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에 쫓겨나는 친문 세력, 루비콘강 건너나
  • 박나영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4.02.23 14: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부겸·정세균 전 총리 이어 문재인 전 대통령 입장 표명할지 관심
‘정권 심판론’만 믿다 공천 내분…‘총선 필패’의 길 걷는다는 지적도

“총선 목적이 사당화인가”(윤영찬), “이 정도면 공천파동”(송갑석), “치욕스러운 정치보복”(박영순).

점입가경이다. 공천을 둘러싼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더불어민주당은 총선을 불과 6주 앞두고 최악의 분열 위기를 맞고 있다. 안에서는 평가 ‘하위 20%’를 통보받은 비명(非이재명)계 의원들이 집단행동에 나설 조짐을 보이고, 밖에서는 민주당 출신 전직 국무총리와 국회의장들이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공천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선거를 돕지 않겠다는 ‘조건부 지원’ 압박에 나섰다. 당이 두 동강 날 위기에 처하면서 총선 패배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국회의원 163석을 실은 거대한 배가 침몰할 듯 출렁이는 상황임에도 이재명 지도부는 태연히 제 길을 걷는 형국이다. 더 늦기 전에 방향키를 돌려세울 수 있을까. 골든타임을 넘겨버리는 건 아닐까.  

ⓒ 시사저널 박은숙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 시사저널 박은숙

‘818호 밀실 회의’와 현역 제외 여론조사 논란

‘151석’.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제시한 이번 총선의 목표 의석이다. 약 3주 전 이 수치가 제시될 때만 해도 당내 일각에서 ‘최대 180석’이란 자신감 넘치는 낙관론이 나돌 정도로 장밋빛 전망이 우세했다. ‘최대치 151석’을 목표로 삼은 배경엔 정권 심판론에 기대고 있는 당내 낙관주의를 각성시키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그러나 불과 2~3주 사이에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2월13~15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정당별 총선 지지 의향에 국민의힘 42%, 민주당 36%로 격차가 6%포인트로 벌어졌다. 1월 4주 차만 하더라도 국민의힘 39%, 민주당 40%로 여전히 민주당이 앞서는 분위기였으나 반전이 일어났다. 더 놀라운 건 ‘지지할 의향이 없다’는 응답이 1월 4주 차엔 국민의힘 55%, 민주당 52%였는데, 2주 만에 국민의힘 50%, 민주당 54%로 뒤바뀐 것이다. 

민주당 공천 갈등이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면서부터 지지율이 고꾸라지는 모양새다. 민주당은 지금 ①‘밀실’ 공천 논란 ②비명계 학살 ③‘이재명 사당화’ 반발로 인한 거대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정치는 ‘팩트’의 게임이 아니라 ‘인식’의 게임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다수의 중진 의원이 차례로 험지 출마를 선언하고, 대통령실 인사들이 경선에 나서는 동안 민주당에선 ‘818호 밀실 회의’와 ‘현역을 제외한 여론조사 논란’이 불거지며 국민에게 민주당 공천이 ‘불투명하고 불공정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는 셈이다. 

이 대표와 친명(親이재명)계 지도부가 이 대표의 의원회관 사무실 818호실에 모여 지역구별 공천 관련 현안 및 현역 컷오프(공천 배제)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스템 공천을 무력화하고 있다’는 반발이 거세다. 최근 민주당 의원 163명이 참여하고 있는 텔레그램 대화방에는 이 대표의 2선 퇴진을 요구하는 항의글이 잇따르고 있다. 이수진 의원(동작을)은 2월20일 “4년간 나 의원(나경원 전 의원)과 험지에서 싸웠더니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며 등에 칼을 꽂고 있느냐”며 “당 대표님과 안규백 (전략공천관리) 위원장님은 공천에 능력도 신뢰도 없으니 2선으로 물러나 달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현역을 제외한 지역 여론조사 또한 비명계를 솎아내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 최근 홍영표·송갑석·설훈·이인영 의원 등 대표적인 비명계 의원의 지역을 중심으로 현역 의원의 이름이 빠진 후보 적합도 조사가 여러 차례 진행됐다. “여론조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등을 공개해 달라”는 의원들의 요구가 빗발쳤고 이수진(동작을)·이인영·권인숙 의원 등 자신의 이름이 빠진 여론조사가 돌았던 지역의 의원들도 공개적으로 지도부에 책임을 물었다. 당 차원의 여론조사가 아니라고 부인하던 지도부는 곧 ‘파악해 보겠다’고 말을 바꿨다.

책임론이 거세지자 2월21일 경선을 관리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인 정필모 의원이 급작스럽게 중앙당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건강상 이유’라고 했지만 여론조사 논란에 따른 결단이 아니겠냐는 추측이 나온다. 또 ‘현역 배제’ 여론조사를 수행한 리서치디앤에이라는 업체가 이재명 성남시장 시절(2013년) ‘성남시 시민만족도 조사’ 용역을 수행한 업체라는 게 밝혀지면서 이 대표의 비선인 경기도팀이 움직인다는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홍영표 민주당 의원이 2월21일 국회에서 열리는 의원총회에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홍영표 민주당 의원이 2월21일 국회에서 열리는 의원총회에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기는 선거’ 분위기 때 다른 계파 쳐내는 폐습 반복

선거 여론조사 절차와 방식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당 관계자는 “정당 전략국이 개입되지 않고는 안심번호 비공표 조사 자체를 할 수 없고 설문조사에 들어가는 그 많은 비용을 개인이 감당할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선거를 앞두고 후보 경쟁력 조사를 할 때 공관위에서 전략공천 지역과 경선 후보 발표를 하고 나서 설문조사를 돌리는 게 원칙인데 앞뒤 순서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기는 선거’가 예정돼 있을 때 다른 계파를 쳐내려는 폐단이 민주당에 남아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민주당 내 사정을 잘 아는 전직 국회의원 A씨는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민주당에 운동권 성향이 강해졌는데, 운동권이 가진 최대의 단점이 비밀주의, 패거리 정치다. 2012년 이명박 정권 때도 민주당 지지율이 높게 나오니 누굴 내세워도 이길 것이라고 보고 자기 계파에 유리한 공천을 한다는 의혹이 일었다”고 주장했다. 당시에도 후보 경쟁력을 묻는 설문조사를 돌리면서 명단에 기존 현역을 제외하고 자기 계파를 넣었는데, 이때 문항에서 경쟁력 2, 3등은 제외하고 4, 5등과 경쟁시켜 격차를 벌리는 방식으로 진행했었다는 주장이다. 현재도 의정활동에 적극적인 것으로 평가돼온 비명계 일부 의원이 줄줄이 탈락 위기에 놓이고 그 자리에 친명계 인사들이 공천 대상으로 거론되는 것이 의심스럽다는 지적이다.  

‘하위 20%’ 성적표를 받아든 31명 중 상당수가 그간 이 대표에게 반기를 들어온 비명계라고 알려지면서 이들의 집단행동 가능성도 관측된다. 박용진·전해철·윤영찬·박영순·설훈·송갑석 등 비명계 의원들이 친문계 좌장 격인 홍영표 의원 사무실을 찾아 비공개 회동을 갖고 향후 계획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스로 하위 10% 통보를 받았다고 밝힌 박용진 의원은 “민주당에 남아 경선을 치르겠다”며 “민주당을 다시 복원하겠다는 정풍 운동의 각오로 오늘의 이 과하지욕(跨下之辱·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치욕)을 견디겠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을 지낸 윤영찬 의원도 ‘하위 10%’ 평가를 받았다고 공개하며 “친문계 의원들이 거의 대부분 하위 20% 이내에 다 포함됐다는 것은 공천 과정이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2월21일 의원총회에서도 대거 발언권을 얻어 당 지도부를 맹비난했다. 

시스템 공천이 당내 비판 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찍어내기’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당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가 진행한 의원 평가는 의정활동 380점, 당 기여활동 250점, 공약 이행 100점, 지역활동 270점 등 총 1000점 만점이다. 각 영역은 다시 세부 배점으로 쪼개지는데 숫자로 매길 수 있는 ‘정량 평가’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의정활동 부문에선 대표발의 법안 수와 상임위원회 출석률 등을 평가해 점수로 환산하는 형식이다. 하위 20% 통보를 받은 비명계 의원들은 정량평가 외에 선출직공직자평가위가 판단하는 주관적인 ‘정성평가’에서 인위적 개입과 ‘찍어내기’가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2월21일 의원총회에서 오영환 의원은 “하위 20% 평가를 받은 한두 명의 원망이 나오는 건 당연하지만, 이들이 누가 봐도 현 지도부에 대립각을 세운 분들이잖나”라며 “객관적이고 합리적 기준이 적용됐다고 생각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임혁백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장이 1월31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4·10 총선 후보 공천을 위한 면접에 앞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임혁백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장이 1월31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4·10 총선 후보 공천을 위한 면접에 앞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낙관론 빠진 계파공천 끝에 패배한 2012년 악몽 떠올라

MB(이명박) 심판론에 기댄 채 ‘이길 선거’로 예상하고 계파 공천에만 열을 올리다가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에 과반 의석을 내줬던 2012년 총선 참패의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는 위기론도 터져 나온다. 2011년 10월 재보선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크게 이기면서 민주당이 승리에 도취됐던 당시와 현재 상황이 꼭 닮았다. 지난해 10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하자, 승리의 독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내부 곳곳에서 나온 바 있다. 현재도 여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긴 하지만 그 여론이 민주당 지지로 이어지지 않는 가운데 공천 잡음으로 분당설까지 나도는 상황이다. 

김부겸·정세균 전 국무총리 등 당 원로들까지 공개 반발하면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입장을 낼지 관심이 쏠린다. 김·정 전 총리는 임채정·김원기 전 국회의장과 논의 후 2월21일 공동 입장문을 내고 ‘이 대표가 나서 상황을 바로잡으라’고 촉구했다. 두 전직 총리는 “시스템 공천, 민주적 원칙과 객관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며 “당 지도부가 초심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총선 승리를 위해 작은 이익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탈당해 제3지대 신당을 창당한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는 2월22일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자멸하고 있다”며 공천 잡음의 원인이 ‘이재명 대표의 사욕’이라고 비판했다. 이 공동대표는 이어 “똑똑한 사람들은 선거에 못 나오고, 방탄 잘하게 생긴 사람들만 선거에 나올 것”이라며 ‘민주당 자멸, 국민의힘 압승’을 전망하기도 했다. 또 이 공동대표는 공천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있는 민주당 내 비명계 의원들을 향해 “저희 새로운미래에 합류하는 것이 방법일 수 있다”면서 합류 가능성을 시사한 의원도 이미 있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