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재도에선 나홀로 의료인…“병원 가려면 배타고 3시간”
  • 정윤경 기자 (jungiza@sisajournal.com)
  • 승인 2024.02.22 06: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의료인 1명이 70명 주민 책임져…“24시간 대기”
만재도에서 목포까지 배 타고 왕복 6시간…“결항도 부지기수”
만재도보건진료소에서 도민들이 물리치료를 받는 모습(위쪽)과 진료 전 대기하는 모습(아래쪽) ⓒ독자 제공
만재도보건진료소에서 도민들이 물리치료를 받는 모습(위쪽)과 진료 전 대기하는 모습(아래쪽) ⓒ독자 제공

대한민국에서 뱃길로 가장 먼 섬으로 알려진 ‘만재도’에는 딱 한 명의 의료인이 있다. 그는 환자를 진료하는 것부터 의료 처치 행위, 약 제조까지 혼자서 의사·간호사·약사 역할을 도맡는다. 이뿐만 아니다. 기록물 관리, 회계, 심지어 마을 주민을 위한 찜질방 운영까지 책임진다.

그 주인공은 70명의 만재도민 건강을 책임지는 김지혜 만재도보건진료소 소장(37)이다. 김 소장은 간호사 면허를 취득한 보건진료직 공무원이다. 간호사인 그가 단독으로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의료취약지역에서 간호사 등도 경미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한 ‘농어촌 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에 따라서다. 의사 수가 부족한 농어촌 지역에서 주민들이 최소한의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한 법이다.

만재도의 유일한 의료인 김지혜 만재도보건진료소 소장(37)의 모습 ⓒ김 소장 제공
만재도의 유일한 의료인 김지혜 만재도보건진료소 소장 ⓒ김 소장 제공

목포-만재도 배편 하루 한 번…“퇴근·주말도 반납”

김 소장이 근무하는 만재도보건진료소는 전남 신안군 흑산면 만재도리에 있다. tvN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어촌편》 촬영지로 잘 알려진 만재도에는 2월20일 기준 70명(남 38명·여 32명)의 주민이 있다.

도민들이 병원에 가려면 목포까지 배를 타고 나가야 한다. 만재도와 목포를 잇는 배편은 하루에 딱 한 번뿐이다. 그마저도 풍랑주의보로 인해 배가 뜨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출항 여부는 당일 여객터미널에 전화를 해봐야 알 수 있다. 직접 여객터미널에 문의해 보니 이번 주 내내 목포로 출항하는 배편은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운 좋게 배가 떴다고 해도 목포까지 가려면 왕복 6시간 동안 배를 타야 한다.

전남 신안군에 있는 만재도보건진료소 위치 ⓒ네이버 지도 캡쳐
전남 신안군에 있는 만재도보건진료소 위치 ⓒ네이버 지도 캡쳐

그러다 보니 만재도민은 하나뿐인 의료기관인 보건진료소를 의지할 수밖에 없다. 도민들의 사정을 잘 아는 김 소장도 쉽사리 자리를 비우지 못한다. 그는 “목포에 나갔다가 배편이 끊겨서 돌아오지 못할까 봐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본가(목포)에 다녀온다”면서 “언제라도 도민들이 진료소에 전화하면 내 휴대전화로 연결될 수 있게끔 해놓았다”고 말했다.

진료소 운영시간은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다. 하지만 김 소장의 일과를 보면 24시간 내내 진료를 볼 준비를 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새벽 2~3시쯤 갑작스럽게 알러지가 났거나 큰 화상을 입은 환자들에게 전화가 온다”며 “위급한 경우 119나 해양 경찰에 연락해 헬기를 띄워 이송이 가능한지 문의하기도 한다”고 회상했다. 그는 잘 때도 머리맡에 휴대전화를 두고 무음모드를 끄고 잔다고 했다. 만재도 내 유일한 의료인인 그의 막중한 책임감에서 비롯된 습관이다.

만재도민 대부분은 멸치·전복·장어 등 각종 수산물을 취급하는 어업 종사자다. 주로 낚시바늘 등에 손을 다쳐 온 외상 환자들이 많다. 고된 어업에 지친 도민들이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기도 한다. 진료소에서는 치료를 받는 것뿐만이 아니라 찜질방, 안마의자 등도 이용할 수 있다. 도민들의 복지를 위해 지자체에서 구비한 것이다.

보건진료소는 대개 1인 근무체제인 데다 업무량도 많아 의료인이 기피하는 곳이기도 하다. 김 소장도 1년 전 이곳에 발령받았을 때 “일상생활이 없겠구나”라고 낙담했다고 한다.

김 소장은 보건진료소가 1인 체제에서 벗어나 2인 교대 체제로 운영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료인이 정해진 시간에만 진료를 볼 수 있도록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의미다. 김 소장은 “사실상 퇴근과 주말이 없다 보니 가정에 소홀해지기 마련”이라며 “다음 달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결혼 준비를 남편이 전적으로 맡고 있다”고 멋쩍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도민들의 건강을 지킨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만재도보건진료소 전경 ⓒ독자 제공
만재도보건진료소 전경 ⓒ독자 제공

 

관련기사
동료 조직원 토막살해 후 ‘간 꺼내 먹은’ 폭력조직 영웅파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단독]‘용산 출신’ 김오진 국민의힘 예비후보, 장남 병역기피 의혹 [르포]“해 지면 이북”…'소멸 위기 0순위' 곡성군에서의 7일 ‘성범죄 전력’ 30대 교회 부목사, 버스서 또 女 추행해 ‘징역 1년’ ‘위약금 70억?’ 커지는 ’클린스만 책임론’에 코너 몰린 정몽규 의붓딸 2090번 성폭행하고 음란물 만든 계부…친모 극단 선택 소화제 달고 산다면?…소화불량 잡는 건강차 3 ‘한 지붕 두 가족’…민주당, ‘문명대전’ 전운 고조 ‘변기보다 박테리아 많다?’…주말 청소에서 빼놓으면 안되는 물건 3 ‘과일은 살 안쪄’…의외로 다이어트 방해하는 식품 3가지 ‘법학박사’ 서울대병원 선배의 조언 “처분 강력할 것…돌아오라” 이재명에 쫓겨나는 친문 세력, 루비콘강 건너나 [단독]인구 소멸 전국지도...100년 안 사라지는 마을 수 123곳 [단독] 롯데家 장남 신동주 “사면초가 한국 롯데,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야” 차체 ‘휘청’…도로 위 불청객 ‘포트홀’ 보상받으려면? 안성 스타필드서 번지점프 60대女 사망…고리 풀린 채 추락 6500만분의 1 확률로 태어난 다섯쌍둥이의 ‘기적’…육아는 ‘현실’ 7살 제자까지…호주서 한인 일가족 잔혹 살해한 태권도 사범 힘들게 운동해도 그대로인 체중…의외의 원인 3가지 가족·친구가 우울증이라면?…절대 해선 안될 말 3가지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