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사나이》가  꺼내 보인 새 그림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9.20 12:00
  • 호수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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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콘텐츠의 가능성 보여줘

유튜브 콘텐츠 《가짜사나이》는 이제 기존 미디어의 콘텐츠만큼, 어쩌면 그 이상 유명해졌다. 누적 조회 수가 4000만 건을 훌쩍 넘어선 《가짜사나이》는 그 수치적 성취만큼, 유튜브 콘텐츠는 물론이고 기존 방송 콘텐츠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튜브 채널 ‘피지컬 갤러리’ 제공 

유명인도 속속 출연자로 지원 

유튜브 콘텐츠 《가짜사나이》 2기 지원자 모집 영상에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들이 들어가 있다. 배우이자 모델 그리고 최근에는 ‘엔강체험’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줄리엔 강, 어딘지 《가짜사나이》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안테나 소속의 싱어 송 라이터 샘 김, 그리고 국가대표 골키퍼로 활약했고 지금은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이자 유튜브 채널 ‘꽁병지tv’를 운영하는 김병지 같은 인물들이다. 물론 기존 레거시 미디어의 콘텐츠들보다 유튜브 콘텐츠에 더 익숙한 이들이라면 2기 지원자 중 홍구나 지기TV, 최고다윽박, 와꾸대장봉준, 머독 등등의 이름이 더 기대감을 높일 것이다. 하지만 누가 더 익숙한가의 문제를 떠나 연예인과 유튜버, 스트리머가 한 프로그램에 들어와 있는 이 풍경은 그 자체로 달라진 콘텐츠의 새 그림들을 보여준다. 

모집인원 14명을 뽑기 위해 《가짜사나이》 2기에 지원한 이들은 공개된 수치만 총 562명이다. 비공개 지원자까지 합치면 1000여 명 이상의 지원자가 몰렸을 거란다. 연예인은 물론이고 유명 운동 유튜버들과 프로게이머, 스트리머 등등의 지원자가 몰리게 된 건 1기가 만들어낸 엄청난 화제 덕분이다. 총 5000만원의 제작비를 들여 만든 《가짜사나이》 1기는 총 7개 에피소드 영상으로 약 한 달 만에 총 4000만 건의 조회 수를 넘겼다. 가장 관심이 쏠렸던 첫 에피소드는 1000만 조회 수를 돌파함으로써 《가짜사나이》라는 콘텐츠는 웹의 차원을 넘어 보편적인 관심을 받는 콘텐츠가 됐다. 

ⓒ유튜브 채널 ‘피지컬 갤러리’ 제공 

그런데 이 콘텐츠의 탄생 과정이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웹 콘텐츠 특유의 특성이 엿보인다. 이 프로젝트는 피지컬 갤러리라는 자세교정이나 운동법을 알려주는 채널의 김계란이라는 1인 크리에이터가 아이디어를 냈다. 본래 먹방 유튜버인 공혁준에게 UDT 출신이었던 김계란이 살빼기 운동 프로젝트를 하면서 나온 말이 씨가 되었다. 그의 게으름을 지적하며 “UDT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했던 말 그대로, 김계란은 무사트(MUSAT)의 이근 교관에게 이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가짜사나이》가 탄생했다. 무사트는 글로벌 보안 전문회사로서 군부대 및 정부기관, 기업, 개인에게 맞춤형 전략전술 장비 자문 및 교육훈련을 제공하는 회사다. 

《가짜사나이》가 공개된 후 주목을 받은 건 이 훈련에 참가했던 참가자들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보다 더 주목을 받은 이는 바로 교관들이었다. 이근 대위는 방송 섭외 일순위로 떠올랐다. JTBC 《장르만 코미디》에서 개그맨들의 생존기를 담고 있는 ‘장르만 연예인’ 코너는 《가짜사나이》를 언급하면서 이근 대위를 섭외해 혹독한 훈련을 받는 ‘가짜 연예인’이라는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이근 대위는 요즘 유행어가 되어 있는 “너 인성 문제 있어?”라는 말을 《가짜사나이》를 통해 유행시킨 장본인이다. 그가 ‘가짜 연예인’에서 멕시코라는 닉네임으로 불리게 된 김성원에게 “너 인성 문제 있어?”라고 묻는 장면은 그래서 그 자체로 화제가 되었다. 

《집사부일체》 ⓒSBS 제공 

軍 소재 예능 부활? 웹 콘텐츠 성장! 

최근 이근 대위는 SBS 《집사부일체》에도 사부로 등장했다. 출연자들은 이근 대위 특유의 혹독한 UDT 훈련을 체험했고 이를 통해 프로그램의 시청률과 화제성도 올랐다. 이근 대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그만큼 컸다는 방증이다. 사실 이근 대위는 2018년 MBC에서 방영됐던 《두니아-처음 만난 세계》에도 출연한 적이 있었지만 당시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또 《가짜사나이》는 대놓고 MBC 《진짜사나이》를 패러디한 것이었다. 하지만 《가짜사나이》가 더욱 진짜 같다는 대중의 반응을 보면, 《가짜사나이》가 만든 영향력과 그간 웹 콘텐츠의 위상이 얼마나 커졌는가를 실감하게 해 준다. 

《가짜사나이》가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면서 이근 대위가 방송의 러브콜을 받는 상황은 이제 군 소재 예능 프로그램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로까지 옮겨가고 있다. 실제로 tvN에서 10월에 방영될 예정인 《나는 살아있다》는 대한민국 0.1% 특전사 중사 출신 박은하 교관과 6인의 출연자가 재난 상황에 맞서는 ‘본격 생존 전사 양성 프로젝트’다. 배우 김성령과 이시영 그리고 개그우먼 김민경 등이 특전사 707부대 출신이자 스타 유튜버이기도 한 박은하 교관에게 생존훈련을 받는 과정을 담는다고 한다. 

사실 군 소재 예능 프로그램들은 계보가 있을 정도로 스테디셀러 중 하나였다. 1991년에 《유머1번지》의 ‘동작 그만’이나, “저희 엄마가 분명합니다!”라는 군 장병들의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한 《우정의 무대》가 장년층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군 소재 예능 프로그램이었다면,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시즌을 나눠 방영됐던 MBC 《진짜사나이》는 중년층이 추억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밖에도 tvN 《롤러코스터》에서 방영돼 화제를 낳았던 ‘푸른거탑’이나 《레미제라블》을 공군에서 패러디해 큰 인기를 끌었던 ‘레밀리터리블’도 빼놓을 수 없는 군 소재 콘텐츠들이다. 

이처럼 군 소재 예능 프로그램들은 지속적으로 시대에 맞는 옷을 입고 나타나 화제를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가짜사나이》 역시 그 계보라고 볼 수 있지만, 여기서 더 주목되는 건 군 소재 예능이라는 차원보다 웹 콘텐츠의 비약적인 성장이라는 관점이다. 지금껏 콘텐츠들은 지상파에서 케이블 그리고 종편으로 이어지는 순서로 그 위상이 자리매김됐고, 유튜브 같은 웹 콘텐츠는 아예 비주류로 치부됐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가짜사나이》의 성공은 이 위계를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거꾸로 지상파나 케이블 종편들이 이 콘텐츠나 거기 출연한 이들을 섭외해 방송을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가짜사나이》 2기는 1기보다 더 투자해 8000만원에서 1억원에 달하는 제작비가 투입된다고 한다. 사실 이 정도의 제작 규모는 유튜브 콘텐츠로 보면 거의 ‘블록버스터’급이지만 기존 방송에서 보면 아주 소소한 제작 규모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가짜사나이》가 보여준 이 놀라운 가성비에 기존 방송사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가뜩이나 광고 매출이 급감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가짜사나이》 같은 웹 예능의 큰 성공은 기존 방송사들로서는 중요한 틈새와 가능성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특히 1인 크리에이터들이 ‘콜라보’라는 방식으로 이룬 성과라는 점은, 그 콜라보가 방송사와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라는 예상을 하게 만든다. 그만큼 《가짜사나이》의 성공은 콘텐츠의 새로운 밑그림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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