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 하루 만에 ‘분구→백지화’…들끓는 순천 정치판
  • 호남취재본부 정성환·박칠석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0.03.0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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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선거구 분할 합의’에 뿔난 순천
“일부 읍면동 다른 군에 편입은 꼼수”
민주당의 순천 전략선거구 지정도 논란

국회가 전남 순천 분구를 백지화한데 이어 더불어민주당이 전략선거구로 지정하면서 순천 각계가 들끓고 있다. 여야 3당이 순천 선거구를 분구하는 대신 일부 지역을 쪼개 다른 시·군으로 편입시키는 선거구획정안을 합의하자 분구를 기대했던 지역 정치권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민주당의 순천 전략공천지 지정에 따라 끊임없이 제기됐던 ‘소병철 전략공천설’의 현실화 가능성이 한층 높아지면서 지역정치판이 격량에 휩싸였다. 

2월 기준 순천시의 인구는 28만1347명으로 선거구획정위원회가 분구를 결정했으나 3당 원내대표는 4일 선거구획정안 재의를 요구한 상태다. 여야 합의안대로라면 분구 가능 인구상한선(27만8000명)을 못 넘기게 돼 2개 선거구 안이 다시 1개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국회는 6일 처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 3당 원내대표의  순천시 선거구 분할 합의문 ⓒ순천시의회
여야 3당 원내대표의 이른바 순천시 선거구 분할 합의문 ⓒ순천시의회

“분구하라”…허석 시장·지역정치권 “게리맨더링” 비판

순천시와 승주군이 통합되며 순천시 갑·을로 나뉘어 운영되던 통합 순천시는 지난 16대 총선 때 합구된 이후 지금의 순천시 선거구로 자리 잡았다. 제19대 총선에서는 곡성군과 합구됐던 이력도 있지만 제20대 총선에서 다시 순천 단독 선거구로 환원됐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구가 하루 만에 ‘분구’→‘쪼개기’로 뒤집어졌다. 

이에 예비후보는 물론 지역 단체장, 지역의원 등은 “순천 시민을 우롱하는 처사”라며 선거구 분구를 촉구했다. 순천시 도·시의원은 5일 오후 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여야 3당 합의로 이뤄진 선거구획정안에 단호하게 반대하며 순천지역 분구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인구 상한선을 초과해 분구 대상인 순천시의 일부 읍면동을 떼어내 다른 시군에 편입시키려는 계획은 위헌적인 방법일 뿐만 아니라 특정 후보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획정하는 ‘게리맨더링’이다”며 “순천 시민의 자존심을 짓밟고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다”고 비판했다.

허석 순천시장도 이날 오전 입장문을 내고 “선거구 획정에 인구 등가성을 가장 우선 고려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과도 배치되는 것”이라며 “순천시의 일부 읍면동을 떼어내 타 선거구로 편입시키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28만 시민과 함께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서정진 순천시의회 의장이 5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21대 총선 순천 분구를 촉구하는 순천지역 도·시의원 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순천시의회
서정진 순천시의회 의장이 5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21대 총선 순천 분구를 촉구하는 순천지역 도·시의원 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순천시의회

민주당 예비후보들도 잇달아 보도자료를 내고 여야 합의를 성토하고 나섰다. 서갑원 예비후보는 “위헌적인 발상으로 인구 상한선이 넘어 분구 대상인 순천의 한 지역을 다른 시, 군에 분할 배치한다는 계획은 전형적인 ‘게리맨더링’으로 순천시민들의 자존심을 짓밟는 폭거”라고 주장했다.

노관규 예비후보도 “분구를 막기 위해 순천시의 한 면을 인근 군에 붙여 인위적으로 인구 상한선을 넘기지 못하게 하는 것은 정치적 야합”이라며 “선거구 획정 분할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김영득 예비후보는 “어떤 조건으로도 분구에 부합하는 순천을 야합을 통해 순천시 일부를 떼어서 행정구역을 인접 시군에 붙인다는 허무맹랑한 결정을 30만시민들과 함께 분개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합의를 '민주당의 야합'으로 규정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민중당 소속의 김선동 예비후보는 이날 오후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순천시를 쪼개는 선거구 획정 합의안은 원칙을 무시한 민주당의 야합”이라고 민주당을 규탄했다. 

 

민주당, 소병철 전략공천설에 지역여론 싸늘…“지난 과오 잊은 오만”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순천시를 전략선거구로 지정하며 지역 정치권 반발의 불씨를 키웠다. 분구가 어려워진 마당에 지역 유권자들의 민심을 반영할 수 있는 당 경선마저 무산되면서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지역정가에선 분구가 될 경우 한 곳에는 당 인재영입 인사인 소병철 전 법무연수원장을 전략공천하고 다른 곳은 기존 예비후보들의 경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1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영입인재 4호’인 소병철 전 대구고등검찰청 고검장에게 당원교과서 등을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1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영입인재 4호’인 소병철 전 대구고등검찰청 고검장에게 당원교과서 등을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전략공천지 지정을 두고 지역 정치권에서는 당 영입인사 4호인 고검장 출신 소병철 순천대 석좌교수(전 법무연수원장)의 전략공천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이 기존 예비후보를 포함해 후보자를 심사한다고는 했지만 전략선거구로 지정한 만큼 소 전 법무연수원장이 공천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예비후보로 등록하지 않은 소 전 법무연수원장이 전략공천될 경우 지역을 갈고 닦아온 당내 예비후보들의 거센 반발은 물론 지역 여론의 악화 가능성도 높다. 당장 김영득 팔마청렴문화재단 이사장, 노관규 전 순천시장, 서갑원 전 의원, 장만채 전 전남교육감 등 그동안 표밭을 다져온 당내 경쟁자들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지역 정가 한 관계자는 “아직은 정해진 것이 없다고 하지만 순천 정치판은 격랑 앞에 놓여있다”고 진단했다. 

지역에선 민주당의 이 같은 결정이 순천에서 당 지지율이 높다는 오만에서 비롯된 판단이라는 싸늘한 반응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이 과거에 저지른 과오에 대한 유권자의 준엄한 심판을 잊은 채 내렸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2011년 4.27 재보선에서 야권연대라는 명분으로 순천 무공천을 결정한 이후 지난 10년간 4차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간판으로 선거에 나온 후보들이 줄줄이 낙마했다. 

반면에 지역 일각에서는 ‘선거구 조정이 먼저 선행돼야 하는 것 아니냐’며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순천의 한 정가 관계자는 “(전략공천설에)살이 떨린다”면서도 “선거구획정위원회가 다시 여야가 합의한 내용과 다른 의견을 낸 것으로 알고 있어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순천시 선거구 분구가 무산 위기에 처한 가운데 지역 정치권이 국회를 항의 방문했다. 순천시선거구 소속 민주당 전남도·순천시의원들은 6일 오전 국회를 항의방문하고 순천 분구와 전략공천 철회, 후보자 경선 실시 등을 강하게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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