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 정서에만 의존하는 이언주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06 17:00
  • 호수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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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의 시시비비] 이언주 의원은 과연 보수정치의 아이콘 될 수 있을까

7월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이언주 의원의 출판기념회가 보수 정치권에서 화제가 됐다. 무소속 의원의 행사에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대표가 참석해 축사를 하는 등, 한국당 소속 20여 명의 의원들과 홍문종 우리공화당 대표까지 마이크를 잡고 러브콜을 보내는 진풍경이 연출됐기 때문이다. 참석자들 입에서는 행사의 열기가 마치 대선 출정식 같다는 말이 나왔다.

이언주 무소속 의원이 7월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나는 왜 싸우는가》 출판 리셉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이언주 무소속 의원이 7월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나는 왜 싸우는가》 출판 리셉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사실 이 의원은 수도권 재선 의원이지만, 그렇게 잘나가던 정치인은 아니었다. 민주당에 있던 시절에는 당내에서 찬밥 신세였다고 스스로 회고한 바 있고, 지난 대선 정국에서 국민의당으로 옮겨 안철수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지만 실패로 그치고 말았다. 그 뒤로 국민의당 대표 경선에 나섰지만 3.95%를 득표하는 데 머물렀다. 이 의원은 다시 바른미래당에 참여한 뒤 원내대표 경선에 나섰지만 또 한 번의 실패를 겪게 된다. 급기야 바른미래당에서 ‘손학규 대표 찌질’ 발언을 했다가 징계를 당하자 탈당해 무소속으로 배회하고 있는 상태였다. 어찌 보면 어느 정당에도 안착하지 못한 채 계속 떠돌기만 해 온 정치인이었는데 갑자기 보수 정치권의 구애 대상으로 부상한 모습이다.

그 배경을 읽기는 어렵지 않다. 지난 대선 정국 때만 해도 중도를 표방했던 이 의원이었지만, 바른미래당 시절부터는 페이스북과 이언주TV 등을 통해 ‘보수 우파’를 대변하는 초강경 발언들을 쏟아내면서 연일 뉴스에 올랐다. 자주 막말 시비에 올라 여론의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그조차도 강경한 보수층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나름대로 팬덤이 구축되기도 했다. 특히 그는 ‘문재인 저격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문재인 정부를 향한 날 선 독설을 계속해 왔다. 한마디로 보수 정치권의 전사(戰士)로 급부상한 것이다. 그동안 새로운 스타의 기근에 시달리던 한국당으로서는 남부럽지 않은 스펙에다 전투력을 갖춘 이 의원을 앞장세워 보수 정치권의 개편을 추진할 욕심을 낼 법하다.

 

개인 상황에 따라 이념적 정체성 바뀌어

이 의원은 보수 계열의 정치인으로서 여러 강점이 눈에 띈다. 좋은 학력에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변호사 경력, 30대 나이에 오른 대기업 임원 경력 등. 정치인이 되기 이전까지 보여줬던 능력에 걸맞은 열정을 그는 보여주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각을 세우려는 보수 정치권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이 의원의 ‘화끈한’ 말들이 매력적일지 모른다. 최소한 현 정권에 불만을 가진 강성 보수층을 결집시킬 정도의 화력을 그는 과시하고 있다. 그런 이 의원을 보수정당들이 주목하는 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쎈’ 발언들의 효과가 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에게는 성장을 제약하는 약점들이 많이 따라다닌다. 우선 그의 정치이력이 말해 주듯이 조직보다는 개인을 우선해 온 정치행보의 문제다. 정치를 민주당에서 시작했던 이 의원은 중도인 국민의당으로 갔다가 다시 바른미래당을 탈당한 이후에는 한국당과 함께하게 될 가능성이 있는 보수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물론 그때마다 자신과 맞지 않는 당을 탓했지만, 그는 결과적으로 어느 곳에도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를 드러냈다. 국민의당 시절 당 대표 경선에 갑자기 출마했던 광경은 그의 캐릭터를 잘 말해 주고 있다.

그때 전당대회에서 안철수 후보와 러닝메이트가 되어 최고위원에 도전하려 했지만 그쪽으로부터 화답이 오지 않았다. 그때까지 안철수계로 인식되었던 그였지만 “나는 안철수 측근이 아니라 경쟁적 동지 관계”임을 선언하며 갑자기 경쟁적인 관계로 돌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바른미래당이 만들어진 이후에도 이 의원은 줄곧 한국당 쪽으로 시선이 더 가 있을 정도로 정체성의 변신을 보여주었다. 자신이 처한 개인적 상황에 따라 이념적 정체성이 변하곤 했던 그의 정치행보는, 속해 있는 조직보다는 개인을 우선하는 정치인이라는 시선을 자초하기에 이르렀다.

 

과거와 다를 것 없는 ‘싸우는 보수’의 모습

두 번째로는, 이 의원의 거듭되는 ‘막말’ 논란은 정치사회적 대립과 갈등을 격화시키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그것이 시대가 원하는 보수의 가치인가에 대한 의문을 낳는다. 의식적으로 대립각을 세우기 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이 의원은 평소 발언에서 입장이 다른 사람이나 세력을 비하하는 어법을 흔하게 사용한다. 급식 조리종사원들에 대해 “그냥 급식소에서 밥하는 아줌마들이다”고 했던 발언부터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를 가리켜 “물건이 너무 하자가 심하다”고 했던 발언, 문 대통령에 대해 “이런 불통에 꼰대가 따로 없다”고 했던 발언, 문재인 정부를 향해 “북한식 전체주의와 닮은 좌파 특유의 악랄함이 심해지고 있다”던 발언,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에게 “알고 보니 꼴통 사회주의자에 폭력적인 파시스트군요”라고 했던 발언 등에 이르기까지 타인들을 모욕하는 말들을 수없이 해 왔다.

물론 그런 유의 타자 비하 발언들을 ‘사이다’라며 환호하는 층들은 보수나 진보 어디에든 존재하지만, 다수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증오의 정치를 증폭시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의원은 자신의 책 《나는 왜 싸우는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제 보수는 제2의 도약기를 준비해야 한다. 버전을 바꾼 차세대 보수가 필요하다.” 이제 대중화된 보수는 투철한 이념적 완결성과 충분한 역사관, 그리고 논리적 탁월함을 겸비한 유능한 보수의 등장을 소망하기 시작했다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이 의원 자신이 보여주고 있는 보수가 과연 버전을 바꾼 차세대형인지는 아직 와닿지 않는다. 그의 책 제목이 말해 주듯이 그는 ‘싸우는 보수’다. 실제로 이 의원은 문재인 정권과 싸우는 전사형 정치인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로서는 이념적·역사적·논리적으로 문재인 정권과는 각을 세워 싸워야 한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결국 눈에 보이는 것은 과거의 보수와 다를 것 없는 ‘싸우는 보수’의 모습이다. 아마도 국민들이 우리 보수 정치에 원하는 바가 그런 것은 아닐 게다. 보수든 진보든, 이제는 서로 공존하며 경쟁하는 자세를 가져야지 상대를 박멸해야 할 대상처럼 여기는 정치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낡은 것의 반복에 불과하다.

이 의원은 최근 부산에서 열린 출판 강연회에서 자신을 ‘영도 토박이’라 소개하며 부산 영도 출마를 강력히 시사했다. 아마도 부산에서 반(反)문재인 바람을 불러일으킬 빅매치를 원하는 듯하고, 한국당 입장에서는 총선 전략상 그런 이 의원의 효용성이 탐날 수 있을 것이다. 이 의원의 한국당 입당설, 혹은 이 의원 등이 참여하는 보수신당 정계개편설 등은 그런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포석일 수 있다.

하지만 유감스러운 것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반(反)○○○’ 정서에만 의존하는 보수정치의 모습이다. 물론 싸우는 것도 야당 정치의 진면목이겠지만, 싸우는 것 말고는 자기를 드러내지 못하는 보수정치는 구시대의 유물일 뿐이다. 정치는 협상과 타협의 예술이지 결코 싸움이 본질이 아님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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