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마주 앉은 또 다른 인간을 보다
  • 심정택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2.25 13:00
  • 호수 1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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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눈의 자화상》으로 유명한 서용선 작가
서울 인사동에서 3월17일까지 《나를 그리다》 전시회 개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부상당한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1899~1961)는 대표작 《무기여 잘 있거라》(1929)에서 주인공 프레드릭 헨리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생각하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다. 나는 먹도록 만들어졌다. 그렇고 말고! 먹고, 마시고, 캐더린과 자는 것이다.’

그림과 함께 먹고, 마시고, 뒹굴도록 만들어져 있는 서용선 작가(73)는 험한 산 능선을 타고 올라 자기만의 ‘감각적인 제국’을 완성했다. 그는 깨달음을 얻은 붓다의 제자 아라한(阿羅漢)을 새기는 조각가이기도 하다. 불교 조각은 전형과 양식의 예술이다. 서용선은 망치와 끌, 대패 등을 들고 장작을 패듯이 윤곽만 다듬어낸 무위의 불상들을 드러내기도 했다.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페르소나(persona)가 깃들어 있다고 알려진다. 붓다 목조각은 서용선의 페르소나와 불심 깊었던 어머니가 같이 새겨져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서용선 작가 ⓒ 시사저널 임준선

자화상, 인간을 이해하는 방법

육신의 환경과 경험을 바꾸고 영혼을 진동케 하는 여행은 인간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움직이는 인간(Homo Motus)’ 서용선은 왜 결국은 미동조차 않는 거울 너머 또 다른 인간, 즉 자기의 모상과 마주 앉을 수밖에 없었을까. 그의 ‘자화상’ 시리즈는 이 의문에서부터 출발해야만 한다.

2월14일, 서울 인사동의 갤러리 토포하우스에서 마주 앉은 서용선 작가는 뉴욕 작업을 마치고 막 귀국했으나 얼굴은 맑아 보였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수년째 걸렀던 뉴욕의 지하철 풍경을 지지난 겨울부터 재개했다. 두 달 반의 일정으로 작업실을 브루클린, 맨해튼 북부 할렘가 등으로 옮겨 다녀야만 했다고 한다. 한 도시에 대한 관찰은 그 도시를 배경으로 삶을 이어가는 인간을 이미지로 드러내는 데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인간에 대한 관심은 전시 《거리의 사람들》(1995)로 첫 매듭을 지은 후 확장돼 왔다. 사회와 관계 지으면서 도시 속 인물과 역사와 신화, 자화상, 풍경 등으로 나타났다. 작가는 사회 현상, 집단(심리), 인간의 보편적 욕망인 권력 등으로 관심을 확충해 왔다.

서용선은 1975년 늦은 나이에 대학 합격통지서를 받은 직후, 서울 정릉의 지인 작업실에서 첫 자화상을 그렸다. 대학에 입학하고서도 ‘화가가 아니면 끝이다’는 절박함의 시작이었다. 서용선은 《빨간 눈의 자화상》 등 자신의 작품에서 붉은색이 주조(主調)가 된 이유를 말한다. “첫째는 관객을 자극할 목적, 둘째는 1970년대 이후 앵포르멜 회화(단색화)가 색을 배제한 데 대한 거부감, 셋째는 색을 이데올로기의 무기로 삼는 독재 체제에 대한 반감이다.”

인물화에서 이 붉은색이 더욱 도드라진다. 이번 전시 《나를 그리다》에서 배경과 대상 모두 붉은색인 대형 작품들이 나왔다. 녹색의 자화상 또한 유난히 눈에 띄었다. 작가는 주조색을 벗어나고 싶었고, 조형적 의미를 더하기 위해 녹색을 썼다고 한다. 성기고, 두텁고, 툭툭 던진 듯한 붓터치와 라인은 색 면의 칠보다 색을 더 강하게 드러낸다. 그의 청록(푸른)색은 왠지 시를 부른다.

그는 1995년 두 달간의 미국 버몬트주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부터 자화상을 그렸다. 해외 체류 경험이 없던 작가는 다른 작가들과 의사소통도 쉽지 않아 자기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게 됐다. 자신의 형상을 보지 못하고 내면만 들여다보니 형언하기 힘든 외로움을 느꼈다. 거울을 구해 놓고 재료에 대한 제한이 덜한 드로잉 위주로 작업했다. 자화상은 거울을 매개로 전면만 보고 그릴 수밖에 없다. 의외로 원하는 구도를 잡아내기 힘들었다.

어느 날 불현듯 멋있게 그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인간을 깊이 이해하는 방법으로 그린 그림에 치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이렇게 물었다. “인물을 성기게 그린다. 그 성긴 여백으로 인물과 시대, 환경 등이 보인다. 인물을 둘러싼 관계 설정 때문인가?”

서용선 작가의 《자화상》 ⓒ 토포하우스 제공·Suh Yongsun Archive 제공
서용선 작가의 《자화상》 ⓒ 왼쪽부터 토포하우스·Suh Yongsun Archive·토포하우스 제공

독재 체제에 대한 반감에 붉은색 선호

그의 답은 이랬다. “공간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진행형이다. 연속해서 변한다. 사람 역시 고정되고 정지되는 일이 없다. 상황과 사람과의 관계를 파악하는 게 어렵다. 사람에 배경을 투영시켜야 관계 속에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이 취하는 자세는 내 경험이 들어간다. 인물화에서 완결은 의미가 없다. 표현을 덜 하더라도 그게 더 본질에 가깝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하다보면, 인간 행위에 대해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를 구분 짓지 못할 때가 있다. 예술은 이런 세계와 같이 간다.”

서용선은 한국전쟁 기간에 태어나 무의식의 유아 시절을 보냈다. 유초년기 또는 10대에 전쟁을 온몸으로 경험한 1940년대생과 달리 젊은 시절을 지배한 이데올로기의 경직성에서 벗어나 있다. 그의 정신세계는 삶의 관념과 인간에 대한 애증의 골짜기를 뛰어 건너고 있다. 서용선이 그리는 것은 진실하고 제한된 소재, 단순하고 고전적이며, 결국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끝나는 인간과 마주 앉은 또 다른 인간이다. 서용선의 자화상 전시 《나를 그리다》는 서울 인사동 갤러리 토포하우스에서 3월17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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