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주변 여권 정치인들에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08 17:05
  • 호수 178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 대통령 위해 희생하겠다는 정치인 아무도 없어
결국 용두사미 실패로 끝난 인요한 혁신위···국민의힘, ‘강서 참패’ 원점으로 돌아가

“지도부의 혁신 의지를 믿고 맡겨 달라.”(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오늘 만남을 통해 김 대표의 희생과 혁신에 대한 의지를 확인했다.”(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

그동안 갈등을 빚어온 두 사람의 15분짜리 짧은 회동은 이렇게 내용 없는 덕담만 주고받은 채 끝났다. 10월23일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던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말을 꺼내며 등장했던 인 위원장이었지만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지금까지 혁신위가 절반의 성과를 만들어냈다면 나머지 절반의 성공은 당이 이뤄주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인 위원장은 김 대표에게 말했지만, 인요한 혁신위가 ‘절반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인 위원장 스스로 중과부적(衆寡不敵)의 상황임을 깨닫고 파국적 결별을 피하기 위한 봉합 수순에 들어갔음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인 위원장이 김 대표를 만나 일종의 고별사를 했으니, 이제 인요한 혁신위는 더 이상 할 일이 없게 되었다. 임기는 12월24일까지로 돼있지만 위원회의 동력이 상실된 상황에서 추가적인 혁신안을 내놓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다. 혁신위는 당초 12월7일 회의에서 ‘당 주류의 희생’을 담은 6호 혁신안 등을 포함해 최고위원회의에 올릴 최종 혁신안을 논의할 예정이었다. 특히 혁신위가 요구했던 지도부·중진·친윤계의 총선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에 대해 최고위원회의가 논의조차 하지 않은 데 대한 추가 입장을 정리할 계획이었다. 일각에서는 혁신위가 김 대표의 사퇴와 비상대책위원회 설치라는 마지막 강수를 던질지 모른다는 관측도 있었다. 하지만 김기현-인요한 회동 결과는 그런 모든 얘기가 더 이상 힘을 받기 어렵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인요한 혁신위는 국민의힘을 혁신하는 데 실패했고, 결국 조기 해산으로 귀결되었다.

ⓒ시사저널 박은숙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왼쪽)와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11월1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면담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무대응이 최선의 대응’ 전략으로 대응

그동안 인요한 위원장이 가장 역점을 두었던 혁신 과제는 지도부·중진·친윤계의 총선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였다. 당사자들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인 위원장은 “대통령을 지지하고 사랑하면 희생하자는 것”이라며 결단을 촉구했지만 이를 수용한 지도부·중진·친윤은 아무도 없었다. 마침내 인 위원장은 김기현 당대표가 12월4일까지 답해 달라고 통첩성 요구를 했지만 그날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대신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혁신위가 가장 진취적이고 성공적으로 활동해 왔다. 당 지도부에서 취지가 잘 반영되고 활동을 원만히 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자는 의견이 공유됐다”고 전했다. 정작 혁신위의 핵심 요구에는 응답하지 않으면서 구름 잡는 얘기로 혁신위를 치켜세우는 선문답이었다.

인요한 혁신위의 요구에 대해 국민의힘 지도부는 ‘무대응이 최선의 대응’이라는 전략으로 대응해 왔다. 혁신위가 제시한 험지 출마 요구에 반대하거나 제동을 걸면 논란이 확산되니 아예 무시해 김을 뺀다는 의미였다. 소리 나지 않게 혁신위의 험지 출마 요구를 무력화시키는 노회한 방식이었던 셈이다. 김기현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미 인요한 혁신위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왔다. “당의 리더십을 흔들거나 당의 기강을 흐트러뜨리는 것은 하지 않아야 한다”(김 대표)며 험지 출마 자체를 둘러싼 공방은 피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지도부는 굳이 왈가왈부하지 않는 방식으로 험지 출마 요구를 없었던 얘기로 만들겠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그래서 김기현 지도부는 험지 출마 요구를 굳이 반대하지 않고서도 무력화시킨 결과를 얻게 되었다.

반대하지만 반대하지 않는다. 인요한 혁신위의 험지 출마 요구에 대해 국민의힘 지도부와 영남 중진, 친윤계가 보인 모습이다. 오히려 시간에 쫓긴 것은 활동 시한 종료가 다가오고 있던 혁신위였다. 하지만 외부인들이 중심이 된 혁신위이기에 선택할 수 있는 결단의 방법은 애당초 제한적이었다. 더구나 12월5일 윤석열 대통령이 김기현 지도부와 깜짝 오찬 회동을 하면서 윤 대통령이 인요한 혁신위가 아닌 김기현 지도부에 힘을 실어주었다는 해석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환경에서 혁신위가 조기 해산을 결정하든, 당 지도부 사퇴를 건의하든 지도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분위기가 된 것이다.

 

홍준표 “다가오는 엄동설한을 어찌할꼬”

결국 국민의힘을 혁신하겠다며 왔던 인요한 위원장과 외부 혁신위원들은 아무런 결실도 거두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게 되었다. 지난 8월 민주당에서 김은경 혁신위가 3호 혁신안을 끝으로 조기 종료하는 상황을 맞았다. 그때 국민의힘은 “용두사미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딱 맞아떨어졌다. 한국 정치사에 부끄러운 기록으로 두고두고 남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 말이 이제 국민의힘에 부메랑이 되어 날아오게 된 것이다.

이제 국민의힘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했던 그날로, 그러니까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지난 11월말 국민의힘 혁신위원회에서 김경진 혁신위원이 꺼냈다가 외부 혁신위원들이 반발해 사의 표명까지 했던 말이 있다. “외부에서 온 위원들이 잘 모르는 게 있다. 우리는 김기현 지도부 체제를 잘 유지하고 연착륙시키기 위한 시간끌기용일 뿐이다. 이미 다 정해져 있다.” 지금 복기해 보면 천기누설이었던 셈이다. 김기현 지도부는 시간끌기에 성공하면서 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이러고서도 총선에서 이기겠다고 하느냐’는 소리를 피해 가기는 어렵게 되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이런 구절이 있다. “대통령실 인사들은 모두 양지를 찾아 떠나고/ 미숙한 참모들만 데리고 힘든 국정을 끌고 가야 하는구나/ 당마저 사욕에 눈멀어 도와주지 않고/ 첩첩산중에서 나홀로 백척간두에 섰으니/ 다가오는 엄동설한을 어찌할꼬.”

인요한발 험지 출마 요구에 대한 윤 대통령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윤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내가 희생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윤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 중에 아무도 없었음은 사실이다. 정치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홍 시장이 말한 ‘엄동설한’이 어떤 것인가를 익히 알고 있다. 윤 대통령 가까이에 몰렸던 많은 여권 정치인에게 진짜로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던가라는 속내를 읽게 된 시간이었다. 인요한 혁신위가 거둔 유일한 성과가 있다면 아마 그것일지 모른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