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은 어쩌다 영국發 변이 바이러스 ‘인큐베이터’ 됐나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1.05.10 07:30
  • 호수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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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도시 울산에 영국 변이 바이러스 감염자 집중돼
주변 영남지역 확산…“4차 대유행 경고등”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5월5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코로나19 4차 유행의 경고등이 좀처럼 꺼지지 않고 있다”며 “울산의 경우 변이 바이러스가 유행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돼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영국발(發) 변이 바이러스 쓰나미가 울산을 덮쳤다. 4월 한 달 동안 울산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가 772명 나왔다. 2020년 한 해 동안 발생한 716명을 넘어섰다. 한 달 동안에 한 해보다 더 많이 나온 셈이다. 5월 들어서도 200명에 육박하는 확진자가 발생했다. 방역 당국은 최근 울산의 이런 추세가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에서 기인한 것으로 지목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기존 바이러스보다 전파 속도가 빠른 영국 변이 바이러스가 울산 지역의 유행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울산에서는 영국 변이 바이러스 감염자가 320명 나왔다. 인구 100만 명당 변이 바이러스 감염자 수는 282.4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서울(9.5명)의 30배 정도다. 두 번째로 변이 감염 비율이 높은 충북(55.0명)과 비교해도 4배 가까이 많다. 김상육 울산시 시민건강국장은 “영국 변이는 무서울 정도의 감염력을 지니고 있어 중증환자 병상 운용에 차질을 빚는 등 의료체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질병관리청이 최근 울산 지역 확진자 80명의 검체를 채취해 조사한 결과, 51명(63.8%)이 영국 변이 바이러스 감염자였다. 확진자 10명 중 6명 이상은 영국 변이에 감염된 셈이다. 영국 변이 바이러스는 기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비해 전파력이 70%, 치명률이 최대 61%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울산 지역은 이미 영국 변이가 우세종이 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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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3일 울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해당학교 운동장에 마련된 선별진료소에서 학생들이 검사를 받고 있다.ⓒ울산시교육청

“울산은 이미 영국 변이가 우세종 된 상황”

영국 변이 바이러스는 2020년 9월 영국에서 처음 발견된 후 유럽을 휩쓸었고, 아프리카·중동·북미 등을 거쳐 아시아에서도 확산 중이다. 영국 변이 바이러스가 울산에서 처음 발견된 건 지난 3월8일. 부산 한 장례식장에 다녀온 환자 한 명이 장례식장에서 변이 ‘지표 환자(처음 발견된 환자)’로부터 감염돼 변이 확진자로 기록됐다. ‘부산 장례식장발 변이 바이러스’는 이후 울산 곳곳에 침투했고, 집단감염자의 89%가 영국 변이 바이러스 감염자로 확인됐다. 

영국 변이 바이러스는 3월부터 울산 전역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감염자들이 골프장·직장·학교·가족모임에서 잇따라 타인과 접촉하면서다. 질병관리청이 최근 펴낸 ‘주간 건강과 질병’에 따르면, 지난 3월 한 달간 주요 변이 바이러스 집단감염 사례 확진자 153명 중 울산은 75명으로 전국 발생의 절반(49%) 가까이를 차지했다. 김 교수는 “울산에서는 영국발 변이가 유행을 주도하고 있다”며 “4차 대유행을 이끄는 원인이 될 것이란 전문가들의 예견이 맞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의 영국 변이 바이러스 검출률은 63.8%로 전국 평균보다 4배 높다. 전파력이 강한 변이 바이러스가 집단감염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이유다. 5월5일 하루 동안에도 울산에서는 영국 변이 신규 확진자가 38명이나 추가로 나왔고, 대부분 가족 간 감염으로 추정됐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지금 추세로 변이 바이러스가 계속 확산되면 큰 유행으로 확산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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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6일 울산시 울주군 웅촌면 한 목욕탕 앞에 설치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시민들이 진단검사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영국 변이 확진자 중 50대 이하가 87.5% 차지

울산은 다른 지역에 비해 해외 유입에 의한 코로나19 전파가 많은 곳도 아니다. 그런데도 유독 울산에서만 영국발 변이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방역 당국은 그 이유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여태익 울산시 감염병관리과장은 “울산의 변이 바이러스 확산 경로가 파악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감염 전문가들은 영국 변이 바이러스가 울산의 ‘우세종’이라고 보고 있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영국 변이 확진자 중 50대 이하가 87.5%를 차지한다. 활동량이 많은 젊은 층이 더 많이 감염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 층은 무증상 감염자가 많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주변을 감염시키는 사례가 여러 역학조사에서 입증되고 있다.  

울산은 평균연령이 40.9세로 젊은 도시다. 그중에서도 조선·자동차업계 근로자들이 모여 사는 북구가 가장 젊다. 북구의 한 초등학교와 기업체·사우나에서 시작된 영국 변이가 순식간에 울산 전역으로 번졌다. 울산에서 유독 영국 변이 확산이 빠른 것은 젊은 도시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울산의 변이 바이러스 확산은 방역망에 구멍이 생긴 탓으로 지적된다. 방역 관리망에서 벗어난 변이 감염자가 울산에서 연쇄 감염을 일으킨 것이다. 그래서 ‘숨은 감염자’가 변이 바이러스 전파 통로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영준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역학조사팀장은 “(울산 변이 확산은) 최근 1~2주 사이 발생한 게 아니라, 3월 중순 이후 지역사회 추적 관리가 누락된 사람들을 통해 추가 전파가 이뤄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역학조사와 방역 관리 실패를 자인한 셈이다.

모든 바이러스는 돌연변이가 생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예외는 아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라빈드라 굽타 교수는 “코로나19에 감염된 암환자에게서 영국 변이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돌연변이 바이러스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영국 변이 바이러스에서 확인된 유전자 변이는 23개였다. 그중 9개는 돌기 부분인 ‘스파이크 단백질’에서 생겼다. 스파이크 단백질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체 세포에 침투할 때 사용하는 바이러스 표면 단백질이다. 이곳에 생긴 변이는 바이러스 감염력을 높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 정부는 변이 바이러스 감염력이 1.7배 높다고 밝혔다. 엄중식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전파력이 센 변이 바이러스가 유행을 주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울산이 영국 변이 바이러스의 인큐베이터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변이 바이러스가 울산을 넘어 영남지역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5월5일 부산에서는 30명이 추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 울산 지역 영국 변이 확진자와 접촉해 감염된 사례도 나왔다. 같은 날 경남 사천에서도 2명이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됐고, 진주·김해·양산에서도 확진자가 다수 발생했다. 경북 경주에서는 한 마을 주민 6명이 집단감염되기도 했다. 정재훈 가천대의대 교수는 “울산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변이 바이러스 확산 조짐이 나타나 ‘클러스터’를 형성해 산발적으로 퍼질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태”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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