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살기도 힘든 시기에’ 개봉한 동물 영화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0.09.0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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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상생 의미 곱씹은 다큐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
반려문화 깎아내리는 이들에게 “서로를 포기하지 말자” 손 내밀어
<br>서울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백사마을. 재개발로 인해 주인이 떠난 집에는 개만 덩그러니 남았다. 목줄이 풀린 개들은 산으로 올라가 들개가 됐다. ⓒ 영화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 中
영화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의 한 장면 ⓒ투아이드필름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우리네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경제는 물론 나눔, 사랑, 예술 등 사회를 풍성하게 하던 가치들도 흔들리고 있다. 누군가 ‘속 편한 소리’라도 하면 금방 눈총을 받을 것 같은 날선 요즘이다. 

이런 가운데 동물과의 공존과 상생을 논하는 영화가 최근 개봉했다. 영화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은 서울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백사마을의 떠돌이 개와 고양이 이야기를 담았다. 2017년 5월 진행된 백사마을 개·고양이 전수조사가 영화 제작의 발단이자 주요 소재다. 

블록버스터도 고전하는 시기에 나온 잔잔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은 당초 지난 3월 개봉할 예정이었다가 코로나19 확산으로 미뤄졌다. 확산세가 진정되긴커녕 더욱 거세졌지만, 개봉을 추가로 미룰 순 없었다. 

재개발로 인적이 드물어진 백사마을에는 길고양이들도 급격히 늘어갔다. ⓒ 영화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 中
영화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의 한 장면 ⓒ투아이드필름 제공

재개발 속 버려지는 개·고양이들 

임진평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이 개봉을 감행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영화의 메시지가 더이상 비경제적이고 비효율적이라는 폄하 안에 갇혀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만 간극을 메우기 위해 ‘집사(반려동물 보호자)들을 위한 힐링 다큐’라는 헤드카피를 내걸거나 반려동물에 관한 시를 영화 중간중간 배치하는 등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백사마을은 재개발 확정으로 2017~2018년 영화 촬영 당시 이미 많은 주민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도중이었다. 주인이 떠난 집에는 개만 덩그러니 남았다. 목줄이 풀린 개들은 산으로 올라가 ‘들개’가 됐다. 사람이 별로 안 사는 불암산 자락 달동네에 ‘도둑고양이’들도 급격히 늘어갔다. 그러나 러닝타임 내내 등장하는 동물들은 사나운 들개나 골칫거리 도둑고양이가 아니었다. 버림받고 인간들의 생활권에서 밀려난 떠돌이일 뿐이었다. 

급기야 서울시와 동물보호단체 ‘카라’가 백사마을 내 개·고양이에 대한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개체 수를 파악하고 중성화 수술도 진행했다. 이후 개와 길고양이의 보호소 ‘동행 104’가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다. 뜻 있는 지역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이 1년여간 사비를 들여 동물들을 구조하고 돌보고 입양 보낸 활동이었다.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의 기획자인 김성호 한국성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모든 프로젝트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임진평 감독과 함께 이번 영화를 기획하게 됐다. 

동행 104를 통해 한 가정으로 보내진 경일이와 프로젝트 종료 후 캐나다 토론토로 입양된 망치의 모습은 ‘개도 행복하면 웃는다’는 사실을 명확히 증명한다. 반려견이나 반려묘 옆에 있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웃고 있다. 

영화가 백사마을 모습과 개·고양이 관련 프로젝트만 다룬 것은 아니다. 배우 진완호씨가 같은 해 태어난 반려견 춘식이와 19년간 함께 우정을 주고받다 갑작스레 이별하게 된 사연은 애니메이션과 어우러져 더 아름답고 처연하게 다가온다. 진씨의 아버지는 이사하는 날 춘식이를 홀로 남겨두고 떠나며 아들에게 “상황이 좋아지면 그깟 개 따위 얼마든지 더 키우게 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 살기도 버거운데 그깟 동물한테 왜 필요 이상으로 관심을 쏟느냐’는 인식과 보호자들 변심이 합쳐져 전국의 유실·유기동물은 2014년 8만 1147마리에서 지난해 13만 7591마리로 급증했다. ⓒ 영화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 中
영화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의 한 장면 ⓒ투아이드필름 제공

동물은 밀려난 사람 버리지 않는다 

영화는 반려동물을 잃은 뒤 ‘펫로스(Pet loss) 증후군’을 앓는 보호자들이나 길고양이를 돌보는 ‘캣맘’ ‘캣파더’에게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도 가감 없이 다뤘다. ‘사람 살기도 버거운데 그깟 동물한테 왜 필요 이상으로 관심을 쏟느냐’는 반응이다. 이런 인식과 보호자들 변심이 합쳐져 국내 유실·유기동물은 2014년 8만1147마리에서 지난해 13만7591마리로 급증했다. 

한편 백사마을의 개·고양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2018년 10월9일 보호소 동행 104가 문을 닫았고, 동물들은 다시 남겨졌다. 올해 현재 백사마을 재개발이 본격화하면서 주민 50%가 이주를 완료했다. 이곳은 곧 2400여 가구를 수용하는 아파트촌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백사마을 고유의 정취를 유지한다는 취지의 ‘주거지보전사업’도 동시에 추진하지만, 전체의 5분의1 규모에 불과하다. 사업개요에 ‘떠돌이 개·고양이도 보호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을 리 만무하다. 

영화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 제작진은 2018년 9월 백사마을에서 개와 고양이, 그리고 주민들을 위한 음악회를 열었다. ⓒ 영화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 中
영화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 제작진은 2018년 9월 백사마을에서 개와 고양이, 그리고 주민들을 위한 음악회를 열었다. ⓒ투아이드필름 제공

투자를 목적으로 한 외지인들 발길이 줄잇는 백사마을에서 개·고양이들의 미래는 전혀 밝지 못하다. 들개가 아닌 예쁜 이름으로, 도둑고양이가 아닌 ‘길냥이’로 불린 세월은 너무나 짧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백사마을도 이름의 오해를 품고 있다. 행정구역상 주소(노원구 중계동 104번지)를 딴 이름인데, 한글 지명만 듣고는 ‘뱀이 많은 곳’이라 오해하는 이가 많은 것이다. 아울러 백사마을은 1967년 용산, 청계천 등에 살던 판자촌 주민들이 도시 정비를 이유로 강제로 이주당하며 형성된 마을이다. 또 한 번 밀려나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사람들은 더 비참한 동물의 처지를 돌아보지 않는다.

비단 백사마을 만의 일이 아니다. 지금도 전국의 수많은 재개발 지역에서, 휴게소에서, 공원에서 반려동물이 떠나버린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영화는 이런 우리네에게 각성을 요구하진 않는다. 그저 잠깐 추억과 음악을 전하며 “서로를 포기하지 않고 함께 산다는 것, 이보다 더 멋진 일이 있을까”라고 넌지시 말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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