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위기 맞지만 극복할 수 있는 수준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9.04 10:05
  • 호수 171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당분간 금리 상승과 인플레 이중고 불가피
과거 석유파동이나 금융위기 때와 비교하면 양호

한국은행이 금리를 또 올렸다. 이제 우리나라의 기준금리는 2.5%다. 한은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7%에서 2.6%로 낮추고, 물가상승률은 4.5%에서 5.2%로 수정했다. 당분간 금리 상승과 인플레이션의 이중고는 불가피하다. 무역수지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경상수지 흑자도 줄어들고 있다. 한은은 올해 경상수지 흑자 전망치를 500억 달러에서 370억 달러로 줄였다. 금리가 오르면 시장에 숨어있던 위험요소들이 드러난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중앙은행의 노력은 자칫 경기 침체로 이어진다. 자산 거품이 터질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이 경제위기를 말한다. 우리 경제에는 구조적 취약점이 있다. 에너지와 원자재, 그리고 곡물은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너무 크다. 무역적자가 구조화하면 환율 상승 압력도 추가된다. 유가 급등은 멀리 1970년대 중반 석유파동의 기억을 소환하고, 1300원이 넘는 환율은 외환위기의 고통을 떠올리게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상처도 있다. 사실 석유파동 당시의 경제 상황은 지금과 닮았다. 당시 세계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은 각국이 유동성을 지나치게 늘린 가운데 석유파동이 겹치면서 일어났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막대한 돈이 풀린 와중에,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친 지금과 비슷하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해 과거의 위기 상황과 지금은 차이가 있다. 올해 유가는 두 배까지 올랐지만 한 달 만에 네 배가 뛰었던 석유파동 때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역사적 기준에서 보면 지금의 인플레이션은 그렇게 높은 수준도 아니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에 더해 경제성장률까지 하락하면서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부산 남구 신선대부두 모습ⓒ연합뉴스

경제성장률·무역수지↓ 금리·물가↑

한국은행이 전망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5.2%가 외환위기 때인 199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인 것은 맞다. 하지만 1998년의 물가상승률은 7.5%였다.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아예 비교가 어렵다. 석유파동이 일어난 1979년의 물가상승률은 18%를 기록했고 1980년에는 무려 29%였다. 확실히 지금은 지난 10년간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10년간 겪어보지 못했을 뿐이다. 더 멀리 과거를 돌아보면 얘기가 다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 다우존스 주가지수는 전 고점 대비 절반까지 떨어졌다. 지금은 20% 하락한 정도다. 지난 1년 동안 코스피의 하락 폭도 25%다. 그러나 블랙 먼데이(Black Monday)라는 말이 만들어진 1987년 10월19일 하루의 미국 다우지수 하락 폭은 무려 22.6%였다.

경제성장률을 비교해도 차이가 크다. 한국은행이 전망한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률 2.6%는 1980년의 –1.6%나 98년의 –5.2%와는 비교할 수 없다. 2009년 금융위기 때도 성장률은 0.8%에 불과했다. 세계경제 전체 상황도 마찬가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3.2%로 잡았다. 6.1%를 기록했던 지난해의 절반이지만 1980년 세계경제 성장률은 1.86%였고 2009년에는 –1.7%를 기록했다. 세계적으로 보면 지금의 성장률도 무난한 수준이다. 미국의 기준금리도 과거의 위기 때와 비교하기는 어렵다. 1980년 상반기 미국의 기준금리는 17%를 넘었고, 1980년 말과 1981년 초에는 19%까지 뛰었다. 지금은 연준이 많이 높인다고 해도 2023년 말까지 5%를 넘기 힘들다. 우리나라의 기준금리가 2.5% 이하로 떨어진 것도 2013년 5월부터일 뿐이다. 2008년 금융위기 때는 5.25% 수준까지 뛰었다.

국내 기업 환경도 과거의 위기 때와는 다르다. 최근의 신용시장 상황은 금융위기 때와는 달리 안정적이다. 기업 부도율이 10%를 넘었던 외환위기 때를 제외하고 보더라도 2008년의 기업 부도율은 3.3%로 200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부도율은 제로 수준으로 별다른 의미가 없을 만큼 낮다. 금융부문의 부실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당장 건전성이 의심스러운 은행도 없다. 실업률도 절반 이하 수준이다. 민간소비는 예상 밖으로 좋다. 한국은행은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이 4.0%로 지난해의 3.7%보다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소득 여건이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양극화 현상과 정부 재정지출 확대의 영향이 크겠지만 통계청 2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83만1000원으로 1년 전보다 12.7%나 증가했다. 환율이 급등한다지만 달러 강세는 세계적인 현상일 뿐이다. 4386억 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액은 사상 최대 수준으로 투자처를 고민해야 할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경제위기는 경기변동 측면에서 이해하자면 생산이 줄어들고 기업이나 은행의 파산이 이어지면서 실업자가 늘어나 경제적 어려움이 극심한 상황을 말한다. 지금의 한국 경제를 과거의 경제위기와 같은 상황이라고 할 수는 없다. 세계적으로도 그렇다. 14년 전과 같은 금융 시스템의 문제도 없고 최근의 물가 상승 추세가 과거와 같은 급격한 긴축과 그에 따른 반복적 경기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최악의 상황 염두에 두고 대비해야

물론 과거보다 오히려 나빠진 면도 있기는 하다. 국제 경제환경은 과거보다 못하다. 2008년에는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의 높은 성장세로 세계경제가 빨리 회복할 수 있었다. 지금은 기댈 곳이 없다. 오랫동안 우리 경제의 디딤돌 역할을 해온 대중무역은 5월부터 적자다. IMF는 제로 코로나 정책과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중국의 올해 성장률이 3.3%까지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30년 만에 가장 나쁜 성장률이다. 국제적인 정책 공조 여건도 예전보다 못하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세계화 자체가 발목이 잡혀 있다. 세계경제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요인도 부담스럽다. 글로벌 공급망의 변화는 물론이고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대한 요구도 비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 경제에 잠재해 있는 위기 요인으로는 역시 너무 많이 늘어난 부채가 있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1800조원을 넘어 GDP 대비 106%로 증가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감내할 수 있는 가계부채 수준을 보통 GDP 대비 85% 수준으로 본다. 부채는 항상 경제위기의 원인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도 과도한 부채가 가져온 재난이었다. 그래도 당시에는 재정에 여유가 있었지만, 지금은 여건이 다르다. 아픈 경험이 있는 만큼 걱정부터 드는 것은 자연스럽다.

사실 경기 상황은 각자가 위치한 입장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정상이다. 경제지표와 관계없이 서민과 중소기업이 느끼는 위기감은 현실이다. 그러나 지금의 위기감은 장기 호황과 저물가로 오랫동안 제대로 된 경기순환을 겪어보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 기준금리 인상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내년에도 물가가 3% 이내로 떨어지기 전까지는 긴축이 유지될 것이다. 인플레이션과 경기 둔화는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대비하는 것은 필요하다. 불확실성이 있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지금을 1980년이나 1997년 혹은 2008년과 비교할 수는 없다. 지금이 위기라면 이 위기는 극복 가능한 위기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