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 유치전에 비친 2002년의 그림자…실패를 왜 '기회'라 말하나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3.11.29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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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2010 엑스포 유치전서 상하이에 밀린 여수 사례 주목
박형준 부산시장 “2035 엑스포 유치 재도전 검토”
부실한 엑스포 PT에 비판 나와…“국가 이미지 개선 시급”

부산의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가 실패로 끝났다. 부산은 28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진행된 개최지 선정 투표에서 29표를 얻어 119표를 획득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밀려났다.

정부와 재계는 부산 엑스포 유치에는 실패했지만, 유치 과정에서 결코 손해를 본 것은 아니라며 위안하고 있다. 부산을 세계에 알리고 각국의 글로벌 시장을 발굴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만큼, ‘제2의 기회’는 열려 있다는 것이다. 부산은 다음 엑스포인 2035 엑스포 유치를 위한 재도전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부산은 28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진행된 개최지 선정 투표에서 29표를 얻어 119표를 획득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밀려났다. ⓒ연합뉴스

“각국에서 한국과 파트너십 희망…성과는 있었다”

재계에서는 엑스포 유치전이 한국 기업의 위상을 높이는 기회였다고 자평했다. 엑스포는 기업이 글로벌 시장을 접하고 전에 없던 새로운 시장을 발굴할 기회로 여겨진다. 유치에 실패하면서 개최국으로서의 장점을 누릴 수는 없게 됐지만, 업계는 전방위로 이뤄진 엑스포 유치 활동이 향후 기업의 해외 진출과 국제 행사 유치 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각 나라는 소비재부터 첨단기술, 미래 에너지 솔루션까지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춘 한국과의 파트너십을 희망했다”며 그 과정에서 기업들이 글로벌 인지도를 강화하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얻는 등 의미 있는 성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국경제인협회도 “전 국가적 노력과 염원에도 부산 엑스포 유치가 좌절된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며 “(유치 과정에서 이뤄진) 국가들의 교류가 한국 경제 신시장 개척의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엑스포 유치를 위한 노력과 경험이 앞으로 대한민국이 글로벌 리딩 국가로 나아가는 데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국내 12대 주요그룹이 지난해 6월 민간유치위원회를 출범한 이후 만난 각국의 고위급 인사는 3000여 명에 달한다. 삼성, SK, 현대차, LG, 롯데 등 주요그룹을 중심으로 교섭 활동이 이어졌고, 각 기업들은 각기 연관성을 가진 BIE 회원국을 담당해 교류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국가와의 사업 협력 기회를 모색하고, 맞춤형 지원도 논의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일례로 SK는 파리에서 개최한 CEO 세미나를 통해 EU 일부 국가와 전통·신재생 에너지 관련 사업과 관련한 공동개발협약(JDA) 등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도 29일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BIE 회원국 관계자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네트워킹 구축 등의 효과를 거뒀고, 일부 저개발 국가에 기술과 미래 사업을 소개하면서 광물 자원과 전기차 지원 인프라 등에서의 협력 가능성을 타진했다고 밝혔다.

28일 오후(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외곽 팔레 데 콩그레에서 열린 제173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2030 엑스포 개최지 선정 투표 결과가 프레스센터 모니터에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28일 오후(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73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2030 엑스포 개최지 선정 투표 결과가 프레스센터 모니터에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상하이에 진 여수, 인정 엑스포 유치로 노선 변경

실패에 대한 위안을 ‘과정’에서 찾는 모습은 2010 엑스포를 여수에 유치하기 위해 노력했던 과거의 모습과 겹쳐진다. 한국은 지난 2002년, 16조원의 생산 유발 효과를 노리고 2010 엑스포를 여수에 유치하기 위해 민관 합동으로 총력을 다했지만 결국 고배를 마셨다.

당시 BIE 89개국 중 88개국이 참여한 131차 총회 투표에서 여수는 중국 상하이와 막판까지 접전을 벌였다. 한국 여수는 1차 투표에서 2위를 차지한 후 이후 투표에서 역전극을 노렸으나 2~4차 투표에서 판세를 뒤집지 못했고, 결선 투표에서 34표를 얻는 데 그치며 54표를 얻은 상하이에 20표 차이로 패했다. 중국 진출을 원하는 국가들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면서 상하이의 ‘막판 표몰이’가 가능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엑스포 유치는 실패했지만, 정부는 BIE 회원국들을 상대로 벌여 온 활발한 유치 활동이 향후 경제 외교 활동을 강화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또 여수를 세계에 알렸다는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했다. 실제로 이 ‘성과’가 향후 2012 여수 엑스포 유치전에서 발현됐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인정 엑스포인 2012 엑스포 개최를 위한 현지 실사 결과, 여수는 개최 능력과 지역주민의 열망 등에서 ‘탁월하다’는 평을 받았다.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한 민관은 긴밀한 협조 체계를 구축해 총력전을 펼쳤고, 재계도 기업별로 강점이 있는 국가들을 설득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임하면서 힘을 보탰다. 모로코의 탕헤르와 폴란드의 브로츠와프를 밀어내고 엑스포 유치에 성공한 여수의 국제적 인지도는 크게 상승했고, 국내의 대표적인 ‘관광도시’로도 성장할 수 있었다.

2012 엑스포 유치에 성공한 여수의 국제적 인지도는 크게 상승했고, 국내 대표적인 ‘관광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다. 사진은 2012년 7월4일 2012 여수 엑스포 박람회장에서 빅오(Big-O)쇼가 펼쳐지는 모습 ⓒ연합뉴스
2012년 7월4일 2012 여수 엑스포 박람회장에서 빅오(Big-O)쇼가 펼쳐지는 모습 ⓒ연합뉴스

잼버리 사태로 부정적 이미지…국가적 차원 준비 필요

정부는 이번 유치 활동을 통해 한국과 교류가 많지 않았던 나라들과도 접점이 생긴 만큼, 한국 기업과 협력을 요구하는 국가나 정부 차원의 무상원조를 원하는 국가들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등 ‘경제 외교’의 결실은 존재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실패에서 기회를 찾기 전에, 일명 ‘잼버리 사태’ 등으로 부정적으로 굳어져 버린 국가 이미지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11년 전 노래인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사용한 엑스포 최종 PT 영상에 대한 '내용 부실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행사 유치 전 국가적 차원의 준비가 제대로 선행돼야 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부산은 도전을 이어간다는 입장이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엑스포 유치를 국가 사업으로 정해놓고도 사우디보다 1년 늦게 유치전에 나선 점이 뼈 아프다. ‘오일머니’를 앞세운 경쟁국의 유치 활동에 대응이 쉽지 않았다”며 “정부와 부산시민과 충분히 논의해, 2035년 엑스포 유치 재도전을 합리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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