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계 용이한 지주사 체제, 중견기업들 앞다퉈 전환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0.03.04 14:00
  • 호수 1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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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지주회사의 개념이 도입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03년 LG그룹의 지주사 체제 전환이 첫 사례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재계에서는 순환출자가 일반적이었다. 계열사들이 서로 얽히고설키게 지분을 투자하는 이 방식은 경영이 불투명하다는 점과 계열사의 독립 경영이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럼에도 재계에서는 지주사 전환이 잇따랐다.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으로 총수가 존재하는 재벌 그룹 중 21곳이 현재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상태다. 전체 지주회사는 173개에 이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월25일부터 총수 일가의 사익편위 행위 근절을 위한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 행위 심사지침’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공정거래위원회는 2월25일부터 총수 일가의 사익편위 행위 근절을 위한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 행위 심사지침’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연합뉴스

다만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는 데는 걸림돌이 있었다. 자본이 많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지주사는 상장 자회사의 지분 20%(비상장사 40%) 이상을 보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회사가 보유해야 하는 손자회사 지분율도 동일하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계속해서 지주사 체제로 전환해 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주사 지분만 충분히 확보하면 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어 경영권 승계 작업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재벌가에서 지주사 전환을 승계의 도구로 애용해 왔다. 후계자 소유의 비상장사를 내부거래로 성장시킨 뒤 이를 바탕으로 지주사 지분을 확보하는 식이었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중견기업들도 앞다퉈 지주사 전환을 선언하고 있다. 지주사 전환에 대한 세제 혜택이 향후 대폭 축소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인적분할한 사업회사 주식을 지주회사에 현물출자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 특례를 2022년부터 중단키로 했다.

따라서 이후 지주사로 전환하려는 기업의 주주는 현물출자 과정에서 얻는 차익에 대한 세금을 4년 거치 후 3년 동안 분할 납부해야 한다. 이를 의식한 듯 인쇄회로기판(PCB) 제조업체인 대덕전자는 지난 2월14일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공식화했고, 닭고기업체 마니커를 계열사로 둔 이지바이오도 상반기 중 지주사 체제 전환을 앞두고 있다. 이 밖에도 태영건설과 솔브레인 등도 각각 올해 6월과 7월 지주사 체제로 지배구조를 전환할 방침이다. 세제 혜택 일몰 전 막차를 타는 모양새다.

한편으로 여전히 지주사 체제 밖에 머무르는 총수 일가 개인회사가 170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내부거래를 통한 부의 대물림 창구로 이용되는 경우다. 특히 이들 계열사 중에는 지주사 지분을 보유한 회사도 9곳 있었다. 모두 편법 승계에 이미 동원됐거나, 향후 재원 창구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지목받는 회사들이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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