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스만은 웃음만, 정몽규는 팔짱만…국민 분통만 터진 아시안컵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2.16 13:00
  • 호수 1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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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이강인은 멱살잡이…감독의 팀 관리도 낙제점
축구협회, 임원회의서 ‘클린스만 경질’ 논의

60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 꿈을 부풀렸던 한국 축구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됐다. 우여곡절 끝에 4강까지 진출했으나, 조별예선을 포함해 경기 내용은 기대 이하 졸전의 연속이었다. 특히 요르단과의 4강전은 도저히 한국 축구의 모습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패배였다. 클린스만 감독을 경질해야 한다는 국민의 분노가 커졌고, 급기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사퇴 요구로까지 확산되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한국 축구 대표팀의 핵심인 손흥민과 이강인이 요르단과의 4강전 전날 저녁 격한 몸 싸움을 벌인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다. ⓒ연합뉴스

영국 매체 ‘더선’의 2월14일(한국시간) 보도로 확인된 한국 선수단의 내분은 국민에게 더 큰 충격과 허탈감을 안겨줬다. 이 매체는 “손흥민이 아시안컵 4강전 전날 저녁식사 자리에서 동료들과 언쟁을 벌이다가 손가락이 탈구되는 부상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요르단과의 준결승을 하루 앞둔 5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의 호텔 숙소에서 선수단이 저녁식사를 하던 중 후배 선수들인 이강인, 설영우, 정우영 등이 식사를 먼저 끝내고 휴게실에서 소란스럽게 탁구를 쳤던 게 발단이 되었다. 이에 주장 손흥민은 내일 경기를 위해 컨디션 조절 차원의 휴식을 취할 것을 요구했고, 이에 이강인이 탁구를 치는 게 무슨 문제냐고 반발하면서 몸싸움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손흥민이 이강인의 멱살을 잡았고, 이강인은 주먹을 휘두른 것으로 알려졌다. 싸움을 말리고 뿌리치고 하는 과정에서 손흥민은 손가락이 탈구되는 부상을 당했다.

한국 축구 대표팀의 핵심인 손흥민과 이강인이 요르단과의 4강전 전날 저녁 격한 몸 싸움을 벌인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다. ⓒ연합뉴스
한국 축구 대표팀의 핵심인 손흥민과 이강인이 요르단과의 4강전 전날 저녁 격한 몸 싸움을 벌인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다. ⓒ연합뉴스

클린스만, 선수단 관리와 장악력도 엉망

이강인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느낀 고참 선수들은 클린스만 감독에게 요르단과의 4강전에서 이강인을 선발 명단에서 빼줄 것을 요구했으나, 클린스만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손흥민이 4강전 패배 후 대표팀 은퇴 가능성을 시사했던 발언의 배경이 된 사건이었다. 대표팀 내 선후배 간 갈등과 불화에 대해 클린스만은 감독으로서 전혀 매니저 역할을 못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전성기에 있는 손흥민을 포함해 김민재, 황희찬, 이강인 등 한국 축구 사상 최고의 스쿼드라는 평가 속에 대회에 임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6경기를 치르는 동안 무려 10실점을 허용한 수비라인, 의도된 빌드업 없이 선수 개인 전술에 의존한 득점 등 가진 전력의 절반도 제대로 써보지 못했다. 불과 1년 전 아시안컵보다 더 높은 레벨의 대회인 월드컵에서 잘 맞물린 조직력으로 우루과이, 가나, 포르투갈과 팽팽하게 싸우며 16강에 진출한 그 팀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부임 후 1년 동안 계속 지적받은 감독 리스크가 실전에서 모두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경기 콘셉트는 우왕좌왕했고, 분석에 근거했다는 상대 맞춤 전술은 모두 오판이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국내 상주를 거부하며 K리그 관찰을 소홀히 했고, 그 결과 스스로 좁은 선수 활용을 초래했다. 1~2명의 부상자 발생만으로 커다란 위기를 맞았다. 최악은 결과에 대한 대처였다. 대표팀이 졸전을 거듭하면서 감독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센데도 그는 시종일관 당당한 모습으로 황당한 궤변을 이어갔다.

게다가 아시안컵 기간 동안, 그리고 대회 종료 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온 클린스만 감독의 미소는 분노하는 여론을 조롱하는 느낌마저 줬다. 최악의 하이라이트는 2월8일 입국장에서의 모습이었다. 인천공항에 등장한 클린스만 감독은 개선장군처럼 함박웃음을 짓고 손을 흔들며 입국했다. 이쯤 되면 영혼 없이, 시종일관 웃음으로 위기를 타개하려는 전략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입국 인터뷰에서도 “우승하지 못했으나 실패라 생각하지 않는다. 우린 계속 성장 중”이라며 세간의 혹평에 대해 반박했다. “북중미월드컵을 향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사퇴 의사도 일축했다. 한국에 머무르지 않고, 미국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형태를 바꿔야 하지 않겠냐는 지적에도 “비판은 존중하지만 내 방식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입국 인터뷰에서의 당당함은 불과 이틀 만에 증발됐다. 4강전 패배 후 “한국으로 돌아가 이번 대회를 빨리 분석하겠다”고 했던 그는 2월10일 미국으로 떠났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 대다수가 그의 출국 사실을 몰랐고, 언론의 단독 보도 후 확인을 통해 클린스만 감독이 미국으로 향했다고 인정했다. 언제 한국으로 돌아오는지, 정몽규 회장 외에는 감독의 일정을 파악하는 이가 없는 지경이다.

부임 후 1년 동안 논란과 파행을 거듭해온 클린스만은 그나마도 결과로 증명하는 데 실패했다. 그런데도 대한축구협회는 그를 통제하지 못하고 방관하는 상태다. 당연한 일이다. 통제할 책임자가 규정되지 않은 상태다. 감독 선임 과정에서도 전력강화위원회를 패싱하고 정몽규 회장이 선호하는 인물을 독단적으로 접촉해 계약했다. 독일 대표팀, 바이에른 뮌헨, 미국 대표팀, 헤르타 베를린을 거치는 동안 클린스만 감독은 지도자로서의 위상과 평가가 줄곧 하락세를 탔다. 특히 취임 73일 만에 자신의 SNS를 통해 사임을 발표하고 떠난 헤르타 베를린 시절의 모습은 축구 역사상 최악의 기행 중 하나로 꼽힌다.

2년간 백수 신분이던 클린스만 감독을 제대로 된 검증 절차 없이 과거의 명성 하나만 믿고 선임한 결과가 아시안컵 실패로 돌아온 것이다. 이제 모두의 시선은 클린스만 감독의 거취에 대한 정몽규 회장의 판단에 쏠린다. 대한축구협회는 2월13일 임원회의, 15일 전력강화위원회를 통해 클린스만 감독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진행했다. 그러나 결국 키는 정몽규 회장에 달려있다. 그가 독단적으로 선임한 만큼 클린스만 감독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도 정몽규 회장의 역할이다.

ⓒ연합뉴스

협회 시스템과 프로세스 무시한 회장 책임론 비등

이에 대해 정몽규 회장은 아시안컵 탈락 후 열흘 가까이 침묵으로 일관 중이다. 임원회의에도 불참했고, 귀국 후 어떤 입장 표명도 하지 않고 있다. 신중한 고민으로 볼 수 있지만, 실상은 클린스만 감독 개인에게만 60억원 넘게 지급해야 하는 위약금 등 현실적 문제를 헤쳐나갈 방법을 못 찾은 모습이다. 부회장, 본부장이 머리를 맞댄 임원회의에서 이미 경질론으로 기운 의견을 전달했지만 “명분이 부족하지 않냐”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의 결자해지가 절실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철저한 자기반성이다. 회장 스스로 잘 돌아가던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무시하고 진행한 감독 선임이 얼마나 큰 재앙을 낳았는지를 인정해야 한다. 그 시스템과 프로세스가 결국 리스크를 줄여주고, 정 회장 재임기간 동안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었는데 정작 자신이 그걸 걷어찬 셈이다. 급기야 “회장 사퇴하라”는 구호까지 등장한 이유다.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 여부를 떠나 정 회장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황금세대를 내세우고도 한국 축구의 숙원을 달성하지 못한 것은 선수들의 역량 문제가 아닌 감독의 무능, 그리고 그런 감독을 선임한 대한축구협회와 정몽규 회장의 판단 착오가 진짜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동반되지 않으면 한국 축구는 다가오는 북중미월드컵 예선과 본선에서도 영광과 환희가 아닌 좌절과 실망을 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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