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손가락 걸고 엄지 꾹…열도에 부는 ‘횹사마’ 열풍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2.24 15:00
  • 호수 1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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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TBS 드라마 《아이 러브 유(Eye Love You)》, 한국 주인공 채종협, 일본 여심 녹이며 인기몰이

“이 엄지손가락을 검지로 끌어당기는 것이 상대의 몸을 끌어당겨 껴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본 TBS에서 방영되는 드라마 《아이 러브 유(Eye Love You)》 3회에 한국인 유학생 윤태오(채종협)가 회사 대표 모토미야 유리(니카이도 후미)와 밸런타인데이 데이트 약속을 하며 새끼손가락을 거는 장면이 나오자 일본 시청자들은 폭발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일본인들에게는 낯선 윤태오의 새끼손가락 걸고, 도장 찍고, 복사하는 장면이 너무 설레었다는 것이다. 넷플릭스에서도 방영되고 있는 이 드라마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일본 여성들의 설레는 댓글이 담긴 게시물을 여럿 발견할 수 있다.

ⓒ TBS 제공
ⓒ TBS 제공

무엇이 일본 여심을 사로잡았을까 

5.5% 시청률로 시작한 이 드라마는 6%대에 진입해 안정궤도에 올랐고, 일본 넷플릭스 주간 순위 1위에도 올랐다. 드라마에 대한 관심은 주인공을 맡은 채종협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졌다. 그의 개인 SNS 계정은 단기간에 200만 팔로어를 넘어섰다. 일본 매거진 GOETHE는 이 현상에 대해 이렇게 논평했다. “‘횹사마(ヒョプ様)’라는 별명까지 붙으며 ‘욘사마’가 아닌 ‘횹사마’ 붐을 예감케 한다.”

일본 드라마에 한국 배우가 출연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2010년에 후지TV에서 방영됐던 《솔직하지 못해서》에 김재중이 출연한 바 있다. 최근에는 심은경이 TV아사히 《7인의 비서》(2020)에 이어 NHK 《군청영역》(2021)에 출연했다. 하지만 이번 채종협의 《아이 러브 유》 출연이 특별한 건 일본 지상파 프라임타임에 주연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스토브리그》로 주목받은 후 최근작 《무인도의 디바》로 확실한 눈도장을 찍은 배우지만, 이제 본격적인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시기에 곧바로 일본에서 이런 반응을 얻고 있다는 건 확실히 색다른 행보가 아닐 수 없다. 과거 욘사마 시절과는 확연히 달라진 현 글로벌 콘텐츠 소비환경을 절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흥미로운 건 채종협이 일본 여심을 사로잡은 요인이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매력 덕분이라는 점이다. 《아이 러브 유》는 한국인 유학생 윤태오와 초콜릿 회사 대표인 일본인 유리 사이에 벌어지는 멜로를 그리고 있는데, 그 과정을 보면 앞서 언급한 새끼손가락 걸고 도장 찍고 복사를 하는 약속의 방식처럼, 한국 문화와 일본 문화의 차이가 호기심과 설렘으로 이어지는 독특함이 담겨있다. 예를 들면 술자리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자고 윤태오가 제안한다. 그것이 한국에서는 호감의 표시라는 걸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유리가 그 설렘에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장면 같은 것이다.

언어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아이 러브 유》는 사고로 아버지가 의식은 있지만 전신 마비 상태로 누워있게 되고, 유리가 상대방의 눈을 바라봄으로써 그 마음의 소리를 읽게 된다는 판타지 설정이 들어있다. 그것이 한국인이기 때문에 윤태오에게는 유일하게 통하지 않는다. 일본말을 구사하지만 속마음은 한국말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리는 상대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사업에는 도움이 됐지만 연애에는 오히려 독이 됐던 경험을 갖고 있었는데, 이처럼 언어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소통의 어려움은 오히려 이 작품에서는 상대에 대한 신비감(?)을 갖게 하는 요인이 된다. 또 윤태오는 유리에게 유리로 된 수달 펜던트를 선물하면서 그녀의 이름이 한국어로는 ‘유리’라고 설명해 준다. 이처럼 언어의 차이는 소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호기심과 설렘을 유발하는 동력이 된다고 이 드라마는 보여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문화적 차이가 가진 매력을 담은 건, 윤태오라는 일본 남자와는 너무나 다른 한국 남자에 대한 판타지를 다른 기질로 캐릭터화한 부분이다. 윤태오는 한국 드라마가 종종 그리곤 하는 다소 이상화된 연하남 캐릭터다. 멍뭉미가 넘치고, 늘 밝으며, 좋아하는 마음을 스스럼없이 꺼내놓고 표현한다. 일본에는 없는 이런 남성 캐릭터에 대한 판타지는 최근 넷플릭스에 소개됐던 일본 연애 리얼리티인 《K-드라마 같은 사랑을 하고 싶어》에도 등장한 바 있다. 일본 여성 배우들과 한국 남성 배우들이 서로 만나 키스신을 찍으면 진짜 사랑에 빠질 것인가를 두고 전개되는 리얼리티쇼다. 윤태오라는 캐릭터는 이러한 일본 여성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드라마 속에는 한국 멜로드라마의 클리셰들, 이를테면 갑자기 넘어지는 여성을 남성이 붙잡아 껴안는 장면 같은 것들이 등장하는데, 윤태오 역할의 채종협은 다소 오글거릴 수 있는 이런 장면들조차 꼭꼭 씹어 소화해 내는 밝은 에너지의 연기를 보여준다.

문화적 차이가 매력이 될 수 있다는 건 

결국 《아이 러브 유》가 하려는 이야기는 유리가 가진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능력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진심 어린 소통에 대한 것이다. 속내를 좀체 꺼내놓지 않는 일본인들을 이해한다면 《아이 러브 유》가 던지는 이 질문은 그래서 의외의 무게감 또한 갖고 있다. 그건 남녀 간 소통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 간 소통의 문제이기도 하고, 나아가 한국과 일본 같은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이들이 어떻게 소통해 나갈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것이 무엇이든 속으로 쌓아두지 말고 꺼내놓고 이야기하자는 것. 거기서부터 사랑이든, 이해든, 공감이든 가능할 테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아이 러브 유》는 일본 TBS에서 본방으로 방영될 때는 윤태오가 속으로 하는 한국말에 대한 자막이 붙지 않는다고 한다. 유리가 느끼는 모호함을 시청자들도 똑같이 느끼게 하려는 장치다. 물론 넷플릭스 같은 OTT나 재방송, 스트리밍에는 자막이 붙지만, 사실 우리가 간단한 일본어를 여러 콘텐츠를 접하며 알고 있듯이, 일본인 중에도 한국 드라마를 접하며 ‘좋아요’ ‘귀엽다’ ‘예쁘다’ 같은 윤태오가 속으로 하는 한국말들을 아는 이가 적지 않다. OTT로 전 세계가 동시간대에 콘텐츠를 소비하는 글로벌 시대에 콘텐츠가 갖는 힘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아이 러브 유》는 그래서 달라진 콘텐츠 환경 속에서 글로벌 협업의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문화적 차이가 오히려 하나의 매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걸 이 드라마는 실제 불고 있는 채종협 열풍을 통해서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한국과 일본은 그간의 아픈 과거사 때문에 ‘가깝고도 먼 나라’로 불린다. 물론 그 과거사에 대한 인정과 사과 같은 외교적 사안들은 별개로 계속 이어져야 하겠지만, 동시에 양국 간 문화적 교류가 글로벌 협업의 차원에서 더더욱 넓어지기를 바란다. 물론 일본만이 아닌 전 세계 어느 나라와도 이제는 글로벌 협업이 하나의 대안이 되는 시대로 접어들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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