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락하는 ‘총리 프리미엄’…기시다 추락 세 가지 이유
  •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1.25 14:00
  • 호수 1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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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넘버카드(주민등록증)’ 졸속 개편·늦장대응에 지지율 급락
고물가에 감세 정책 내놨지만 ‘외면’…국가 비전 못 내놔 ‘실망’

일본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이 연일 하락세다. 최근 일본 주요 언론사에서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표 참조), 모든 여론조사에서 내각 지지율은 정권 유지 위험 수준인 20%대를 기록하고 있다. 내각 출범 이후 최저치다. 기시다 내각 지지율 하락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그리고 지지율 하락의 원인은 무엇이고, 향후 기시다 내각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나아가 한일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할까.

일본 정치에는 ‘총리 프리미엄’이라는 말이 있다. 총리 프리미엄이란 내각 지지율에서 제1여당 지지율을 뺀 값을 말하는데, 이 값이 클수록 인기 있는 총리, 작을수록 인기 없는 총리로 인식된다. 기존의 자민당 지지층 외에 얼마나 많은 국민이 총리를 지지하는가를 알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일본 주요 여론조사에서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이 일제히 하락하는 가운데, 자민당 지지율보다 낮아져 이 수치가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자민당 지지층 내에서도 이탈층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9월13일 일본 도쿄 집무실에서 개각 후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EPA 연합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9월13일 일본 도쿄 집무실에서 개각 후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EPA 연합

자민당 지지층 내에서도 이탈층 생겨나

정권의 수명을 측정하는 지표도 있다. 아오키 미키오 전 관방장관이 주창해 ‘아오키의 법칙’ 혹은 ‘아오키율’이라고도 부른다. 내각 지지율과 정당 지지율의 합계가 50% 이하로 떨어지면, 정권이 구심력을 잃는다는 주장이다. 11월에 발표된 주요 여론조사의 대다수는 아직 아오키율 50% 이상을 유지하고 있지만, 지지통신과 마이니치신문 조사에서는 마의 50%가 깨졌다. 50%를 넘겼다고는 하나, 보수계열의 요미우리신문과 진보계열의 아사히신문에서도 50% 근처여서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대통령제인 한국과 달리, 내각제인 일본에서는 총리의 임기가 보장되어 있지 않다. 여당의 총재가 총리가 되는 구조로, 공명당과 연립여당을 이루는 자민당의 총재가 곧 일본의 총리가 된다. 자민당 총재의 임기는 자민당 내규에 의해 3년 재임, 3회 연장으로 보장되어 있다. 이 자민당 총재로서의 기시다 총리의 임기가 끝나는 시점이 내년 9월이다. 중의원 해산권을 갖는 기시다 총리로서는 총재 임기가 다하기 전에 중의원 해산권을 행사해 연임을 노려야 하지만, 현재의 낮은 지지율로는 선거 승리를 확신할 수 없어 해산권조차 발동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이 하락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7월 아베 전 총리의 총격 사망 이후 통일교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크게 하락한 적이 있다. 갖은 노력 끝에 회복하던 지지율은 5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개최 당시 최고 지지율을 기록한 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5월 이후 지지율이 하락한 데는 먼저 일본에 새롭게 도입되는 마이넘버카드(한국의 주민등록증) 오류가 크게 작용했다. 기시다 내각은 내년 가을께 현재의 건강보험증을 원칙적으로 폐지하고 마이넘버카드로 통폐합할 예정이다. 그런데 통폐합 과정에서 마이넘버카드에 다른 사람 계좌와 건강보험 정보가 입력되는 등의 오류가 발생했다. 이 문제에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서 지지율이 크게 하락했다.

이러한 지지율 하락 속에서 지난 9월에는 각료 19명 중 11명을 새로 임명하고, 여성 각료를 2명에서 5명으로 늘리는 등 대대적인 내각 개편을 단행했다. 10월에는 지난해 아베 총리 총격 사망 이후 불거진 통일교 문제와 관련해 구 통일교 해산명령을 청구했으며, 11월에 들어서는 소득세 및 주민세 감세 등 새로운 경제 대책 등을 발표했지만, 지지율은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는 양상이다.

문제는 고물가 대책으로 내세운 감세 정책이 설득력이 없는 데다, 선거 목적으로 보인다는 점이었다. 최근에는 지난 9월 정권 쇄신을 위해 단행한 내각 개편에서 차관급 인사 3명이 각종 스캔들로 사임하는 등의 악재도 작용했다. 이러한 각종 악재 속에서 기시다 총리의 설명 및 소통능력, 그리고 결단력 부족 등도 지지율 하락을 이끌었다. 무엇보다 총리이자, 정치인으로서 국가의 비전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는 점은 가장 큰 문제로 부각됐다.

총리 바뀌어도 외교 방향 바뀔 가능성 낮아

지난해의 낮은 지지율이 통일교 문제 등 예기치 못했던 외부 요인에 의한 불가항력, 혹은 위기 상황에 대한 대처 부족 등에서 비롯되었다면, 현재의 낮은 지지율은 기시다 총리가 경제·사회 등 각종 국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한 정책이 지지받지 못한다는 점과 총리 개인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되었다.

기시다 총리의 임기는 2024년 9월 종료된다. 중의원 해산권을 갖는 기시다 총리는 임기 종료 전까지 중의원 해산을 모색하려 하겠지만, 현재처럼 지지율 하락이 지속된다면 선거를 치를 수 없어 해산 없이 자민당 총재 임기를 끝낼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총리가 바뀐다고 해서 일본 외교의 방향성이 바뀔 가능성은 낮다. 현재의 일본 외교, 좀 더 정확히는 자민당이 지향하는 외교에서 한국은 북한 문제에 한·미·일이 공동으로 대응하는 데 안보적으로 중요한 국가이며,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법의 질서 등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역사 문제에서는 다를 수 있다. 한국의 관점에서 비록 기시다 총리가 한일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역사 퇴행적 인식을 보이는 발언이나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현재 ‘포스트 기시다’로 거론되는 뚜렷한 인물은 없지만, 과거 일본 주요 인사들의 언행은 역사 문제에서 부정적인 요인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현재 한일 관계의 개선 흐름 속에서 이러한 부정적 요인이 다시 재발되지 않으리라 보장할 수 없다. 내각제에서 총리의 역할은 대통령제에 비해 제한적이지만, 국가를 대표하는 총리의 생각과 행동은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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