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브리그 ‘빌런’으로 전락한 SSG 랜더스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02 13:05
  • 호수 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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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우승 1년 만에 악수(惡手)·실수 반복하며 나락으로 
랜더스필드 앞 근조화환 “인천 야구는 죽었다”

SSG 랜더스가 프로야구 스토브리그의 주인공이 됐다. 주인공보다는 ‘빌런’에 가깝다. 지난해 ‘와이어 투 와이어’(시즌 개막부터 마지막까지 1위를 유지하는 것) 우승팀의 현재는 ‘혼돈’ 그 자체다. 창단 첫 우승 감독은 전격 경질됐고, 23년 프랜차이즈 스타는 다른 팀으로 이적했다. 그리고, 홈구장인 인천 SSG랜더스필드 앞에는 근조화환이 줄줄이 세워져 있다. 왜 이런 일이 빚어졌을까.

(왼쪽부터) 김원형 SSG 랜더스 전 감독, 김강민 SSG 랜더스 전 선수, 김성용 SSG 랜더스 전 단장 ⓒ연합뉴스

‘SK 색깔 지우기’에 너무 집착했나

인천 야구의 새 주인인 SSG 구단의 불협화음은 지난해부터 들렸다. 정규리그 1위를 했음에도 야구계 안팎에서는 “SSG가 한국시리즈에서 진다면 김원형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후 포스트시즌 도중 김원형 감독과 재계약이 발표되면서 소문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통합우승의 기쁨을 만끽한 후 SSG는 갑자기 류선규 단장과 결별했다. ‘자진 사의’라는 표현을 썼으나 사실상 경질이었다. 류 단장 후임으로 단장직을 맡은 이는 김성용 R&D센터장이다. 야탑고 감독이던 그는 SSG 구단 창단 이후 새롭게 영입된 인물이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2023 시즌은 개막했다. 디펜딩챔피언인 SSG는 중상위권을 오가다가 3위(76승65패3무·승률 0.539)로 정규리그를 마쳤다. 막판까지 두산 베어스, NC 다이노스와 치열한 순위 경쟁을 펼친 끝에 두 팀을 따돌렸다. 세이버메트릭스 기반의 피타고리안 기대 승률(팀 득점·실점을 기반으로 투타 전력에 따른 기대 성적)은 0.471. 전체 7위로 포스트시즌 탈락 수준이었다.

기대보다 순위가 높았던 데는 1점 차 승부에서 강했던 이유가 컸다. SSG는 1점 차 승부에서 22승15패를 올렸다. 선발투수들이 다소 부진한 가운데 노장진·고효준 등 노장 선수들이 불펜에서 버텨줬기에 가능했다. 주요 상황에서 김원형 감독의 투수 교체 타이밍이 적중했다는 뜻도 된다(참고로 피타고리안 기대 승률 2위는 KIA 타이거즈였다.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전력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아 최종 6위에 올랐다).

수치로는 전력 이상의 성적을 냈는데, SSG는 김원형 감독을 ‘잘랐다.’ 어쩌면 작년에 했어야 할 작업이었는지도 모른다. 초보 감독으로 통합우승과 3위로 포스트시즌 진출 성적을 냈던 김원형 감독은 그렇게 계약 기간 2년을 남기고 축출됐다. SSG는 ‘혁신과 변화’를 이유로 댔다. ‘WIN NOW’를 주장하던 팀이 준플레이오프에서 3전 전패를 한 후 급작스럽게 리빌딩 기조를 내세웠다. 타 구단 A 단장은 “김성용 단장이 바이오메카닉과 세이버와 관련해 김원형 감독과 다소 의견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한국시리즈를 앞둔 타 구단 코치 이름까지 나온 끝에 SSG가 새롭게 세운 사령탑은 이숭용 전 KT 위즈 단장(2년 총액 9억원)이다. 이 신임 감독은 성적과 리빌딩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원형 전 감독은 SK 와이번스 색채가 강한 사령탑이었다. SK가 인수했던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프로에 데뷔해 2010년 와이번스맨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반면 이숭용 신임 감독은 현대가 인수했던 태평양에서 1994년 데뷔해 현대 유니콘스를 거쳐 히어로즈에서 프로 유니폼을 벗었다. 지금은 사라진 현대 유니콘스와 SK 와이번스는 한때 인천 야구의 진짜 계승자를 놓고 다투기도 했었다. 물론 유니콘스는 서울로 가기 위해 인천을 버리고 수원에 잠시 둥지를 틀었다가 야구 역사에 이름만 남게 됐지만 말이다.

감독 교체와 더불어 SK에서 현역 생활을 했던 김민재·정상호·정경배·조웅천·이진영·채병용·박정권 등 코치도 팀을 떠났다. 이들이 떠난 자리는 대부분 ‘비(非)SK’ 출신들로 채워졌다. NC 다이노스의 도움으로 국외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던 손시헌 코치가 2군 감독으로 왔고, 수석코치로 송신영, 타격코치로는 강병식이 영입됐다. 이숭용 감독과 함께 현대와 히어로즈에서 현역 생활을 했던 이들이다. 투수코치 자리에는 올 시즌 롯데 자이언츠 내부 불화의 원인으로 지목되며 시즌 후 현장에서 제외됐던 배영수 코치가 왔다. 1군 코칭스태프만 보면 와이번스 색깔은 희미해졌다.

그리고, 더 큰 태풍이 몰아쳤다. 김성용 단장 등 SSG 운영진은 2차 드래프트 35인 보호 선수 명단에서 23년 프랜차이즈 선수 김강민을 제외했다. 팀 리빌딩 기조와 맞물려 1982년생인 김강민은 구단과 은퇴 등을 논의 중이었다. 하지만 김강민은 현역 연장 의지가 강했다. 선수와 의견 조율이 안 됐다면 35인 보호 선수로 묶었어야 하는데 SSG는 하지 않았다. 1~3년 차 선수가 자동 보호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김강민을 45인 이외의 전력으로 분류한 셈이다. 보호·지명 가능 선수를 넘기면서 타 구단에 대한 도의상 군 입대나 은퇴 예정 선수들은 따로 표기하는데 이 또한 하지 않았다. SSG는 연봉이 높은 팀 주축 투수까지 35인에 포함하지 않은 것이 실명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11월29일 인천시 미추홀구 문학경기장 일대에 SSG 랜더스 구단을 향한 팬들의 항의가 담긴 근조화환이 설치돼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다른 팀이 뽑을 줄 몰랐다”는 안일함에 팬들 분노

사실 이미 리빌딩을 선언한 구단 입장에서 후속 대응만 적절했다면 후폭풍이 미약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김성용 단장은 “은퇴 논의 중이었는데, 누가 지명할 줄 알았겠는가”라며 당혹스럽다는 자세를 취했다. 처음부터 ‘김강민의 현역 연장 의지가 워낙 강했고, 어린 유망주 보호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팀은 떠나지만 김강민의 앞날을 응원하겠다’는 식의 대응이 나왔다면 SSG 팬들을 비롯한 여론의 반발은 지금처럼 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35인 보호 선수를 짜는 전략도, 그 이후의 대응도 프로의 자세가 아니었다. 프로는 선택에 책임을 지는 곳이고, 그 선택에 대한 합당한 이유를 설득하거나 설명하면 되는 것이었다. 한 팀의 구단 운영자로서 “(다른 팀이) 뽑을 줄 몰랐다”처럼 안일하고, 안이한 말도 없다.

SSG는 이후 사태 수습을 위해 뒤늦게 KBO와 한화 구단에 지명 철회 등을 읍소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지명된 선수는 1년간 트레이드가 불가능하다. 이후 김성용 단장은 보직 해임됐고, 1년 만에 R&D센터장으로 좌천됐다. R&D센터장은 김성용 전 단장이 단장일 때는 공석인 상태로 있었다. 김성용 센터장을 위해 일부러 만든 자리였다는 게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한 야구인은 일련의 사태를 바라보며 “지금 SSG 내부에는 전략가나 브레인이 없는 것 같다. 팀 고유의 정체성, 아이덴티티가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구단 인수 후 겪는 과도기를 SSG가 이제야 겪고 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미숙한 일 처리로 선수와 팬이 상처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랜더스필드 앞 근조화환에 적힌 문구 중 하나는 이렇다. ‘인천 야구는 죽었다.’ 인천 야구팬에게 정용진 구단주는 여전히 ‘용진이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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