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쓸데없는 게 ‘김민재 걱정’?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30 13:00
  • 호수 179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경기 연속 주전 제외, 흔들리는 팀내 입지로 낯선 ‘벤치 신세’
인터밀란·맨유 등 다른 빅클럽들의 관심 받아

프로 커리어를 시작한 이래 김민재는 탄탄대로를 달리며 승승장구했다. 연세대 중퇴 후 반년 동안 실업리그 소속 경주한수원에서 뛴 후 2017년 K리그1 전북 현대로 스카우트돼 곧바로 주전 자리를 꿰찼다. 그 당시에도 전북은 국가대표급 선수가 즐비한 절대 1강이었음에도 최강희 감독은 김민재의 엄청난 잠재력을 인정했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유럽에서도 유명해진 ‘몬스터’다. 2년 동안 K리그 무대를 평정한 후 중국 슈퍼리그 베이징 궈안으로 이적해서도 차원이 다른 퍼포먼스를 펼쳤다.

‘황사머니’의 유혹으로 중국으로 건너왔던 세계적인 공격수들을 압도하는 김민재의 수비는 자연스럽게 유럽의 주목을 받았다. 2021년 8월 튀르키예의 명가 페네르바체로 이적하며 유럽 무대로 넘어갔다. 김민재가 넘어야 할 허들은 한층 높아졌지만 이번에도 가뿐히 뛰어넘었다. 튀르키예 쉬페르리가를 정복했고 1년 만에 이탈리아 세리에A 나폴리의 러브콜을 받았다. 유럽 진출 1년 만에 빅리그로 향한 김민재는 수비의 본고장 이탈리아에서도 최고 수비수에 등극한다.

ⓒDPA 연합
바이에른 뮌헨의 김민재 ⓒDPA 연합

새로 영입한 다이어의 예상치 못한 활약에 벤치 려

세리에A 최우수 수비수 상까지 차지한 김민재는 다시 1년 만에 600억원이라는 아시아 선수 역대 최고 이적료를 기록하며 유럽 최고의 클럽 중 하나인 독일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다. 뮌헨에서도 1라운드부터 선발 출전하며 수월하게 주전이 됐다. 상반기에 김민재는 휴식 없이 15경기 연속 풀타임 출전을 했다. 독일 매체들조차 혹사를 언급하며 휴식을 줘야 한다고 할 정도였지만 그만큼 김민재의 팀내 위상은 절대적이었다.

제동이 걸리지 않을 것 같던 김민재의 질주는 거짓말처럼 3월 들어 멈춰섰다. 갑자기 벤치에 앉는 경우가 많아졌다. A매치 휴식기 전에 뮌헨에서 치른 3경기 중 2경기는 벤치만 달궜고, 1경기는 교체 출전해 15분만 소화했다. 부상을 제외하고 김민재가 경기 출전에 애를 먹는 것은 프로 커리어 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단단했던 입지를 흔든 첫 번째 요인은 아시안컵이었다. 한 달 넘는 긴 시간 동안 대표팀에 차출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가뜩이나 센터백 자원이 부족하던 뮌헨은 겨울 이적시장에서 다급히 에릭 다이어를 영입했다. 다이어는 손흥민, 해리 케인과 함께 토트넘에서 뛰며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를 오가던 멀티 플레이어다. 하지만 잦은 실수와 소극적인 경합 등으로 기복 심한 모습을 보이며 토트넘에서는 전력 외로 분류된 선수다.

뮌헨은 이적 자금이 부족한 상황에서 급하게 백업 자원을 찾다가 다이어를 임대 영입한 것이다. 김민재의 아시안컵 차출 공백과 다요 우파메카노의 부상으로 인해 다이어는 남은 센터백인 마티아스 더리흐트의 파트너로 무혈입성하는 어부지리를 누렸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전개가 이어졌다. 다이어 합류 후 불안하던 뮌헨 수비가 자리를 잡아간 것이다. 사실상 우승 결정전이었던 바이어 레버쿠젠과의 원정에서는 부진하며 팀의 0대3 완패의 원인을 제공했지만, 그 직후부터 팀이 안정감을 찾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한다.

아시안컵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김민재는 달라진 팀내 입지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팀이 다이어를 확실한 주전으로 두고, 김민재와 더리흐트를 번갈아 투입하기 시작했다. 독일 최고 권위의 축구전문지 키커는 다이어의 강점으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언급했다. 수비라인을 리딩할 수 있는 선수가 없어 위기가 계속되던 뮌헨이 다이어 합류 이후 그 문제가 해소됐다는 것. 3월 들어 다이어는 4경기 연속 풀타임 출전에 성공했고, 그의 파트너로 더리흐트가 중용되면서 김민재는 벤치에서 기다리는 상황이 많아졌다.

두 번째 요인은 토마스 투헬 감독의 위기다. 분데스리가의 절대 강자인 바이에른 뮌헨은 올 시즌 이미 우승 경쟁이 끝났다는 평가를 듣는다. 사비 알론소 감독이 이끄는 레버쿠젠이 놀라운 행보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버쿠젠이 올 시즌 모든 대회에서 단 1패도 없이 38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하자 뮌헨은 2위로 추격자 신세가 됐다. 2월11일 맞대결에서도 뮌헨은 레버쿠젠에 3골 차 완패를 당했고, 이어진 보훔전까지 연패를 당했다. 뮌헨이 들쭉날쭉한 모습을 보이는 사이에 선두와의 승점 차는 10점으로 벌어진 상태고, 10경기가 남았지만 이 차이가 좁혀질 거라고 전망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결국 지난 2월 뮌헨 수뇌부는 투헬 감독과의 계약을 조기 해지하기로 결정했다. 2026년 여름까지 계약돼 있던 투헬 감독은 올 시즌까지만 팀을 맡고 물러나기로 합의했다. 김민재는 투헬 감독이 강력히 요청해 영입한 선수였다. 감독의 입지가 탄탄할 때는 혹사 논란이 일 정도로 기용됐다. 그러나 투헬 감독이 조기에 떠나는 것이 결정 난 이후 거짓말처럼 김민재는 벤치에 앉는 시간이 많아졌다. 작별을 전제하고 팀을 이끌고 있는 상황에서 투헬 감독도 자기 철학과 신념에 근거한 선수 기용보다는 언론과 여론의 요구와 야합하는 형태로 멤버를 짜며 비판을 피하는 방식을 고수할 뿐이다.

2023년 8월12일 바이에른 뮌헨의 김민재(가운데)가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 DPA 연합
2023년 8월12일 바이에른 뮌헨의 김민재(가운데)가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DPA 연합

현재 팀내 입지 축소, 기량 문제 아니란 의미

3경기 연속 선발 제외가 김민재에게 좋지 않은 시그널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겨우’ 이 정도 위기에 모두의 신경이 곤두섰다는 것은 반대로 프로 무대에서 김민재가 그동안 얼마나 대단한 성취를 이뤘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실제로 김민재 위기설이 대두되자 많은 빅클럽이 거취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에서 김민재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느꼈던 인터밀란, 지난여름 김민재 영입전에 끼어들었지만 놓쳤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가장 먼저 언급됐다. 최고의 클럽인 레알 마드리드로의 이적설까지 거론될 정도다.

일반적으로 아시아 선수가 감독의 입지 변화나 교체로 맞은 위기의 파장은 크기 마련이다. 더 안 좋은 수준의 팀으로 이적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반면에 김민재는 3경기 연속 선발에서 제외되자마자 유럽의 많은 빅클럽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유럽 진출 후 지난 3년 동안 보여준 퍼포먼스가 일관됐고, 현재의 입지 축소도 기량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 대목이다.

김민재 자신도 팀내 입지 변화를 크게 걱정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3월26일 방콕에서 열린 태국과의 2026 북중미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에서 무실점 수비를 펼친 김민재는 “기회를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라고 자신의 상황을 냉정히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훈련장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또 게으르지 않게 잘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것 같다”며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새 사령탑 체제에서 주전 경쟁이 다시 시작될 것이고, 여의치 않으면 이적을 모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깔려있는 모습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