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토화된 극장가, 주목받는 IPTV 재난영화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2.29 12:00
  • 호수 1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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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여파로 《컨테이젼》 《감기》 등 인기

우려가 현실이 됐다. 극장가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직격탄을 맞은 모양새다. 극장을 찾는 관객 수는 예년 대비 반 토막을 기록하고 있고, 극장들 역시 정기 방역 작업과 손 소독제 비치 등 예방에 힘쓰고 있지만 관객을 불러 모으기에는 역부족이다. 휴업을 결정하는 극장 역시 생겼다. 확진자가 방문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 CGV 성신여대입구점과 CGV 부천역점에 이어 대구 오오극장, CGV 전주효자점 역시 임시 휴업을 결정했다. 2월초 개봉작들은 대규모 시사회와 쇼케이스, 인터뷰 등을 줄줄이 취소했다. 여파는 3월 개봉작들에까지 미치는 모양새다.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지난 2월21일 전국 영화관을 찾은 관객 수는 19만5975명. 주말 양일인 22일과 23일 관객 수는 총 47만4979명으로, 50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직전 주말 관객 수와 비교하면 절반이 넘게 줄어든 수치다. 관객 수 감소는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지난달부터 이어졌다. 한국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1월 전체 관객 수는 1684만 명. 전년도 1월 대비 7.1% 감소한 수치이며, 2013년 이후 가장 적은 1월 관객 수다. 일일 관객 수로 보면 감소 폭이 더 확연하다. 2월25일 영화진흥위원회 공식 집계에 따르면 24일 하루 극장을 찾은 관객은 7만7071명. 하루 극장 관객이 8만 명 아래로 집계된 것은 16년 만에 처음이다.

2월26일 서울 영등포구 영화관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방문한 시민이 적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2월26일 서울 영등포구 영화관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방문한 시민이 적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개봉작 고전…아카데미 특수도 주춤

2월 개봉작들은 줄줄이 고전 중이다. 12일 그대로 개봉을 감행했던 《정직한 후보》는 25일까지 2주간 137만 명(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2월26일 기준)의 관객을 모았다. 7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순항하던 중 2주 차에 확진자가 무더기로 발생하면서 관객이 급감한 것이다. 영화는 4선 의원 선거를 앞두고 어느 날 갑자기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된 주상숙(라미란)이 주인공인 코미디다. 거짓 선거 공약이 불가능해진 의원 후보라는 참신한 소재, 라미란의 물 오른 코미디 연기는 대중적 소구점이 확실했다.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직의 힘을 이야기하며 등장한 것도 시의적절했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변수가 발목을 잡은 것이다. 손익분기점인 150만 돌파가 멀지 않아 보이지만, 마냥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당초 같은 날 개봉 예정이었던 한국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경우 더 악재다. 사태가 진정되길 바라며 한 주 늦춘 2월19일 개봉했지만, 확진자가 급증하는 시기와 겹치는 바람에 악수를 둔 격이 됐다. 개봉 7일 차인 25일까지 관객 수는 41만4000여 명. 전도연과 정우성 등 스타 캐스팅, 스릴 넘치는 전개 등으로 호평이 많았던 작품이기에 아쉬움이 크다. 현 상황으로는 손익분기점인 240만 명을 넘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한창 아카데미 시상식 특수를 누리고 있어야 할 외화들 역시 주춤하다. 《기생충》과 더불어 가장 강력한 작품상 후보로 손꼽혔던 샘 멘데스 감독의 《1917》은 2월19일 개봉해 25일까지 32만 관객을 모았다. 그나마 12일 개봉한 《작은 아씨들》은 72만 명 넘는 관객을 모으며 나름 선전했다. 르네 젤위거의 여우주연상 수상으로 화제를 모은 《주디》는 당초 26일에서 3월12일로 개봉일을 연기했다.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를리날레 스페셜 갈라 섹션 초청으로 화제를 모았던 《사냥의 시간》도 2월25일 예정이었던 언론배급시사회를 비롯해 인터뷰, 극장 무대인사, 쇼케이스와 극장 예매권을 포함한 모든 상영 이벤트를 취소했다. 26일이었던 개봉일도 잠정 연기됐다. 개봉일 조정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3월5일 개봉 예정이었던 신혜선, 배종옥 주연의 《결백》도 언론시사회 일정 등을 취소하고 개봉을 미뤘으며,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도 3월에서 4월로 개봉일을 연기했다. 《인비저블맨》(26일 개봉)처럼 예정대로 개봉을 감행하는 영화도 언론 배급 관계자들이 모이는 시사회는 취소하는 식이다. 26일 개봉 예정이었던 《기생충》 흑백판, 3월 개봉 예정이던 박신혜 주연의 《콜》도 개봉 잠정 연기 소식을 전했다.

독립예술영화의 경우는 더욱 참담하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의 화제작이었던 김초희 감독의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3월5일 개봉을 감행하되 개봉 전 행사들을 모두 취소했다. 5일 개봉 예정이었던 《이장》, 12일 개봉 예정이었던 박소담 주연의 《후쿠오카》, 19일 개봉 예정이었던 《나는 보리》 등이 잇따라 개봉을 연기했다. 독립예술영화 1위를 지키고 있는 외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정도를 제외하고는 일일 관객 100명을 모으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독립예술영화 관계자들은 “소규모 개봉 영화일수록 관객과 일일이 만나며 입소문을 내는 GV(Guest Visit·관객과의 대화) 등이 절실한데 행사를 열 수가 없으니 답답한 심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왼쪽부터)영화 《컨테이젼》, 영화 《감기》, 넷플릭스 《판데믹: 인플루엔자와의 전쟁》 ⓒ주)워너브러더스 코리아 · (주)아이러브 시네마 · 넷플릭스
(왼쪽부터)영화 《컨테이젼》, 영화 《감기》, 넷플릭스 《판데믹: 인플루엔자와의 전쟁》 ⓒ(주)워너브러더스 코리아 · (주)아이러브 시네마 · 넷플릭스

IPTV 재난영화 인기…”코로나19 상황과 유사”

극장가가 얼어붙는 동안 안방극장에서는 전염병 관련 재난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제공하는 온라인상영관 박스오피스에 따르면 IPTV 서비스 인기작 중 하나는 《컨테이젼》(2011)이다. 홍콩 출장을 다녀온 여성이 발작 후 사망하고, 이후 전 세계 사람들이 같은 증상으로 사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영화는 박쥐가 바이러스의 주원인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 역시 코로나19 발생 상황과 유사하다는 지적이다. 이 작품의 경우 2월23일 기준 일간 시청 순위 4위를 기록했다. 《남산의 부장들》 《기생충》 《겨울왕국 2》 등 최근 화제작들에 뒤이은 순위다. 개봉 당시에는 22만9000여 명의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던 영화다.

김성수 감독의 재난영화 《감기》(2013) 역시 재조명되고 있다. 초당 3.4명, 치사율 100%의 호흡기 감염 바이러스가 퍼지는 국가 재난 사태에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의 사투를 그린 영화다. 《감기》 역시 2월23일 일간 시청 순위 6위에 올랐다. 두 작품은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발생했을 때도 똑같이 주목받은 바 있다. 넷플릭스가 지난달 공개한 6부작 다큐멘터리 신작 《판데믹: 인플루엔자와의 전쟁》도 화제다. 판데믹(pandemic)은 전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말이다. 인플루엔자 확산과 전파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료진들의 모습을 그린 이 다큐는 SNS를 중심으로 추천이 빠르게 늘고 있다.

메르스 사태와 비교하면?

연초부터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올해 영화 산업은 최악의 성적표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 20일 발표된 ‘2020년 1월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설 연휴(1월 24일~26일) 전체 관객 수는 372만 명. 2016년 이후 가장 낮은 관객 수를 기록했다. 특히 2월 7일~9일 주말 관객 수는 104만 명으로, 2015년 메르스 확산 시기 주말(2015년 6월 5~7일) 관객 수보다 50만 명가량 적다. 코로나19가 극장가에 미치는 영향이 메르스 사태 당시보다 심각하다는 결과다. 메르스 당시 전년 대비 1일 관객 수가 30% 이상 줄어든 기간은 9일(6월 2일~10일)에 불과했다. 2015년 6월 일일 최저 관객 수는 16만 명이었다. 지난 24일 하루 극장을 찾은 7만 7천여 명에 비하면 2배 이상의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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