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인물-MZ세대] “90년대생이 공정에 더 예민하고 개인주의라는 건 착각”
  • 구민주·이원석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1.12.27 10:00
  • 호수 1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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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K를 생각한다》의 저자 1990년대생 임명묵 작가
 “90년대생들에게 ‘공정’은 곧 ‘예측 가능성’”
“MZ세대론, 복잡한 청년 현실 ‘퉁’ 치려는 편의주의”

시사저널이 선정한 2021 ‘올해의 인물’은 ‘MZ세대’였다. MZ세대는 1980~1994년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95~2000년대 초 사이 태어난 X세대를 통칭한 세대를 의미한다. 지난 한 해 우리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친 MZ세대는 현재 지지율 1·2위를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와 막판 경합을 벌이다 최종 1위로 선정됐다.

분야별 올해의 인물도 역시 MZ세대가 관통했다. 올해의 정치 인물에서는 이준석 대표가 압도적 지지를 받았고, 경제 인물에 선정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역시 50대로 MZ세대는 아니지만 기존 재벌가 총수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젊은 소통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많은 점수를 받았다. IT·의과학 인물의 가상인간 로지(22세 여성), 연예 인물의 BTS, 스포츠 인물의 김연경 또한 MZ세대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스타들이다.

매년 송년호에서 발표되는 시사저널 올해의 인물은 세 번의 절차를 거쳐 최종 선정된다. 먼저 시사저널 편집국 기자들이 지난 한 해 각 분야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인물(또는 사건·현상 등)을 추천한다. 기자들의 추천을 바탕으로 후보군을 만든 후 시사저널 홈페이지를 방문한 독자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투표를 진행한다. 해당 결과를 토대로 시사저널 편집국에서 다시 최종 선정 작업에 돌입한다.

올해 출판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주목한 MZ세대 작가가 있다. 1990년대생의 눈으로 공정을, 양극화를, 586세대를 그리고 오늘날 90년대생들만의 특징을 가감 없이 풀어낸 책 《K를 생각한다》 저자 임명묵씨다. 그는 청년을 향한 기성 사회의 편의주의적 접근 방식을 지적하면서도 청년을 특별한 철학을 가진, 이해받아야 할 대상으로 구태여 포장하지 않는다. 그저 “정치를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하고, “인생은 한강물 아니면 한강뷰”라고 여기며 “공정 등의 가치에 이념보다 감정으로 먼저 반응”하는 세대가 사회 전반에 등장해 있음을 이야기할 뿐이다. 12월20일 임 작가를 만나 세상이 MZ세대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90년대생들이 기성세대가 된 사회는 어떤 모습일지 물었다.

ⓒ시사저널 임준선
ⓒ시사저널 임준선

MZ세대, 특히 90년대생들이 이토록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시대든 20대의 등장엔 관심이 많았다. 386(현재 586)부터 세기말 X세대, 그리고 지금의 MZ세대까지. 그런데 한 10여 년 정도 잠잠하다가 왜 최근 갑자기 관심이 커졌을까. 세계화·정보화와 함께 태어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최초로 성인이 되어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면서, 기존 세대가 위화감을 느끼게 된 것 같다. ‘얘네 다르다’ ‘설명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진 것이다. 더 직접적으로는 이들이 정치적 팬덤을 형성해 과거와 다른 흐름을 보이면서 더 주목받은 면도 있다.”

가끔은 사회가 MZ세대에 과하게 대표성을 부여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얼마 전 2000년대생 아이돌 장원영과 이영지가 나온 유튜브 영상을 하나 봤다. 서로 ‘MZ세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니 ‘MZ가 뭔지도 모르겠다’고 답하더라. MZ세대론이 기성세대로부터 나온 얘기인 건 확실하다. 청년의 복잡한 현실이나 다양한 면모에 대해 이해가 잘 안되니까 ‘MZ들은 달라’라며 퉁 치고 넘어가려는 이들의 ‘지적 편의주의’도 분명 담겨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세대라는 건 명확하게 실체가 있는 집단이다. 세대마다 형성되는 자아나 사회적 관념, 문화적 취향이 있기 때문이다. MZ세대와 관련한 논의들도 말이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들이 점점 구분되면서 나아질 거라고 본다.”

올해 정치권에선 30대 당 대표 ‘이준석 현상’이 널리 분석됐다. 이준석의 정치에 대해 어떻게 보나.

“일단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된 이후를 구분해 보고 싶다. 이 대표 선출 과정은 전통적 정치 문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이 대표의 지지층은 온라인 엔터테인먼트의 문법대로 자신들의 팬덤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다. 이 대표는 이를 투영받아 한두 달 만에 빠르게 세(勢)를 얻어나갔다. 이 대표가 청년 남성들을 공략한 게 아니라, 청년 남성들이 ‘저 사람은 우리 말을 들어줄 것 같고, 우리를 대리해 한 방 먹여줄 것 같다’고 생각해 스타로 만들어낸 것이다. 문제는 그 후 기존의 권력 구조, 기성세대의 알력 등 복잡한 정치 상황과 부딪히면서 어떻게 뉴미디어적 정치를 잘 조화해 나갈지다. 아직 정답이 없는 상황이고 본인도 그 사이에서 헷갈려 하는 것 같다.”

각 대선후보의 ‘MZ세대 접근법’은 어떤 것 같나.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 같다. 저는 정치·경제적 문제만큼 문화·미디어 차원의 문제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는데, 다들 이 문제에 대해 고전적인 시각에 머물러 있다. 즉 문화·미디어의 문제는 정치나 경제의 종속변수에 불과하단 시각이다. 그 때문에 청년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일자리와 주거 문제만 꺼낸다. 청년들도 외교·안보, 환경과 에너지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다양한 문제에 대해 총체적 세계관을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먹고사는 문제에 한정해 접근한다. 기성세대로선 그것이 인류 보편적인 문제이니,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일 것이다. 나머지 첨예한 문제에 대해선 생각이 서로 너무 다르니, 듣고 싶지 않고 그냥 넘기려는 태도도 있을 것이다. 아쉬운 부분이다.”

90년대생을 논할 때 ‘공정’ 문제가 꼬리표처럼 붙는다. 이유가 뭘까.

“90년대생들이 유독 공정에 민감한 건 아니다. 주변 친구들에게 공정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한다. 그냥 평균적인 수준의 도덕성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일 뿐이다. 다만 어떠한 포인트가 생겼을 때 감정적으로 타오르고 그것이 집단적 여론으로 만들어져온 것이다. 평창동계올림픽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문제나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 문제 등이 발생했을 때 ‘내 자원이 침해’됐다거나 ‘공정하지 못한 룰에 분노’했다기보다는 세상은 급변하고 불안이 커지는 상황에서 제도가 해킹되고 예측 가능성이 훼손되는 데 대해 불만이 터진 거라고 본다. 이 현상을 차후에 포장하면서 ‘공정’이란 키워드가 등장한 것이다. 사회에서 내가 이 정도 하면 이 정도 얻어야 하고, 남들이 저 정도 하면 저 정도 받아야 하는 ‘예측 가능성’이 곧 90년대생들에겐 공정이다.”

MZ세대가 말하는 공정이 너무 능력주의에 치우쳐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능력주의가 아니면 뭐가 있나’라는 질문이 생길 수 있다. 사회 시스템에서 최적의 산출물을 낼 수 있도록 자원을 배치하고 공리를 극대화해 사회 구성원에게 다시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 능력주의의 기초적 상상이잖나. 물론 부작용도 있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과거 족벌주의 또는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추천 방식이 과연 옳은 것일까. 능력주의 자체에 대한 비판보다는, 능력주의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능력주의가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좀 더 고민했으면 좋겠다. 한국 사회에서 진짜 문제는 대학이라는 간판으로 능력을 사실상 고정시켜 버리고 그 혜택을 지속해 누리는, 그리고 여기에서 밀리면 쉽게 역전의 기회를 못 얻는 문화가 아닐까.”

MZ세대의 대표적 특성 중 하나로 개인주의가 꼽히는데, 임 작가는 책에서 MZ세대가 개인주의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유튜브에서 새까만 배경에 흰 글씨로 ‘죄송합니다’를 써놓은 사과 영상을 많이 볼 수 있지 않나. 대부분 법적 문제라기보다는, 유튜버의 도덕적 문제에 대중의 판단이 내려진 결과다. MZ세대가 개인주의적이라면 왜 내 문제와 관심 없는 걸 시간을 들여 찾아보고, 잘못했다고 댓글을 달고 키보드 배틀을 벌이겠나. 나는 간섭받기 싫지만 내가 간섭하고 싶을 땐 얼마든 간섭할 수 있다는 것이 오늘날 개인주의로 불리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MZ세대만큼이나 성별 간 갈등이 심한 세대도 없었던 것 같다.

“미디어 공간이 달라진 게 가장 크다. 과거에는 중앙에서 통제되는 언론들이 공론장을 만들어줬고, 모이기 싫어도 서로 그곳에 다 모여 논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이고 싶은 사람끼리만 모인다. 거기서 상대와는 공유되지 못 하는 서사나 신화, 적대감이 발생하고 새로운 집단의식이 생겨난다. 거기서부터 문제가 많이 출발하는 것 같다.”

MZ세대 대척점엔 586세대가 있다. 임 작가는 이들이 ‘주류임에도 비주류 의식에 갇혀 있다’며 이들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그들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는 세대는 무엇을 해야 하나.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사회적 과제는 종료된 것 같다. 제가 1994년생인데 1995년에 대한민국은 이미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1만 달러를 넘었고 문민정부에 들어서 있었다. 당시의 과제와 문제의식을 아직도 얘기하는 것은 전혀 반향이 없을 것이다. 자신의 문제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세대가 겪고 있는 지금의 문제에 집중하고, 이 문제를 만들어낸 현시대가 어떤 시대인가라는 질문들을 다시 던질 필요가 있다. 그래서 제가 강조했던 게 세계화로 인한 산업구조의 이원화, 그에 따른 불평등의 심화, 정보화에 따른 새로운 미디어 환경과 그 속에서의 인간의 심리적 문제들에 대한 몰입이다. 이 과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함께 고민해 봐야 한다.”

90년대생이 기성세대가 된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모든 세대는 야누스적인 면모를 갖고 있다. 90년대생들은 전 세계적으로 K컬처라는 엄청난 성취를 이뤄냈다. 자신들의 좌절과 불만을 창조적 방식으로 발전해 냈다. 이런 에너지가 창조적으로만 발산된다면, 대한민국은 이들을 주역으로 세계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고 서구와 비서구를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90년대생들의 어두운 면이 제대로 관리·통제되지 못한다면,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정치적 극단주의는 심화하고 사회적 혼란과 갈등은 더욱 커져 이들이 한국 사회를 어둡게 하는 데 일조하게 될 거라고 본다.”

지금 586세대가 비판받는 것처럼?

“그 이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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