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바이든의 대안 없나…헤일리·뉴섬에 쏠리는 시선
  • 김현 뉴스1 워싱턴 특파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09 10:05
  • 호수 1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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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보수·진보 진영, 극단과 노령 리스크 피하기 위해 고육지책

2024년 미국 대선이 11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간 ‘리턴 매치’ 구도가 굳어질지 여부에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워싱턴 정가에선 여전히 두 사람 간 재대결을 높게 점치고 있지만, 최근 들어 민주당과 공화당에서 경선 주자나 제3의 정치인들이 급부상하면서 향후 본선 구도의 변화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왼쪽)니키 헤일리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 니키 헤일리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 ⓒAP 연합·AFP 연합

자금력 막강한 코크 네트워크, 헤일리 지지

공화당에선 니키 헤일리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상승세를 타고 있다. 경선 초반만 해도 트럼프의 강력한 대항마로 꼽혔던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에게 관심이 집중되면서 헤일리 전 대사에 대한 주목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경선이 본격화하면서 헤일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불참한 당내 경선 후보 토론 등에서 두각을 나타낸 반면 디샌티스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고, 이에 두 사람의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우선 헤일리 전 대사는 최근 다수의 여론조사에서 디샌티스 주지사를 제치고 가장 유력한 ‘트럼프 대안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가 11월17일 공개한 뉴햄프셔주 여론조사에서 헤일리는 18%의 지지율을 기록, 트럼프(46%)에는 한참 뒤졌지만 디샌티스(7%)를 크게 따돌리며 2위를 차지했다. 헤일리는 민주당 대선후보로 유력한 바이든 대통령과의 가상 양자 대결에서도 선전하면서 본선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 메신저와 해리스가 12월5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헤일리는 41%를 얻어 바이든(37%)을 4%포인트 차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헤일리는 CNN이 11월초 공개한 여론조사에선 바이든과의 가상 대결에서 6%포인트(49%-43%) 차로 앞서, 오히려 트럼프의 경쟁력(4%포인트 차)보다 더 나은 결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에 보수진영 내 ‘비(非)트럼프’ 그룹들의 지지세도 디샌티스 주지사에서 점차 헤일리 전 대사에게 옮겨가고 있는 분위기다. 보수 성향 억만장자 찰스 코크가 이끄는 정치단체 ‘번영을 위한 미국인들(AFP)’이 11월28일 헤일리 전 대사를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AFP는 거액 기부자 모임인 ‘코크 네트워크’를 대표하는 단체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화당 대선후보 선출을 막기 위해 활동해 왔다. 당초 디샌티스 주지사 지지를 고려했던 AFP는 성명에서 “헤일리 전 대사는 지금의 정치 시대를 종식하고, 공화당 경선에서 승리해 내년 11월 바이든 대통령을 이길 기회를 미국에 제공한다”고 밝혔다. 미 언론들은 막대한 자금력과 조직력을 갖춘 코크 네트워크의 지지는 헤일리 전 대사가 압도적인 선두를 달리는 트럼프를 추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월가의 큰손들도 헤일리 전 대사를 지원하고 있다. ‘헤지펀드의 전설’로 알려진 스탠리 드러켄밀러, 헤지펀드 시타델 창업자 켄 그리핀, 부동산 업계 거물 배리 스턴리히트 등이 지지를 선언했고,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은 11월29일 뉴욕타임스가 개최한 행사에서 트럼프에 대한 대안론을 펴며 “여러분이 매우 진보적인 민주당원이라 할지라도 헤일리 전 대사도 도와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지지자로 알려진 비즈니스 네트워크 사이트 ‘링크드인’의 공동 창업자 리드 호프먼은 최근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를 막기 위한 차원에서 헤일리의 선거운동을 돕는 슈퍼팩(super PAC·특별정치활동위원회)에 25만 달러(약 3억3000만원)를 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 대사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 시절 기업 유치를 위해 노력하는 등 친기업적 성향을 지닌 데다 낙태 문제 등 각종 사회정책에서 경직된 당의 입장보다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중도·무당층을 흡수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AP통신은 인도 이민자의 딸인 유색인종 여성이자 경험이 풍부한 보수 지도자, 외교정책에서 매파로 평가받는 전 대사가 공화당이 내년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에 맞서 지지층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28년 출마 예상’ 뉴섬 인기에 바이든 긴장

내년 대선 출마 선언도 하지 않은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에게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재선 고지에 오른 뉴섬이 최근 들어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뉴섬 주지사는 11월30일 폭스뉴스 주최로 디샌티스 주지사와 토론을 벌였다. 당시 토론은 뉴섬이 지난해 9월 제안해 성사된 것으로, ‘민주당 대표 주(州) 대 공화당 대표 주의 대결’이라는 콘셉트로 마련됐다. 당시 디샌티스 주지사가 텍사스주 불법이민자 50명가량을 매사추세츠주의 부유층 거주지에 비행기로 이송하자, 뉴섬 주지사가 이민정책 등에 대한 토론을 요구했다. 두 사람은 장외 공방을 벌였고 디샌티스 주지사가 수용하면서 올해 8월에야 토론 개최에 합의했다.

이민과 보건 등 각종 정책을 놓고 날 선 설전을 주고받은 이번 토론에 대한 평가는 현재 극명하게 엇갈리는 분위기지만, 뉴섬 입장에선 대권주자인 디샌티스와의 토론으로 전국적 인지도를 높이는 성과를 얻었다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정치 전문매체인 ‘더힐’은 “황금시간대에 진행된 이번 토론은 거의 500만 명이 시청했다”며 “뉴섬 주지사에게는 전국 시청자들에게 자신을 더 많이 소개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됐다”고 했다.

뉴섬은 재선에 성공한 이후 소수인종 우대 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과 낙태, 성소수자 인권 문제 등에서 진보적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다. 여기에 지난 10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기습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을 찾은 데 이어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나는 등 외교 무대로까지 보폭을 넓히고 있다. 때문에 미 정치권에선 뉴섬이 내년 대선을 겨냥한 포석을 두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와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은 11월15일 샌프란시스코 APEC 정상회의에서 뉴섬 주지사를 향해 “사실 그는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일자리(대통령직)를 가질 수도 있다”고 뼈 있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뉴섬은 최근 토론에서도 내년 대선 불출마 입장을 피력하는 등 손사래를 치고 있다. 뉴섬 주변에선 그가 2024년이 아닌 2028년 대선을 노리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그래선지 뉴섬은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도전을 지지하면서 바이든 행정부의 성과를 홍보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럼에도 미 언론 등은 뉴섬이 ‘섀도 캠페인(shadow campaign·그림자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 어린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공식적인 대선 출마를 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대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다. 미 연방 상원의원 보좌진 경험을 갖고 있는 데릭 헌터도 더힐에 기고한 글에서 “뉴섬 주지사는 바이든 대통령이 자신의 나이와 정신적 능력이 쇠퇴하는 현실에 굴복할 경우를 대비해 민주당 대선후보 지명을 위한 ‘섀도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최근 뉴섬 주지사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한 민주당 소속 시장 후보에게 금전적 기부를 한 것을 거론하며 “다른 주의 정치 선거에 관여하는 것은 전국적 무대에서 인지도를 높이고자 하는 잠재적인 대선후보의 확실한 신호”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현재 고령과 건강 리스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이 국정수행 지지율 하락세를 반전시키지 못한 채 위기에 봉착할 경우 뉴섬 주지사는 당내에서 대안 주자로 가장 먼저 거론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헌터는 기고문에서 “뉴섬 주지사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자신이 이번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그가 출마하진 않을지라도 필요성이 대두될 경우엔 준비가 돼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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