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눈 성자’ 김하종 신부 “불안합니다, 매일”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0.09.18 14:00
  • 호수 161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코로나19로 인한 활동 제약·감염 위험에도 낮은 자리에서 사랑 실천

경기도 성남의 사회복지시설 ‘안나의 집’에 가면 두 번 놀라게 된다. 우선 설립자이자 대표인 김하종 신부를 찾기가 너무 쉬워 놀란다. 어디에서든 분주하고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다. 또 김 신부와 대화하는 노숙인들 표정이 굉장히 밝아서 놀란다. 거리에서 보던 지치고 굳은 모습이 아니다.

한국 나이로 64세인 김 신부는 34세이던 1990년 고향 이탈리아에서 한국으로 왔다. 빈첸시오 보르도라는 원래 이름 대신 한국 이름 김하종으로 살기 시작했다. 한국 최초 천주교 신부이자 순교자였던 김대건 신부 성을 따랐고, 이름은 ‘하느님의 종’을 줄인 말이다. 김 신부는 1998년 ‘안나의 집’을 열고 노숙인, 가출 청소년, 불우 아동 등 보호·도움이 필요한 이들과 함께해 왔다. 

ⓒ시사저널 임준선
김하종 신부는 “취약계층에게 도시락을 제공하는 일마저 중단될까봐 매일매일 불안하다”면서도 “기적과 아름다운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며 미소지었다. ⓒ시사저널 임준선 
김하종 신부가 따뜻한 도시락을 전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김하종 신부가 따뜻한 도시락을 전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김 신부는 인터뷰 중 ‘행복하다’ ‘아름답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런데 정작 그가 가장 많이 한 말은 ‘불안하다’였다. 코로나19 사태 속 취약계층 밥 나눔, 청소년 보호 등 주요 사업이 타격을 받은 상황과 무관치 않다. 김 신부는 “무료급식을 못 하게 된 뒤 도시락을 제공하고 있는데, 하루하루 불안감을 많이 느낀다”며 “일 자체가 어렵고 위험하고 경제적으로도 확실치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도시락 준비로 높아진 노동 강도와 스트레스 탓이었을까. 김 신부는 지난 9월12일 저혈압, 피로 등의 증상을 겪고 병원에 갔다. 도시락을 제공하며 매일 불특정 다수와 접촉하는 김 신부다. 페이스 실드, 마스크, 비닐장갑 등을 착용했다고 해도 감염 위험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못하다. 곧바로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 

이틀 뒤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집에서 자가격리를 하며 김 신부는 무릎 꿇고 기도했다. 김 신부는 “내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도시락마저 끊기면 취약계층 600명 이상이 끼니를 거르게 된다”며 “예수님께 ‘도와 달라’고 간절히 빌었다”고 전했다. 다행히 ‘음성’이었다. 

사실 김 신부에게 불안감은 꽤 오래된 친구다. 2018년 9월 ‘안나의 집’ 새 건물에 입주하기 전후로 금전·건강 문제가 그를 괴롭혔다. 활동을 중단하고픈 유혹이 수시로 다가왔다. 김 신부를 붙잡은 건 신의 음성이었다. 그는 “계획을 세우고 자신감이 있을 때 완전히 실패하고 생각지도 못했을 땐 모든 일이 풀리는 과정을 겪었다”면서 “예수님이 ‘걱정하지 말고 나만 따라오라’고 말씀하시며 인도하고 계심을 느끼게 됐다”고 회상했다. 

위기를 극복하고 2년도 채 되지 않아 맞은 코로나19 사태다. 김 신부는 “여전히 두렵고 걱정스럽다”면서도 “인간으로선 해결하지 못할 문제들이 무사히 지나가는 걸 보고 있다. 다시금 ‘다 내려놓고 신을 의지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도시락 준비에 필요한 재정이 잘 충당되는지 묻자 김 신부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모르겠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나 이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하루하루 해결해 나가야 하지만 기적과 같은 일을 수없이 경험하고 있고 아름다운 사람도 너무나 많이 만난다. 식구들(도시락을 받아가는 취약계층)이 여기 와서 질서를 잘 지키고 식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하고 보람스럽다.”   

※ ‘안나의 집’ 후원 문의  
전화 : 031-757-6336
ARS : 1877-1104
(봉사 문의 : 031-756-9050)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