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석도 김태호도…봇물 터진 여행 예능 통할까
  • 정덕현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3.13 12:05
  • 호수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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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데믹 맞아 여행 관련 프로그램 쏟아져 나와
분명한 목적 보여주고 진정성 담는 것이 관건

코로나19 시국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하면서 해외 여행길이 하나둘 열리고 있다. 한동안 잠잠했던 여행 예능도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간 변화된 여행 트렌드 속에서 여행 예능은 어떤 변화를 보여주고 있고, 그 부활의 관건은 어디에 있을까. 

최근 스타 예능 PD의 양대산맥이라 할 수 있는 나영석 PD와 김태호 PD가 각각 tvN 《서진이네》와 ENA 《지구마불 세계여행》을 내놨다. 공교롭게도 둘 다 여행 예능이다. 나영석 PD야 본래 여행이 자신의 주력 분야였지만, MBC를 퇴사하고 제작사 테오(TEO)를 설립한 김태호 PD까지 여행 예능을 연달아 내놓고 있다. 이효리가 해외 입양 간 반려견들을 찾아가는 《캐나다 체크인》도 큰 틀 안에서 보면 여행 예능이라고 볼 수 있다. 이어 내놓은 《지구마불 세계여행》은 본격적인 여행 예능이다. 여러모로 여행이라는 아이템이 예능에는 여전히 뜨거운 소재인 데다, 그간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에 나가지 못해 갈증을 느꼈던 대중에게 여행 예능은 훨씬 더 어필할 수 있는 영역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영석 PD의 《서진이네》는 과거 윤여정을 위시해 만들었던 《윤식당》의 스핀오프다. 《파친코》 시즌2 촬영 때문에 참여하지 못하는 윤여정 대신 이서진이 대표가 돼 멕시코 바칼라르 마을에 분식점을 내고 현지인과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식을 파는 이야기다. 이서진이 대표가 됨으로써 달라진 면이 있지만, 사실상 《윤식당》의 관전 포인트에서 크게 달라진 건 없다. 관광지가 주는 이국적인 감성에 쿡방과 먹방이 더해지고, 무엇보다 한식을 접하는 외국인들의 반응을 보는 맛이 쏠쏠하다. 《윤식당》과 거의 같은 익숙한 맛이지만, 그간 해외로 나가는 것 자체가 막혀 갈증도 커졌던 그 맛의 재현만으로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첫 회 8.7%, 2회 9.3% 시청률(닐슨코리아)로 순항 중이다. 

tvN 《서진이네》의 한 장면 ⓒtvN 제공

크리에이터들 등장하는 여행 예능도 나와 

《서진이네》가 여행 예능의 익숙한 맛을 가져와 시간을 코로나19 이전으로 되돌려 놓는 경험을 하게 해준다면, 김태호 PD의 《지구마불 세계여행》은 그간 달라진 여행 예능의 트렌드가 더해졌다. 그건 다름 아닌 여행 크리에이터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경향으로, 무계획으로 떠나 현지에서 부딪치는 이야기를 리얼하게 담아내는 여행 예능이다. 이를 위해 여행 크리에이터 3대장이라 불리는 빠니보틀, 곽튜브 그리고 원지가 여행자로 참여했다. 블루마블 판에 주사위를 굴려 걸리는 나라를 여행하고, 그렇게 올린 영상의 조회 수와 좋아요 수로 순위를 가려 최종 우승자에게는 ‘우주여행’을 시켜준다는 콘셉트다. 최근 빠니보틀이나 곽튜브 같은 여행 크리에이터들의 방송은 그간 연예인들이 참여했던 여행기와는 사뭇 다른 리얼리티로 대중을 사로잡고 있다. 무언가 틀에 박힌 듯한 연예인 참여 여행기와 달리, 이들의 여행은 틀 없이 ‘찐’으로 보여주는 날것의 여행이 특징이다. 

물론 지상파부터 케이블까지 여전히 여행 예능의 주역들은 연예인이 대부분이다. KBS 《걸어서 환장 속으로》는 스타 가족들의 ‘환장’ 혹은 ‘환상’의 해외 여행기를 다뤘다. 여행에서 부딪치는 가족 간 갈등과 그럼에도 가족이기에 화해해 가는 과정들을 담았다. tvN 《텐트 밖은 유럽》은 작년 유해진이 이끄는 8박9일간의 스위스·이탈리아 캠핑여행으로 호평받은 후 시즌2 스페인편을 방영 중이다. 조진웅, 최원영, 박명훈, 권율이 새 출연자로 캠핑여행을 떠났다. 티빙 오리지널 예능 《두발로 티켓팅》 역시 하정우, 주지훈, 최민호, 여진구가 뉴질랜드에서 차박을 하며 청춘들에게 티켓을 확보하는 콘셉트의 생고생(?) 여행 예능이었다. 마찬가지로 나영석 PD의 《서진이네》 역시 이서진을 중심으로 정유미, 박서준, 최우식, 뷔가 함께 함으로써 K콘텐츠 스타들이 총출동한 예능이 됐다. 

이처럼 연예인 중심의 여행 예능이 여전히 대세를 이루지만, 《지구마블 세계여행》처럼 크리에이터들이 등장하거나 그런 콘셉트의 여행 예능이 최근 조금씩 주목받고 있다. SNS를 통해 예능을 더 많이 접하게 된 대중이 만들어내는 이 새로운 취향의 여행 예능은 연예인이 보여주는 화려함을 빼버렸지만 예상할 수 없는 서사와 실제 여행의 꿀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MBC가 시도한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같은 여행 예능은 그런 점에서 보면 이러한 새로운 크리에이터 여행 예능과 연예인 여행 예능의 접목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기안84와 이시언이 빠니보틀과 함께 하는 남미 여행기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안84는 아마존 정글에 직접 들어가는 등 크리에이터들만큼의 야생에 가까운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ENA 《지구마불 세계여행》 포스터 ⓒENA 제공

다양해진 여행 트렌드, 방송도 다양해져야 

대중은 연예인 여행 예능보다 크리에이터 여행 예능을 더 선호하는 경향으로 바뀌고 있는데, 그럼에도 두 예능이 가진 장단점은 분명하다. 크리에이터 여행 예능은 극사실주의적인 묘미가 있지만, 그래서인지 그걸 보고 여행을 하고픈 욕구가 잘 생기지는 않는 점이 있는 반면, 연예인 여행 예능은 잘 연출된 영상을 통해 전해짐으로써 여행의 로망을 자극하는 점이 있다. 방송에 있어서는 준프로지만 아마추어에 가까운 크리에이터들과 방송 전문가인 PD들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이러한 장단점은, 《지구마블 세계여행》을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프로그램은 ENA에서 방송을 타기 전에 빠니보틀, 곽튜브, 원지의 여행기가 각각 유튜브 버전으로 편집, 선공개되는데 확실히 유튜브 버전보다 방송 버전이 갖가지 장치들을 통해 재미를 더한 면이 있다. 이것도 결국 취향의 차이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앞으로 연예인과 크리에이터로 대비되는 여행 예능의 두 경향에 대한 대중의 호불호는 갈릴 것으로 보인다. 

KBS 《1박2일》의 한 장면 ⓒKBS 제공

여행 예능은 여행 트렌드와 함께 변화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KBS 《1박2일》이 한창 주가를 올릴 때 생겨난 여행 트렌드가 ‘아웃도어’였고 그래서 텐트 수요가 급증하는 경향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다 나영석 PD가 tvN으로 이적해 만든 《꽃보다…》 시리즈를 통해 다양한 여행 트렌드가 생겨났다. 해외 배낭여행이 인기를 끌었고, 젊은 세대만이 아니라 중장년 세대들까지 그 대열에 합류했다. 그저 지나치는 여행이 아니라 정주형 여행이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이를 담은 《윤식당》이나 《여름방학》 같은 방송도 등장했다. 물론 코로나19 시국에 여행 예능은 국내로 한정됐지만 새로운 여행의 대안들을 만들어냈다. tvN 《바퀴달린 집》 같은 프로그램이 캠핑카를 이용해 안전하면서도 프라이빗한 여행 트렌드를 이끌었고, 다양한 차박 소재 여행 예능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코로나19의 끄트머리에서 여행 예능들이 재개되고 있다. 현재의 여행 예능은 하나의 트렌드로 묶이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해졌다. 그것은 여행 자체가 취향별로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다양해진 여행 취향을 갖게 된 대중 앞에서 여행 예능의 관건은 분명한 목적을 보여주고, 그 목적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주는 일이 됐다. 만약 해외에서 한식당을 연다면, 한식을 알리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한 문화 교류나 소통이라는 진정성을 담보해야 하고, 만일 게임이 더해진 세계여행을 날것으로 보여주겠다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예측불가가 바로 여행의 진짜 맛이라는 그 진정성을 담아야 한다. 누구나 다 즐길 수 있는 보편적인 재미의 시대는 조금씩 지나가고 있다. 따라서 그보다는 확실한 취향을 제대로 보여주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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