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한류 열풍 합류한 K서바이벌의 힘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2.25 12:05
  • 호수 174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음악과 연애 거쳐 이제 피지컬까지…K예능 중 돋보이는 K서바이벌의 강점 주목

K예능은 K콘텐츠 중 상대적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기 쉽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중 ‘서바이벌’을 키워드로 한 K예능들이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음악, 연애 그리고 최근 시도된 피지컬이 그것이다. 

최근 예능 중 단연 최고의 화제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피지컬: 100》이다. 강력한 피지컬을 가진 100명의 출연자가 갖가지 대결을 통해 최고의 피지컬을 뽑는 서바이벌 예능이다. 몸과 몸이 부딪쳐 승패를 가르는 이 예능은 그다지 언어의 장벽이 없는 ‘넌버벌’인 데다, 미션들 또한 척 보면 알 수 있는 직관적인 것들이라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반응이 폭발했다. 전 세계 넷플릭스 TV쇼 부문 1위에 오르기도 했다(플릭스 패트롤). 

넷플릭스 《피지컬: 100》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피지컬: 100》 ⓒ넷플릭스 제공

《피지컬: 100》, 단순한 퀘스트에서 빚어낸 반전 스토리 

《피지컬: 100》은 일단 출연자들의 특화된 영역들만 봐도 이들의 승부에 대한 기대감이 생겨난다. 격투기 추성훈, 여자복싱 최현미, 레슬링 손희동·장은실, 씨름 손희찬, 럭비 장성민, 스켈레톤 윤성빈, 체조 양학선 등 각종 스포츠 종목에서 레전드로 불리는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여기에 김강민, 송아름, 이용승, 설기관 같은 유명 보디빌더들과 강력한 체력을 가진 크로스핏 선수들, 에어전트H나 짱재 등 군인 출신으로 몸 쓰는 데 특화된 유튜버들이 자리했다. 서로 다른 분야에 있지만 저마다 피지컬 하나는 좋다고 정평이 나 있는 이들이다. 이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미리 그들의 몸을 본떠 만든 토르소 옆에 세워놓는 것만으로도 장관이 펼쳐진다. 운동에 진심인 이들은 물론이고, 코로나19로 인해 몸 관리에 관심이 커진 일반 대중도 그 ‘아름다운 몸’에 대한 관심은 폭발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것은 시작일 뿐이고, 이제 이렇게 다른 분야에서 다른 ‘능력치’를 가진 몸들이 대결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난다. 맛보기로 보여준 구조물 매달리기에서 누구나 1등을 할 것으로 여겨졌던 양학선 같은 체조 금메달리스트가 끝내 UDT 교관 출신 김경백에게 1위 자리를 내준 장면은 이 대결이 예측 불가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설명이 필요 없는 몸으로 부딪치는 넌버벌 서바이벌인 데다, 척 보면 무슨 대결인지 알 수 있는 직관적인 퀘스트, 그렇지만 그 단순한 퀘스트에서 나오는 반전 스토리는 《피지컬: 100》이 여타 피지컬 서바이벌과 달리 글로벌 성공을 거둔 이유 중 하나다. 

여기에 고대 그리스 올림픽이나 《스파르타쿠스》의 현실판 같은 느낌을 부여한 세트나 퀘스트 연출은 프로그램에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박진감을 만들었다. 대표적으로 2톤 무게의 배를 끄는 광경은 고대의 노동을 재현하는 것 같았고, ‘아틀라스의 형벌’이나 ‘시지프스의 형벌’ 같은 이름으로 고대 신화에서 착상해 만들어진 퀘스트는 그 신화를 재현하는 듯한 느낌을 줬다. ‘피지컬’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이제 K서바이벌의 성공 아이템으로 자리하게 된 건 이처럼 글로벌 시장에 어울리는 치밀한 기획과 더불어 차별화된 완성도로 승부한 것이 주효했다. 

K콘텐츠가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K예능은 힘이 약한 분야로 일컬어진다. 그건 웃음은 다른 분야와 달리 언어적, 문화적, 정서적 장벽이 높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주목받는 분야가 ‘서바이벌’이다. 

Mnet 《보이즈 플래닛》 ⓒMnet 제공
Mnet 《보이즈 플래닛》 ⓒMnet 제공

최종 우승자를 찾아내는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은 K팝의 글로벌 저변이 확대되면서 일찌감치 해외 반응이 더 큰 K서바이벌로 자리했다. 이제 아이돌 그룹을 만들어가는 한국의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은 아예 출연자 구성 단계부터 글로벌을 지향한다. Mnet에서 방시혁과 손잡고 시도했던 《I-LAND》 같은 아이돌 오디션이나 그 후에 만들어진 《걸스플래닛999》, 또 현재 방영되고 있는 《보이즈 플래닛》 같은 아이돌 오디션들은 모두 한·중·일 출연자들이 경합을 벌이고, 그 결과로서 만들어지는 아이돌 그룹도 다국적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빠질 수 없는 시청자 투표 역시 글로벌하게 진행된다. 오디션 과정이 지나고 나면 그 팬층이 국내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아이돌 그룹을 만드는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은 시작부터 글로벌을 기반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 프로그램이 시청률이 0%대에 머무를 만큼 낮지만 애초에 그것이 목적은 아니다. 글로벌 활동을 겨냥하는 실제 아이돌 그룹과 그 팬덤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음악 오디션만큼 해외에서 반응을 얻은 K서바이벌은 ‘연애 서바이벌’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으로 시즌2까지 제작된 《솔로지옥》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적인 멜로 코드가 들어가 과몰입하게 만드는 관계의 묘미가 밑바탕을 이루는 데다, 서구의 《투 핫》처럼 섹스 어필하는 코드를 더함으로써 동서양의 균형 잡힌 관심을 이끌어낸 것이 성공 요인이다. 여기에 전통적인 과몰입 유형의 연애 서바이벌인 티빙 오리지널 《환승연애》 같은 프로그램도 아시아에서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어 글로벌 성공 가능성이 충분한 K서바이벌로 꼽힌다. 

넷플릭스 《솔로지옥2》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솔로지옥2》 ⓒ넷플릭스 제공

성공한 K서바이벌에 담긴 공통 요소들 

음악과 연애에 이어 등장한 《피지컬: 100》까지, 이들 성공한 K서바이벌에서는 공통적인 요소들이 찾아진다. 그 첫 번째는 언어나 문화적 장벽이 있어도 이를 쉽게 뛰어넘을 수 있는 보편적인 요소들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음악은 가사를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보편적으로 통하는 정서가 있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하나의 장르처럼 인식될 정도로 K팝의 저변이 넓어지면서 그 보편적 정서 역시 더 폭넓게 받아들여지게 됐다. 다양한 장르를 한 곡에 담아 다채로운 재미를 선사하는 음악에, 이를 비주얼적으로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이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K팝의 특징으로 해외에서도 인식되고 있어, 그 과정을 서바이벌 오디션으로 담아내는 프로그램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남녀 간에 벌어지는 시그널은 대화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거기에는 표정이나 손짓 같은 넌버벌적 요소들이 들어있기 마련이고 연애 리얼리티는 이런 지점들을 포착해 내는 것으로 과몰입을 유발한다. 이것은 몸을 소재로 하는 피지컬 서바이벌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야기다. 스포츠가 그러하듯이 몸과 몸이 부딪치는 것만으로 거기에는 누구나 읽어낼 수 있는 몸의 서사가 담기기 마련이다. 

여기서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K서바이벌이 최근 강조하기 시작한 승패가 아닌 과정에 집중하는 관전 포인트다. 한때는 우리도 치열한 경쟁만을 전면에 내세운 서바이벌 프로그램들로 채워지곤 했지만, 최근 들어 이런 경향은 바뀌어가고 있다. 경쟁을 하더라도 승패가 끝나고 난 후에는 선선히 승복하고 상대를 예우하는 모습이 주종을 이루게 됐다. 이렇게 된 건 지나친 경쟁이 만들어내는 피로감에 대해 한국의 시청자들이 불편함을 호소하기 시작하면서다. 

이른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정서가 대중에게 호응을 얻기 시작하면서, 승패가 갈리는 서바이벌이지만 과정이 좋았던 이들 또한 주목받는 상황이 생겨났다. 어쨌든 이러한 과정에 집중하는 K서바이벌의 특징은 해외 언론에서도 주목하는 것이다. 승패에만 집착하는 서구의 서바이벌과 분명한 차별점을 보이는 이 관전 포인트는 이제 글로벌 대중이 K서바이벌에 차별적인 매력을 느끼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