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민주주의 국가의 무기고로 부상한 한국
  • 김종대 전 국회의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30 10:00
  • 호수 1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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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산, 수은법 개정으로 다시 기회 잡았지만 넘어야 할 산 많아 
정부 간 무기 거래의 제도적 기반 마련하고 R&D·투자 역량 키워야

2월29일 국회는 수출입은행의 법정자본금을 15조원에서 25조원으로 증액하는 내용을 담은 수출입은행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작년에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윤석열 대통령이 폴란드를 방문해 약속했던 무기 수출 금융지원 문제 역시 상당 부분 해결됐다. 폴란드처럼 재정 여력이 부족한 나라에 대한 무기 수출은 계약금 일부를 정부가 수은을 통해 수입국에 지원하고, 수입국 정부가 10~50년에 걸쳐 대출을 상환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안보가 절박해진 폴란드는 2022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국항공우주(KAI), 현대로템 등 국내 방산업체와 K9자주포, K2전차 등 무기를 구매하는 17조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 계약은 주로 완제품을 거래하는 1차 계약이고 그 이후에 폴란드는 기술 도입 현지생산을 골자로 한 30조원 규모의 2차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었다. 1차 계약 때 수은이 폴란드에 6조원을 빌려줬기 때문에 자본금의 40% 이상은 특정 단일 채무자에게 지원할 수 없도록 한 수은법에 따라 남은 대출 한도는 1조3000억원에 불과했다. 이번에 수은법이 개정됨에 따라 수은의 4조원에 무역보험공사 4조원을 합쳐 총 8조원을 폴란드에 지원할 수 있게 됐다. 폴란드는 우리 측에 20조원을 요구하고 있어 2차 계약 전체를 감당하기에는 아직 부족하지만, 일단 2차 계약의 돌파구가 열린 것으로 봐야 한다.

한국수출입은행의 법정자본금 한도를 높이는 게 핵심인 수출입은행법 개정안이 2월29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고 있다. ⓒ연합뉴스

산은 통한 금융지원만으론 무기 수출 한계

국가적으로 재정이 불안한 나라에 이렇게 대규모 금융지원을 하면서 무기를 수출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국내 방위산업이 낮은 가동률과 저조한 영업이익으로 장기간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익률 높은 무기 수출은 새로운 활로다. 국내에서 정부에 납품할 때는 수익률이 6~7%에 불과하지만 해외 수출은 초기 설비가 이뤄진 상태에서 추가로 생산만 하면 되므로 수익률이 20~30%에 달한다. 최근 창원의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현대로템 공장에서는 수백 명 단위의 추가 고용이 이뤄지고 있고, 생산직 직원에 대해서도 추가 성과금을 발표하는 등 방산이 기지개를 켜는 모습은 과거 우리 정부에 납품할 때와 구별되는 방산 수출의 경제적 효과를 실감하게 한다.

여기에다 냉전 시대 ‘민주주의 무기고’로 불렸던 미국의 군수 기업이 생산 부족, 부적절한 노동력, 공급망 중단 등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만큼 한국 방산의 수출 기회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미국의 방위산업 고용은 냉전 시대 350만 명에서 현재 110만 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30년 전의 방산 기업 40%가 문을 닫거나 매각된 상태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국의 재블린 지대공 미사일의 6년치 납품 수량이 단 10개월 만에 소비됐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필요한 노동력을 구하지 못해 우크라이나의 재블린 미사일 추가 공급 요구에 응하지 못했다. 작년 7월에 미국의 ‘포린어페어즈’지에 실린 ‘미국은 어떻게 전쟁 기계를 무너뜨렸는가’라는 기사에서는 “베트남 전쟁 당시 5곳이던 미국의 탄약 생산공장이 지금은 한 곳에 불과하다”면서 “미국의 방위산업은 공동화됐다”고 묘사되기도 했다. 이런 추세는 유럽이 더 심각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유럽은 더 이상 155mm 탄약을 생산할 수 없다는 점이 밝혀졌다.

‘인도네시아 케이스’에서 드러난 문제들

반면 한국의 방위산업은 장기간 유지돼온 생산라인과 숙련된 노동력의 공급으로 신속한 납품과 품질이 보장된다는 점이 최대 강점이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서 재래식 무기의 수요가 발생하고 있고, 설령 이 전쟁이 종료되더라도 지정학적 요인으로 인해 민주주의 국가의 재무장이 촉진되는 상황은 더욱 가속화된다. 이 과정에서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의 무기고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수은을 통한 금융지원으로 무기 수출을 촉진하는 현재의 정책에는 한계가 있다. 엄격히 말하면 수은은 반도체나 자동차 같은 민간 상용제품 수출을 지원하는 기관이지 정부 간 무기 거래를 지원하지는 않는다. 무기 거래는 주로 민간이 아닌 정부 간 거래로 이뤄지기 때문에 민간 무역과 분리된 해외군사판매제도(Foriegn Military Sale)로 알려진 별도의 시스템을 통해 거래된다. 이 제도를 통해 무기 거래에 따르는 법적·도덕적 문제는 물론이고 가격과 품질, 후속 군수지원까지 관리하는 것이 그간 한국이 무기를 도입해온 주된 방식이었다. 무기 수출 규모가 크지 않은 우리나라는 이런 제도적 기반이 결여돼 수은의 금융지원에 의존하는 궁색한 방법으로 수출이 이뤄졌다는 점이 향후 사업 관리의 어려움으로 표출될 것이다. 무기 수입국의 각종 요구나 불만에 대처할 수 있는 체제가 불분명해 보인다.

향후 해외 무기 시장과 수출 전망을 고려하면 취약한 방산업체의 연구개발(R&D) 역량도 보완해야 한다. 정부의 무기 획득 정책은 연구개발 투자를 업체 비용으로 전가하면서 본격적인 양산 단계에서나 보상하는 방식이다. 이로 인해 무기의 성능 개량이나 중요 부품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가 매우 빈약해 한국형 무기의 잠재력이 확장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와 공동개발하는 한국형 전투기(KF-21)의 경우 인도네시아가 약속한 개발분담금을 지급하지 않자 정부는 개발업체에 이를 보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1조원이 넘는 개발분담금을 업체가 부담할 수 있겠느냐는 점도 의문이지만, 정부의 국책사업에 대한 투자 전략이 불분명하다는 점은 향후 수출 전망을 크게 훼손할 요소다.

합리적인 투자와 개발 책임의 분담 차원에서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향후 수출 기회도 확장된다. 아직 무기를 수출하는 재정적·제도적 기반이 취약한 한국은 방위사업청 구조 개혁을 통해 개발과 제조 역량을 국가가 직접 보호하는 체제로 전환돼야 한다. 이를 등한시하고 어쩌다 주어진 기회를 기존 체제로 대응하겠다는 발상 자체는 한국 무기의 강점을 활용하는 전략이 아니다. 좀 더 종합적인 방산 정책이 선행돼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종대 전 국회의원
김종대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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