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예능 시대, 코로나가 바꾼 예능 풍경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9.05 16:00
  • 호수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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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시기, 쏟아지는 비대면 예능의 가능성과 한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방송가에도 큰 변화를 불러왔다. 특히 대면 접촉이 하나의 트렌드처럼 추구되던 예능가는 어쩔 수 없이 대안을 내놓거나 방향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 이른바 비대면 예능의 시대. 어떤 변화들이 있었고 그 가능성과 한계는 무엇이었을까. 

예능 프로그램의 변화는 미디어의 발전과 함께 이뤄져왔다. 즉 카메라가 경량화되면서 스튜디오에서 촬영되던 예능 프로그램들은 밖으로 나와 일상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인터넷을 통한 쌍방향 소통이 이뤄지면서 시청자들과의 소통은 예능 프로그램의 중요한 요소가 된 바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쇼 시절에 쏟아져 나온 무수한 일상 속에서의 미션들(여행이나 도전, 실험을 포함한)이 그렇고, 음악 예능의 새로운 형식으로 자리했던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그러했다. 영상은 일상화되고, 그래서 방송의 주인공으로서 전문인들(연예인들)만이 아닌 일반인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졌다. 즉 미디어 변화는 그 자체로 예능 프로그램들이 나가야 할 방향성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이 흐름은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라는 감염병으로 인해 바뀌어버렸다. 대면 접촉이 ‘위험요소’로 작용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가 점점 우리의 일상이 되어 가면서 방송도 비대면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관객들의 참여는 제한됐다. TV조선 《미스터트롯》이 무려 시청률 35%(닐슨코리아)를 내고도 마지막 결승을 무관중으로 치러야 했고, KBS 《개그콘서트》나 tvN 《코미디 빅리그》 같은 공개 개그 프로그램은 관객 없이 제작돼야 했다. 《개그콘서트》는 본래부터 시청률과 화제성이 떨어지며 폐지하게 됐지만 거기에는 코로나19 상황도 일조한 면이 있다. 

길거리로 나서기 시작한 예능 프로그램들도 방향을 수정해야 했다. 길거리에서 만난 이들과의 인터뷰와 퀴즈로 이뤄지던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은 그날의 특집 카테고리에 맞는 인물들을 섭외해 특정 공간에서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특정 지역의 집을 방문해 한 끼를 나누던 JTBC 《한 끼 줍쇼》는 2월부터 방송을 잠정 중단했다. 이처럼 코로나19는 예능이 흘러가던 방향을 되돌리거나 바꾸고 때론 멈춰서게 만들었다.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제공 
tvN 《삼시세끼》의 한 장면 ⓒtvN
tvN 《삼시세끼》의 한 장면 ⓒtvN 제공 

‘사회적 거리 두기’ 시기를 맞아 예능이 택한 대안들 

코로나 시대에 직격탄을 맞은 건 여행 소재 예능 프로그램들과 해외 로케 예능 프로그램들이었다. 대면 접촉을 최소화하면서도 집에서 머무르는 시청자들의 답답함을 풀어줄 수 있는 대안으로 여행 프로그램들은 이른바 ‘비대면 여행’을 시도했다. 이는 코로나 시국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여행이라는 소재의 위기상황을 넘어서려는 의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반영된 결과였다. tvN 《삼시세끼》 어촌편5는 그간 만재도에서 했던 촬영 대신 죽굴도라는 무인도로 들어갔다. 무인도라는 특성상 비대면이 이뤄졌고, 바다 풍광에 다양한 섬의 액티비티가 가능하다는 점은 시청자들이 요구하는 ‘안전한 즐거움’을 만족시켰다. 

tvN 《바퀴 달린 집》 역시 집에 머무르면서도 자연 속으로 들어가 즐기는 이율배반적인 욕구를, 바퀴 달린 집으로 해결했다. 집을 자연 속으로 갖고 들어가 자연을 앞마당으로 두고 가족적인 먹방과 수다, 자연 체험을 담는 것으로 이 프로그램은 성과를 거뒀다. 결국 이들 여행 프로그램이 선택한 건 여행을 하면서도 동시에 비대면을 추구하는 ‘프라이빗’ 여행이었다. 이것은 최근 코로나 시국에 의해 여행 자체가 자제되는 분위기 속에서도 아예 독채를 빌려 휴식을 취하는 프라이빗 여행이 하나의 대안으로 등장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해외 로케 프로그램들은 국내로 방향을 틀었다. tvN 《배달해서 먹힐까》는 본래 태국에서 팟타이가, 중국에서 짜장면이, 미국에서 치킨이 과연 먹힐 것인가를 관찰카메라로 들여다보는 《현지에서 먹힐까》의 대안으로 선택된 것이었다. 국내에서 이뤄진 이 스핀오프 프로그램은 코로나 시국에 주목받는 우리네 배달문화를 콘셉트로 삼았다. 

jtbc 《비긴어게인》의 한 장면 ⓒjtbc
jtbc 《비긴어게인》의 한 장면 ⓒjtbc 제공 

아예 비대면 방송을 추구하는 프로그램들 

JTBC 《비긴어게인 코리아》와 SBS 《정글의 법칙 in 와일드 코리아》도 해외 대신 국내를 선택했다. 《비긴어게인 코리아》는 해외 버스킹 대신 국내에서 코로나와 싸우는 분들이나, 코로나로 인해 지친 대중을 위로하는 독특한 형태의 ‘거리 두기 공연’을 시도했다. 드라이브 인 버스킹은 물론이고 테라스 공연 같은 색다른 시도들이 이뤄짐으로써 공연 공간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얻을 만했다. 《정글의 법칙 in 와일드 코리아》 역시 국내를 선택하는 대신 재난 생존이라는 콘셉트를 대안으로 내세웠다. 코로나 시국에 어울리는 이 콘셉트는 언제 어디서든 벌어질 수 있는 재난 상황(특히 요즘 같은 상황에는 더더욱)에 대처할 수 있는 ‘생존 정보’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라 여겨진다. 

그런가 하면 아예 비대면 방송을 콘셉트로 채용한 예능 프로그램들도 등장했다. MBC 《백파더》는 코로나 이후 기획돼 방송된 프로그램으로, 무수한 화면들을 띄워놓고 스튜디오에서 백종원과 양세형이 화면 속 요린이들(요리+어린이)에게 요리를 알려주는 비대면 방식의 요리 프로그램이다. 관객들이 직접 출연해 대면을 통해 이뤄지는 방식이 아니라, 각자 집 안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스튜디오에서 하는 요리를 따라 하며 배우는 이 요리 프로그램은 생방송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다. 비대면이 가진 한계를 생방송이라는 즉시성의 강점으로 이겨내려 한 것. 물론 여러 창을 동시에 보며 진행해야 하는 생방송이 익숙하지 않아 방송사고에 가까운 일들이 벌어지긴 했지만 이런 방식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적용될 수 있는 새로운 방송의 시도로 볼 수 있었다. 

MBC 《백파더》의 한 장면 ⓒMBC 제공
MBC 《백파더》의 한 장면 ⓒMBC 제공

SBS 《트롯신이 떴다》 역시 화상으로 연결된 특설무대를 마련하는 비대면 공연을 시도했다. 애초 해외로 나가 트로트 버스킹을 시도하려 했던 것이었지만, 코로나 시국을 맞아 대안으로 마련된 것이 특설무대였다. 그 무대에서 가수들은 공연을 선보이고 화상으로 연결된 관객들이 비대면 방식으로 호응해 주는 새로운 공연 무대가 만들어졌다. 

코로나는 기존 예능 프로그램들이 해 왔던 방향을 바꿀 만큼 큰 영향을 끼치고 있고, 진정되기까지는 아직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렇게 바뀐 방향은 포스트 코로나 시기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커졌다. 물론 방송은 그 성격상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대면이 본질이지만, 이제 비대면 방식이 가진 장점들도 경험하게 됨으로써 향후 대면과 비대면은 방송이 함께해야 하는 두 개의 바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백파더》나 《트롯신이 떴다》처럼 직접 소통이 어렵지만, 동시에 전 세계를 연결하고 참여시킬 수도 있는 장점을 비대면 방식은 갖고 있다. 또한 《삼시세끼》 어촌편5나 《바퀴 달린 집》처럼 비대면 방식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문화들이 가진 재미요소들을 끌어낸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코로나 시국이 억지로 열어놓은 것이지만, 비대면이 가진 가능성은 그 한계를 대면으로 채워 넣으면서 그 장점들만을 가져와 좀 더 다양한 방송에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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