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정치가 낳은 정치 테러, 정치인들의 자업자득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2.02 16:00
  • 호수 1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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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편은 박멸해야 할 절대악이고 우리 편은 언제나 옳은 절대선’
선악 이분법이 지배한 우리 정치의 그늘

과거 해방 정국에 우리는 정치 테러로 점철된 뼈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좌우 세력이 극한 대립을 하던 상황에서 민족 지도자였던 송진우 암살(1945년), 여운형 암살(1947년), 장덕수 암살(1947년), 김구 암살(1949년) 등이 이어졌다. 서북청년단 같은 조직이 공공연히 사적인 복수와 응징을 하던 무법천지의 시절이었다. 정치 테러의 역사는 독재정권 아래에서도 계속됐다. 1969년에는 3선 개헌 반대 투쟁을 이끌던 김영삼 당시 신민당 원내총무가 질산 테러를 당했고, 1973년에는 김대중 전 신민당 대선후보를 살해하려던 납치 사건이 있었다. 정치적 야만의 시대에 창궐했던 테러 행위들이다.

그런데 이제 2024년이다. 해방 정국에 발호했던 정치 테러들이 있은 지도 70년의 세월이 지났다. 이제는 국민 직선제에 따라 대통령을 선출하고 평화적 정권교체도 정착됐다. 아무리 대통령이라 해도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면 탄핵당해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는 시대가 됐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이만하면 민주주의의 제도화가 어느 정도는 이루어졌다고 자부하던 나라였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1월2일 부산 가덕도 대항전망대에서 피습됐다. ⓒ연합뉴스

이재명·배현진 피습…혐오정치가 낳은 결과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다시 정치 테러가 잇따르고 정치인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광경이 재연되고 있다. 우리 정치가 무법천지의 시절로 되돌아가려는 것일까. 1월2일에는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시찰하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지자를 가장한 김아무개씨의 흉기에 목을 찔려 긴급 수술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검찰은 범인 김씨가 장기간 치밀하게 준비하고 계획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혀 우발적인 범행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검찰에 따르면 극단적인 정치 성향에 빠져든 김씨가 ‘22대 총선에서 이 대표가 종북 세력 공천을 주도하고 의석수를 확보해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이 적화될 것이므로 이를 막아야 하고, 이 대표에 대한 형사재판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범행을 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는 잘못된 신념을 갖고 범행을 했다는 것이다. 검찰이 밝힌 범행 동기에 따르면 자신이 반대하는 정치인을 살해하려고 범행을 저지른 정치 테러로 보인다. 단독 범행이었다고는 하지만 정적(政敵)에게 위해를 가해 살해하려는 끔찍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아직도 있다는 사실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이 대표 피습 사건이 잊히기도 전에 이번에는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15세 중학생에 의해 돌로 가격당하는 피습 사건이 발생했다. 손에 돌을 들고 갑자기 공격하기 시작한 A군은 배 의원의 머리를 18초간 17차례나 가격했고 쓰러진 배 의원은 응급실로 이송되어 상처를 봉합하는 시술을 받아야 했다. 경찰은 피의자 A군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하는 등 A군의 행적과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범행 동기를 확인하지는 못한 상태다. 하지만 10대 청소년까지도 정치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테러 행위에 나섰다는 점은 상당한 충격을 주고 있다.

이렇게 연이은 정치 테러로 인해 정치인들의 신변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정치인 피습 사건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증오와 혐오정치가 낳은 결과로 파악된다. 그동안 우리 정치를 지배해 왔던 선악의 이분법은 상대편은 박멸해야 할 절대악이고, 우리 편은 언제나 옳은 절대선이라는 환각을 지지자들에게 심어주었다. 그래서 상대 진영을 무너뜨리고 해치기 위한 행동은 정의로운 것으로 찬미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좌우 극단에서 확산된 유튜브 방송들은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필자가 한때 놀랐던 것은 김어준씨를 통해 정치를 배웠다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던 일이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까지 걸어왔던 험난한 역사는 모른 채 김어준의 유튜브 방송을 들으면서 정치를 알게 되었다는 사람들 얘기는 사실 당혹스러웠다. 물론 한때는 김어준 등의 ‘나꼼수’가 나름대로 했던 역할도 있었지만, 음모론과 마타도어로 가득한 김어준류의 유튜브 방송을 통해 정치를 이해하고 배우는 사람이 많아진 것은 우려할 일이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실이 1월25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건물에서 배 의원이 습격당하는 장면이 담긴 CCTV 화면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정치 테러 사건에 또 정쟁 벌이는 여야

정치란 무엇인가. 인간들 사이에 빚어지는 갈등을 조정해 공동체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정치의 책무다. 그것은 역지사지하면서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아는 성숙한 인간들이 할 수 있는 행위다. 오직 정치에만 매몰된 사람들은 그런 시야를 갖지 못한다. 그런데 좌우의 극단주의적인 유튜브 방송들이 팬덤을 기반으로 급격히 확산되고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 머리로 판단하지 않고 유튜버들의 주장을 교리처럼 신봉하는 사람이 늘어간다. 상대를 박멸하고 제거해야 할 존재로 여기는 사고는 여기로부터 창궐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은 머릿속에서만 그런 생각을 하는데 몇 사람은 기어코 행동으로 옮긴 것이 우리가 지켜본 끔찍한 정치 테러인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정치 테러까지 촉발시키게 된 증오의 정치가 다름 아닌 정치인들 스스로 자초한 업보라는 점이다. 우리 정치를 지배하고 있는 증오의 정치는 바로 정치인들의 언행을 통해 만들어져왔다. 상대 진영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제압해야 할 상대로 간주한다. 그러니 정치는 전쟁이 되고 만다. 그들을 향해 저주의 독설을 날릴수록 강성 팬덤 지지층은 환호하며 열광한다. 여야 정당의 지도부 회의가 열리면 서로가 강경 발언 경쟁에 나서는 것도 지지층의 인기를 얻기 위한 행위에 다름 아니다.

정치인들의 피습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자 여야가 모처럼 한목소리를 낸다. 증오정치가 정치 테러를 낳았으니 여야가 함께 반성하고 정치를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민주당은 ‘실패한 정치적 수사’를 비난하며 정쟁으로 몰고 간다. 이에 국민의힘은 ‘음모론 생산공장’이라며 민주당을 비난한다. 그러니 증오의 정치가 사라질 수 없다. 달라질 줄 모르고 다람쥐 쳇바퀴 도는 정치가 정치 테러를 유발하고 있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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