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는 ‘숨은 포스트 김연경 찾기’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24 09:05
  • 호수 1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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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배구, 김연경 국대 은퇴 후 아시안게임 8강 탈락·VNL 27연패 수모
강소휘의 활약이 그나마 눈에 띄어…이다현도 성장 기대

‘포스트 김연경은 누구일까.’ 대한민국 여자배구가 안은 숙제다. 거론되는 후보는 몇몇 있다. 하지만 김연경(35·흥국생명)만큼의 임팩트를 주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여자배구는 2012 런던올림픽 4강, 2020 도쿄올림픽 4강 등에서 보여준 투혼으로 많은 팬을 끌어모았다. 특히 도쿄올림픽의 경우 차세대 주자였던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가 학교폭력 의혹으로 낙마했음에도 김연경을 중심으로 ‘원팀’으로 똘똘 뭉쳐 기적 같은 준결승 진출을 일궈내 국내 팬들에게 많은 감동을 선사했다.

김연경이 도쿄 대회 직후 국가대표에서 은퇴한 이후 여자배구는 차세대 스타를 발굴하려고 노력해 왔다. 하지만 쉽지 않다. 여자배구는 올해 항저우아시안게임 때 8강에서 탈락하며 17년 만에 아시아 무대의 시상대에도 오르지 못했다.

국제배구연맹(FIVB)이 주관하는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전 세계 12개 팀 참가)에서는 2년 연속 12전 전패를 당하면서 승점을 하나도 얻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2021년부터 무려 VNL 27연패 중이다. 내년 VNL 출전 자격은 얻었지만 FIVB 세계 순위 40위로 떨어진 상황에서 2025년부터는 VNL 출전이 어려울 수 있다. 배구계 안팎에서 깊은 한숨이 나오는 이유다. 도쿄올림픽에서 봤듯이 국내 리그 흥행을 위해서는 국제대회 성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GS칼텍스 아웃사이드 히터 강소휘 ⓒ연합뉴스

박정아·이소영·김희진 등 기대에 못 미쳐

국내 프로배구인 2023~24 V리그는 그나마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구축된 팬덤이 살아있다. 김연경이 여전한 실력으로 ‘원톱’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가운데 박정아(30·페퍼저축은행), 양효진(34·현대건설), 이소영(29·정관장) 등이 인기의 중심에 있다. 김희진(32·IBK기업은행)도 강력한 팬덤이 있지만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지난 2월 수술을 받아 올 시즌 코트에는 아직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국가대표 ‘캡틴’ 박정아는 올 시즌을 앞두고 FA(자유계약)로 한국도로공사에서 페퍼저축은행으로 이적했다. 3년 동안 연간 총 7억7500만원(연봉 4억7500만원·인센티브 3억원)을 받을 수 있는데, 여자 배구선수 중 최고 계약이었다. 박정아는 2022~23 시즌 16.44점의 평균 득점을 올렸으나 페퍼 유니폼을 처음 입은 올 시즌에는 평균 득점이 11.81점으로 줄었다. 공격 성공률 또한 데뷔(2011년) 이후 가장 저조(32.73%)하다. 한 배구 관계자는 “에이징 커브가 일찍 온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고 우려했다.

이소영은 현재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가 8만 명이 넘는다. 김연경을 제외하고 여자배구 선수 중에서는 꽤 많은 편에 속한다. 팬들 성향도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어깨 부상 후 기량이 예전만큼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정규리그 10경기 평균 득점이 한 자릿수(2.9점·공격 성공률 36.92점)에 그친다. 2022~23 시즌 이소영의 경기당 평균 득점은 12.69점이었다. 통산 평균 득점도 11.81점이다.

올 시즌 V리그에서 가장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는 선수는 강소휘(26·GS칼텍스)다. 강소휘는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발목 수술을 하면서 태극마크를 반납해야 했다. ‘도쿄발 훈풍’의 수혜자는 아니지만 실력이 좋아 그 이전부터 팬을 몰고 다녔다. 강소휘는 올 시즌 경기당 평균 득점 15.12점을 기록하고 있다. 득점 전체 10위로 외국인 선수, 아시아쿼터 선수 일색인 득점 순위에서 국내 선수로는 ‘유이’하게 김연경(8위)과 함께 이름을 올리고 있다.

공격 성공률은 42.55%로 2015~16 시즌 데뷔 이후 가장 좋다. 강소휘는 지난 시즌 처음으로 공격 성공률이 40%를 넘은 바 있다. 공격 종합은 6위. 역시나 국내 선수 중에는 김연경(2위·공격 성공률 44.59%) 다음으로 순위가 높다. 강소휘는 올 시즌 후 FA 자격을 얻기 때문에 동기 부여도 충분하다. 국외리그 진출을 노린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국내리그에서의 대우가 국외리그와 비교해 떨어질 게 없기 때문에 결국엔 잔류하지 않겠냐는 전망이 우세하다.

현대건설 미들 블로커 이다현(22) 또한 실력과 미모를 겸비한 선수로 평가받는다. 1990 베이징아시안게임에 출전했던 어머니(류연수)를 따라 배구선수가 된 그는 팬 서비스도 좋아 올스타전에서 두 시즌 연속 세리머니상을 받기도 했다. 이다현은 프로 데뷔 5번째 시즌을 맞고 있는데 51.19%의 높은 공격 성공률로 경기당 7.5점을 보태고 있다. 다만 “실력으로 더 치고 올라오지 못한다”는 아쉬운 평가는 있다. 팀 선배인 미들 블로커 양효진이 5년 차 때 평균 득점 16.1점을 올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이다현 외에도 박혜민(23·정관장), 최정민(20·IBK기업은행) 등도 차세대 스타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최정민의 경우는 도쿄올림픽 직후 열려 관심이 쏠린 2021 코보컵에서 공격적인 모습을 선보이며 더욱 주목을 받은 사례다. 194cm 신장으로 여자부 국내 선수 중 가장 키가 큰 몽골 출신의 염어르헝(19·페퍼저축은행)은 기대를 많이 모았으나 부상 때문에 지금껏 제 기량을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 2022~23 시즌에 두 경기만 치르고 무릎 수술을 받은 염어르헝은 이번 시즌 9경기에 출전했는데 또다시 수술대에 오른다. 내년 1월에 오른쪽 무릎 반월상연골(내외측손상)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는데 6~8개월의 재활 기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2022년 10월28일 광주 서구 페퍼스타디움에서 열린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페퍼저축은행 AI페퍼스와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의 경기에서 현대건설 이다현이 공격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쿄올림픽 4강 신화 이후 몰려들던 여자배구 관중 다시 감소

‘포스트 김연경’이라고 불릴 만한 차세대 선수가 딱히 없는 가운데, 여자배구는 1·2라운드 동안 작년 대비 관중이 감소했다. 한국배구연맹(KOVO) 관계자는 “남자부는 관중이 15% 정도 늘어났는데 여자부는 5% 감소했다”고 밝혔다. 엔데믹 시대를 맞아 보복소비 심리로 프로야구·프로축구·프로농구 등의 관중이 전 시즌 대비 20~30% 늘어난 가운데 여자배구는 오히려 관중이 줄어든 셈이다. 김연경의 리그 재복귀 호재가 있던 2022~23 시즌과 달리 이번 시즌에는 VNL, 아시안게임 참패 등 악재만 있던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도쿄올림픽 영광 이후 새로운 팬이 유입되지 않은 결과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한때 프로야구 인기까지 넘보던 여자배구의 현주소다.

여자배구는 현재 현대건설과 흥국생명이 상위권 다툼을 하는 가운데 GS칼텍스, 정관장, IBK기업은행이 중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디펜딩 챔피언’ 도로공사는 6위로 처져 있다. 두 시즌 연속 최하위를 기록한 막내 구단 페퍼저축은행은 오프시즌 동안 박정아 등을 보강했으나 꼴찌 탈출이 여전히 쉽지 않다.

배구연맹 관계자는 “아마추어 선수들의 기량이 예전만 못한 점도 있다. 현장에서 신인 드래프트 때 뽑을 선수가 없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아마추어 뎁스 약화가 배구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제대회 성적에 따른 스포트라이트에 가려져 있던 국내 배구의 문제점을 찬찬히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 배구계 중론이다. 지금 당장 눈에 띄는 ‘포스트 김연경’은 없지만 ‘포스트 김연경’이 탄생할 토양은 만들어놔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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