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분쟁지’ 논란의 軍교재 집필, 현역 군인만 참여했다
  • 강윤서 기자 (kys.ss@sisajournal.com)
  • 승인 2023.12.29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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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진, 민간 학자 없이 현역 군인·군무원만 10명
국방부 “민간 교수 보수·진보 구색 갖추다 지연될까봐”
국방부가 우리 고유 영토인 독도를 '영토분쟁 지역'으로 기술한 군 장병 정신교육 교재를 전량 회수하기로 했다. 사진은 논란이 된 국방부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 표지 ⓒ 연합뉴스
국방부가 우리 고유 영토인 독도를 '영토분쟁 지역'으로 기술한 군 장병 정신교육 교재를 전량 회수하기로 했다. 사진은 논란이 된 국방부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 표지 ⓒ 연합뉴스

국방부가 독도를 ‘영토 분쟁 지역’으로 기술한 군 장병 정신교육 교재의 집필 과정에 현역 군인·군무원만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정부에서 발간한 교재와 달리 민간 학자가 집필진에 전혀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29일 국방부 등에 따르면, ‘문제적 내용’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 개정판 집필은 현역 군인과 군무원만 참여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집필진은 김수광 국방부 정책기획관(육군 소장)과 김성수 국방부 정책기획처장(육군 준장) 등 10명이다. 두 장군을 제외하고 장성급이 아닌 중위부터 대령까지는 현역 군인과 군무사무관이었다.

자문위원과 감수진도 대부분 군인들로 채워졌다. 자문 인력 10명 중 4명은 육·해·공군·해병대 공보정훈실장 등 현역 군인이었다. 감수에는 민간 대학교수들도 참여했지만, 국방부 국제정책차장과 국방정신전력원 군교수(국방부 산하기관) 등이 대거 투입됐다.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는 5년마다 개편되는데 통상 민간 전문가 등이 집필에 참여해왔다. 지난 2019년 문재인 정부 시절 발간된 교재는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 수원보훈지청장을 지낸 노영구 국방대 교수, 김영수 서강대 교수, 최영진 중앙대 교수 등 박사학위와 관련 분야 전문성을 갖춘 민간 학자들이 집필에 참여했다. 

이번 개정판과 달리 감수·자문진에 현역 군인은 포함되지 않았고, 대학교수와 외교·안보 분야를 오래 취재해 온 언론인 등이 참여했다. 

군인 일색의 집필진 구성에 대해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여러 기준을 토대로 심의 등을 거쳐서 선정된 것”이라고 밝혔다. 군 소식통도 “문재인 정부 때처럼 민간 교수들에게 집필을 맡기면 보수와 진보 구색을 갖춰야 하는데, 그러면서 서로 합의가 안 되고 교재 발간이 늦어진다는 우려가 있었다”며 “속도감 있게 집필하기 위해 현역 군인들이 집필하고 외부 자문을 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국방부의 안일한 방침이 논란의 도화선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2019년 교재 집필의 책임연구자였던 최영진 중앙대 교수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새 교재 집필진 구성과 관련해 “상명하복 군 조직 문화와 정부 정책 기조가 집필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역사 사실을 왜곡하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폐쇄적인 군대 문화가 집필 과정에도 투영돼 역사 왜곡이나 부적절한 내용이 반영되는 것을 막거나 제지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최 교수는 이어 “2017~2018년 제가 집필할 당시에도 정권이 바뀌면서 국방부가 정부 눈치를 보는 경향이 있었지만, 정치적인 쟁점이 될 부분은 특히 유의하거나 아예 내용을 뺐다”고 덧붙였다.

국방부가 우리 고유 영토인 독도를 '영토 분쟁 지역'으로 기술한 군 장병 정신교육 교재를 전량 회수하기로 했다.국방부는 28일 입장문을 내고 "기술된 내용 중 독도영토 분쟁 문제, 독도 미표기 등 중요한 표현 상의 문제점이 식별되어 이를 전량 회수하고, 집필 과정에 있었던 문제점들은 감사 조치 등을 통해 신속하게 조치하겠다"고 밝혔다.사진은 독도를 영토 분쟁 지역으로 기술한 국방부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 ⓒ연합뉴스
국방부가 우리 고유 영토인 독도를 '영토 분쟁 지역'으로 기술한 군 장병 정신교육 교재를 전량 회수하기로 했다.국방부는 28일 입장문을 내고 "기술된 내용 중 독도영토 분쟁 문제, 독도 미표기 등 중요한 표현 상의 문제점이 식별되어 이를 전량 회수하고, 집필 과정에 있었던 문제점들은 감사 조치 등을 통해 신속하게 조치하겠다"고 밝혔다.사진은 독도를 영토 분쟁 지역으로 기술한 국방부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 ⓒ연합뉴스

앞서 국방부는 새로 발간한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에 대한민국 고유 영토인 독도를 ‘영토분쟁이 진행 중인 지역’으로 기술해 논란을 빚었다.

교재에는 “한반도 주변은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여러 강국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며 “이들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군사력을 해외로 투사하거나,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쿠릴열도(일본명 지시마열도), 독도 문제 등 영토분쟁도 진행 중에 있어 언제든지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고 기술됐다.

국방부가 기술한 내용대로라면 독도는 센카쿠, 쿠릴열도와 같이 영토분쟁 중인 곳이 된다. 이는 독도를 명백한 우리 영토로 보고, 독도 관련 영토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독도를 영토분쟁 지역으로 규정한 일본 정부의 논리를 한국군 교육 자료에 실으면서 일본의 야욕에 빌미를 준 것이란 비판도 쏟아졌다.  

국방부는 문장의 주어가 ‘이들 국가(한반도 주변국)’이라는 점을 짚으면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소개한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이 28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은 이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크게 질책하고 즉각 시정 등 엄중히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하자, 국방부는 전격 교재 전량을 회수했다. 이 교재는 이달 말 전군에 배포될 예정이었다. 4만 부 중 절반에 해당하는 2만 부는 이미 일선에 배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새 정신교육 교재에 등장하는 한반도 지도 11개 모두 독도를 표기하지 않은 것을 놓고도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중요한 문제점”이라며 반영해 수정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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