 국정원 밖이 떠들썩했지만, 김규현 원장은 조용히 국정원 내부를 장악했다. 이와 관련해 여권 핵심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원에 요구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잔재를 완전히 청산하고 간첩 검거, 대북 정보 수집, 공산·전체주의 세력 저지 등 국정원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라면서 “김 원장은 이 일에 최적임자다. 윤 대통령은 여전히 김 원장을 신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김 원장은 국정원장 직속인 방첩센터를 통해 ‘창원 간첩단’ 자주통일 민중전위(자통) 사건을 적발했다. 북한 대남 공작 기구인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들과 접선해 지령을 받고 활동한 자통 핵심 간부 4명을 검거(구속 기소)한 것이다.

한편, 국정원과 관련한 논란이 계속되자 ‘통제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참여연대는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국회 정보위원회가 일차적인 감독기구로서 기능을 수행하지만, 전문성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국회 정보위원회 산하에 정보·인권 분야 전문가로 구성한 ‘전문가형 정보기관 감독기구’를 설치해 정보위원회의 감독 기능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정원 등 정보기관 활동의 적법성 등을 감독할 수 있도록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 등을 받아 임명하는 ‘정보감찰관 제도’를 설치해야 한다”면서 “이들 기구에 정보기관의 위법 사항과 인권침해 사례에 대한 조사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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