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손흥민·BTS 동참한 고향사랑기부제, 왜 ‘관치기부’ 소리 들을까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3.03.12 10:05
  • 호수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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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구군 “행안부 제지로 민간 기부 플랫폼 운영 중단”
“과당경쟁 막아야”…통합 플랫폼 고수하는 행안부에 불만 고조

지역경제 활성화와 인구 소멸 해소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고향사랑기부제가 때아닌 관치(官治) 논란에 휩싸였다. 고향사랑기부제는 개개인이 자신의 주소지를 제외하고 고향이나 원하는 지방자치단체에 연간 500만원 이내에서 기부하면 세액공제와 지역 답례품 수령 등 혜택을 받는 제도다. 1월1일 시행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 축구스타 손흥민, 방탄소년단(BTS) 멤버 제이홉 등 유명 인사가 잇따라 참여하고 일부 지자체의 기부금 모금액이 빠르게 증가하는 등 화제몰이 중이다. 그러나 동시에 ‘중앙정부 개입이 너무 과도해 지방정부가 맥을 못 춘다’는 목소리도 점점 높아가는 모습이다. 지방정부 강화를 위한 제도가 오히려 지방정부를 억누르고 있다는 것이다. 

강원도 양구군청 청사 ⓒ연합뉴스
강원도 양구군청 청사 ⓒ연합뉴스

기부금 모금 방식 놓고 양구군-행안부 충돌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강원도 양구군청은 최근 고향사랑기부제 추진 방식을 두고 행정안전부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인구 2만1000여 명에 불과한 지자체와 전국 모든 지자체를 아우르는 ‘공룡 부처’ 간 갈등에 정·관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행안부가 기부금 모금 플랫폼 구축과 운영을 독점하는 현행 시스템으론 개별 지자체가 고향사랑기부제를 제대로 추진할 수 없다는 게 양구군청의 주장이다. 행안부는 행안부대로 “우리도 고향사랑기부제가 성공해 지자체에 큰 도움이 되길 원한다. 다만 지자체 간 과당경쟁을 막고 공정한 기부 문화를 조성하려면 중앙정부가 만든 통합 플랫폼을 이용토록 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서로 각자의 방식이 지방을 살리기 위한 길이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양구군청에서 고향사랑기부제와 인구 정책 업무를 담당하는 조인선 자치행정과 팀장은 시사저널과의 전화통화에서 “얼마 전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민간 플랫폼과 연계해 고향사랑기부제 모금을 활발히 진행하다 행안부가 막아서 돌연 중단하게 됐다”며 “소규모 지자체의 한계를 뚫고자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모금 방식을 고안했고 실제로 성과를 내는 중이었는데, 행안부에서 법(고향사랑 기부금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내세워 민간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으면(정부 플랫폼을 이용하면) 좋겠다고 해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조 팀장은 “제도 활성화와 기부 생태계 조성을 위해 민간 플랫폼 운영이 절실하다는 생각은 변함없다”면서 “행안부가 워낙 완고해 쉽지 않겠으나 계속할 수 있는 자구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양구군청은 직접 행안부에 제안하거나 국회와 접촉해 법·제도 개선을 시도하는 등 기존 기부금 모금 시스템을 복원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서흥원 양구군수를 중심으로 한 군청 공무원, 나아가 군민 전체가 이번 사안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타 지자체에서 지방 재정정책을 총괄하는 행안부와 부딪치는 게 부담스러워 공개적으로 의견을 드러내진 않고 있지만, 양구군청의 행보에 공감하고 지지를 표명하는 곳도 상당수라고 양구군청은 전했다. 민관의 적극적인 협업을 통해 고향사랑기부제가 상시적인 지역 이슈 발굴과 스토리텔링으로 연결되면 기부 활성화는 물론 지역 소멸 해소에도 큰 보탬이 될 거라고 이들은 믿는다. 

앞서 양구군청은 고향사랑기부제 모금 방식으로 기부자가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젝트를 지정해 기부하는 방식인 지정기부를 택했다. 지역에 애착을 가진 기부자를 적극적으로 모집하는 방식인데, 행안부가 마련한 통합 플랫폼 ‘고향사랑e음’을 통해선 이 지정기부를 할 수 없다. 양구군청은 ‘위기브(wegive)’란 민간 플랫폼을 돌파구 삼아 1월3일부터 지정기부를 받았다. ‘꿀벌 생태계 복원’ ‘못난이 농산물 상품·브랜드 개발’ 등 프로젝트에 1000만원 넘는 기부금이 며칠 만에 몰리며 ‘대박’을 예고했다. 양구군청엔 비결을 묻는 지자체들의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 입소문은 행안부에까지 미쳤다. 아이러니하게도 성공 가도를 달리는 양구군청에 대한 행안부의 대응은 독려가 아닌 중단 권고였다. 1월6일 행안부의 연락이 오자마자 양구군청의 지정기부 프로젝트는 올스톱됐다. 지금은 ‘고향사랑e음’을 통한 일반기부만 가능하다. 

정부 플랫폼으론 지정기부 불가능 

고향사랑 기부금에 관한 법률 제15조는 행안부가 기부금 모금과 관리·운용 등에 관해 지자체를 지도·감독하고 시정 권고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행안부는 기부금 접수 방법과 절차를 안내한 법 시행령 제4조를 시정 권고의 근거로 삼았다. 각 지자체가 기부하려는 사람에게 해당 지역 주민인지, 본인인지, 연간 기부금 총액이 500만원을 초과하는지, 답례품을 받을지 등을 확인하게 한 조항이다. 행안부에서 고향사랑기부제 업무를 담당하는 성인재 균형발전제도과 사무관은 “기부 희망자의 주민등록상 거주지, 연간 기부금 상한액(500만원) 초과 여부를 확인하려면 공공 시스템을 거쳐야 한다. 세액공제 절차에서도 마찬가지”라며 “개별 민간 플랫폼은 공공 시스템과 연계되지 않아 이러한 확인 자체가 불가능하다. 우리(행안부)가 민간 플랫폼을 인위적으로 막았다기보다 제도 자체가 그런(민간 플랫폼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행안부는 시정 권고를 받았다는 양구군의 주장도 부인했다. 고향사랑기부제를 포함한 정부 지역균형발전 업무를 총괄하는 이형석 행안부 균형발전제도과장은 “(1월6일 당시) 양구군청에 전화해 ‘법적 근거 없이 민간 플랫폼을 운영하는 듯하니 확인해 보라’는 정도로 의견을 전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후 양구군청이 법을 검토하고 알아서 시정 조치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과장은 “법적인 문제를 차치하고 시스템의 편의성 측면에서도 공공 플랫폼이 민간 플랫폼보다 앞서는 게 사실”이라며 “지정기부가 불가능한 것 등 미비한 부분도 향후 개선할 계획이다. 아직 시행 초기니만큼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단계를 잘 밟아가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위 사진)양구군청과 연계했던 민간 플랫폼 ‘위기브’, (아래사진)행안부가 만든 통합 플랫폼 ‘고향사랑e음’
양구군청과 연계했던 민간 플랫폼 ‘위기브’
(위 사진)양구군청과 연계했던 민간 플랫폼 ‘위기브’, (아래사진)행안부가 만든 통합 플랫폼 ‘고향사랑e음’
행안부가 만든 통합 플랫폼 ‘고향사랑e음’

“공정한 룰 필요” vs “파이부터 키워야” 

행안부가 가장 우려하는 부작용은 지자체 간 경쟁이 과열되는 것이다. 이형석 과장은 “지자체들이 제각각 민간 플랫폼을 앞세워 고향사랑기부제를 추진할 경우 과당경쟁, 기부 강요 등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기부금을 많이 모으는 게 고향사랑기부제의 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 (정부 통합 플랫폼에서) 공정한 게임의 룰을 두고 기부금을 모금하는 가운데 매력적인 기부 답례품과 적절한 기금 사업도 개발함으로써 지자체와 지역주민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양구군청 측은 행안부야말로 고향사랑기부제 관련 논의가 기부금 모금에만 머무르게 하는 장본인이라고 지적한다. 조인선 팀장은 “행안부는 지자체들을 열심히 경쟁하게 만들어 갓 시작된 고향사랑기부제의 파이를 키워갈 생각을 하긴커녕 찬물을 끼얹고 있다”며 “기부금 접수 과정에서의 확인 절차 역시 시행령 개정이나 적극행정(정부가 공익 사안에 대해 창의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행위)으로 충분히 풀릴 수 있는 문제인데, 의지가 없으니 민간 플랫폼 진입이 굳게 가로막혀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활발한 민관 협업과 자유로운 경쟁을 장려해 전체적인 파이를 키우는 게 고향사랑기부제 성공의 첫 단추다. 겨우 첫 단추를 끼우는데 과열경쟁 우려를 왜 꺼내느냐”며 “애초 지자체들, 특히 지역 소멸 위기에 처한 곳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돈(기부금)이 아니다. 외부 사람들로 구성된 다양한 산업 생태계가 우리 지역에 조성되고, 더 나아가 관계인구(특정 지역의 팬, 투자자, 상품 구매자, 아이디어 제공자 등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으며 꾸준히 지역 문제에 참여하는 외부 사람)와 정주인구 증가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국의 수많은 지자체와 협업해온 한 사회적 기업 관계자는 “외부에 대대적으로 고향사랑기부제 모금 성과를 알리는 지자체가 일부 있으나, 기부금이 좀처럼 들어오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곳도 많다”며 “현재로서는 제도 개선의 여지가 적지만, 시간이 흐르며 구체적인 성과 지표가 나오면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 중앙정부 역할 ‘혁명적으로’ 줄이겠다는 尹 

양구군의 좌절, 지방 분권 정책에 역행 

‘중앙은 작은 정부로, 지방은 큰 정부로.’ 윤석열 정부 지방 분권 정책의 핵심 키워드다. 주요 국정과제인 지방 시대의 실현을 위해 중앙정부 역할을 줄이고, 반대로 지방자치단체 역할은 대폭 키우겠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60일 만인 지난해 7월8일 민선 8기 시·도지사와의 상견례 자리에서부터 “내치 권한을 지방으로 대폭 이양해야 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권한 재조정을 통해 지방정부가 비교 우위에 있는 산업을 스스로 육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힌 후 꾸준히 지자체 역할 강화를 주창해 왔다. 특히 지방 시대 추진 과정에서의 민간 역할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2월10일 중앙지방협력회의에 참석해선 지자체 관련 규제 완화를 요청하는 시·도지사들에게 “지방정부의 중요성에 대해 제가 여러분보다 더 혁명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고까지 말했다. 그는 “중앙정부는 외교·안보·통상·산업 기본정책 등 꼭 필요한 부분 위주로 하고 나머지는 지방정부가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며 “각 지역의 일은 지역에서 책임을 갖고 스스로 해야 한다는 문화와 인식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고향사랑기부제 모금 방식을 놓고 최근 벌어지는 행안부와 양구군의 충돌은 윤 대통령이 그동안 강조해온 정책과도 겉돌며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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