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 마약투약’ 익명 제보한 친딸…가족들 지키려 실명 밝혀
  • 박선우 디지털팀 기자 (psw92@sisajournal.com)
  • 승인 2024.03.2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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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 재판부, 딸 진술 신빙성 인정해 친부 마약 투약 등 혐의 ‘가중 처벌’
“친부 가정폭력으로부터 가족 지키고자 경찰에 제보”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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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던 40대 남성이 2심서 형량이 가중됐다. 해당 남성의 마약 투약 의혹을 제보했던 딸이 부친의 가정폭력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고자 자신의 실명을 밝힌데 따른 결과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제주지방법원 제1형사부(오창훈 부장판사)는 최근 40대 남성 A씨의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횡령, 특수폭행 등 혐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원심 선고형량인 징역 1년6개월보다 가중된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의 이번 판결엔 A씨의 딸 B씨의 증언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B씨는 초등학생이던 약 10년전부터 친부 A씨의 마약 투약 정황을 인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A씨가 마약을 투약했을 때 보이는 특이 증상들까지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B씨는 2021년 10월24일 제주도 모 장례식장에서 A씨의 이상행동을 보고 마약 투약을 직감, 같은 해 11월22일 경찰에 A씨를 신고했다. 당시 A씨는 계절에 맞지 않는 반바지를 입고 말이 어눌해지는 등 이상행동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제보자 B씨의 신원이었다. B씨는 경찰 제보 당시 다른 사람의 이름을 댔는데, A씨의 1심 재판 과정에서도 B씨의 신원이 ‘제보자’로만 밝혀져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되지 않은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제보자의 추측성 진술만으론 (A씨의 마약투약) 범행의 일시, 장소 등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마약 혐의를 무죄로 보고 이외 혐의만 유죄로 판결해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딸 B씨는 용기를 냈다. 자신의 실명을 밝히고 2심 재판 증인으로 출석해 부친 A씨의 마약 투약 혐의에 대해 진술한 것이다. 법정에 선 B씨는 자신을 포함한 가족들이 평소 A씨에게 심각한 가정폭력을 당해 왔다면서 “더 이상 고통받으며 살고 싶지 않아 경찰에 (A씨의 마약투약 사실을) 알렸다”고 진술했다.

2심 재판부도 딸 B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A씨)을 제보한 사람은 다름 아닌 피고인의 딸 B씨”라면서 “B씨는 수사기관에서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조사받은 후 이 법정에서 비로소 증인으로 출석해 실명을 밝혔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B씨의 진술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지어낼 수 없을 정도로 매우 구체적”이라면서 “B씨는 피고인과 재산 분쟁 등 이해관계가 전혀 없고, 단지 피고인으로부터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제보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B씨의 진술과 피고인의 모발 감정 결과 및 휴대전화 기지국 위치 등과 결합해 보면 (마약투약 관련) 공소사실에 대한 명확한 증거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원심을 깨고 A씨에게 징역 2년6개월의 가중 처벌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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