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방역은 기회, 부족한 시간은 위기
정세균 국무총리의 대권 출마설은 이제 더 이상 ‘아니 땐 굴뚝’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출마 가능성에 손사래를 치며 측근 단속에 나서던 임기 초와 달리, 최근 정 총리는 대권 준비로 해석될 만한 과감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정 총리의 당 안팎 측근들 역시 현직 총리니만큼 언급을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향후 그의 대권 도전에 대해선 기정사실로 인정했다. 다만 여전히 심각한 코로나19 확산이나 연말·연초 개각 등을 고려해 총리직 퇴임을 서두르진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경수 경남지사의 2심 실형으로 친문 세력이 대체자에 대해 골몰하는 지금, 대권 주자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나 있던 정 총리에게 시선이 쏠리고 있다. 정 총리의 이니셜을 딴 ‘SK계’ 의원들의 면면과 이들의 동향에도 의미가 실리고 있다. 이낙연-이재명 2강 구도에 밀려 현재 한 자릿수 지지율에 머물러 있지만, 머지않아 정 총리가 대권 구도에 미칠 영향력은 현 지지율 이상일 거란 관측이 나온다.
'통합의 리더십' 면에서 바이든과 비교
이번 미국 대선 이후 국내 여러 정치인이 조 바이든의 당선에 대해 평가했다. 그중 정세균 총리의 한마디가 유독 주목을 받았다. “미국 국민이 바이든을 선택한 시대정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통합과 포용이다.” ‘대통령’ 빼고 다 해 본 관록의 정치인이라는 특징 외에도 정 총리와 바이든은 ‘통합의 리더십’과 ‘안정감’을 강조해 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정 총리가 바이든의 당선 이유를 내세워 자신의 강점을 내심 어필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취재에 따르면, 실제 정 총리 측근들은 최근 바이든 당선인과 정 총리 간 여러 공통점을 비교하며 바이든에 대해 연구·분석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 총리는 ‘미스터 스마일’이라는 오랜 별명처럼 정치권에서 비교적 부드러운 이미지를 갖고 있다. 주로 ‘범친노’ ‘범친문’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도 옅다. 정 총리의 오랜 참모였던 한 관계자는 “어떤 의사 결정에서 보스의 결정을 추종하는 게 계파정치인데, 정 총리는 결정을 강요하지 않는 게 자신의 강한 정치 스타일이다. 특별히 반감 갖는 정치인도 없다. 인맥 폭도 넓다”고 평가했다. 언급되는 대선 주자들 중 민주당 정통성이 가장 강하다는 것도 당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강점이다. 지긋한 당 활동으로 이미 전북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탄탄한 조직과 지지세 또한 갖춰진 것으로 전해진다.
대중적 지지도와 존재감이 약한 것은 자타가 인정하는 대표적 약점이다. 정 총리 자신과 측근들도 이 부분을 가장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국회의장이나 당 대표, 총리 등 이른바 2인자 이미지가 강해 국가원수로서의 그림이 아직 잘 그려지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친문이어도 국민과 전혀 별개로 갈 수 없기 때문에, 정 총리에 대한 지지의 마음이 있더라도 그의 지지율 오름세를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정 총리에게 남은 가장 큰 기회는 단연 코로나19 방역에서의 성과다. 정 총리 측도 이와 관련한 성과를 확실하게 내고 총리직에서 물러나야 지금의 대선 판세를 흔들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특정한 사퇴 타이밍을 잡고 서두르기보다는, 코로나 방역 성과를 강조할 수 있는 시점에 맞춰 직을 내려놓는 게 낫다고 보고 있다.
대선 준비 기간이 넉넉지 못한 것과 이낙연-이재명 양강구도가 굳어지고 있다는 위기를 타개할 방법 역시 총리로서 가시적인 성과를 이뤄 임팩트 있게 대선 레이스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진 백신에 대한 구체적인 소식이 없고, 국내 코로나19 확진자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퇴임 시기로 점쳐지는 내년 봄까지 정 총리의 초조한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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