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왕’, 전세금으로 강원 개발사업 벌였다…“최문순의 대장동”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3.03.17 16:05
  • 호수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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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지구 개발 맡은 남헌기 동해이씨티 회장, 미추홀구 전세금 가로채 구속 기소
개발사업에 전세금 유입된 정황 발견…“대장동 화천대유와 망상동 동해이씨티 판박이”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인천 미추홀구 전세 사기의 여파가 지자체의 ‘매머드급’ 개발사업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사기의 주범으로 구속 기소된 남헌기씨(61)가 과거 동해 망상지구 개발사업자로 선정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개발 재원을 둘러싸고 의문이 짙어지는 가운데, 피해를 본 전셋집과 남씨의 개발사 등이 인적·물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는 근거가 발견됐다.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전세보증금으로 사세를 부풀렸다는 주장도 나온다. 남씨에게 개발사업을 맡긴 강원도와 최문순 전 지사의 책임론이 불거지는 배경이다.

남씨는 미추홀구 전세 사기에서 일명 ‘건축왕’으로 불린 핵심 배후다. 그는 2009년부터 공인중개사 등의 명의를 빌려 토지를 사들였다. 이후 자신이 운영하는 건설사 ‘상진종합건설’과 그 자회사를 통해 소규모 아파트와 빌라 등을 지었다. 남씨는 건설업 경험을 토대로 동해 망상지구 개발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2017년 8월 특수목적법인(SPC) ‘동해이씨티국제복합관광도시개발 유한회사(동해이씨티)’를 설립했다. 개발사업을 주관하는 강원도 산하 동해안권경제자유구역청(동자청)은 2018년 11월 동해이씨티를 망상1지구 개발사업자로 최종 선정했다. 동자청은 망상지구 전체에 사업비 8269억원을 들여 국제 복합 관광도시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3월6일 인천시 미추홀구 주안역 광장에서 전세 사기 피해자 사망 추모식이 열린 가운데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회 관계자가 피켓을 들고 서있다. ⓒ뉴스1

인천 ‘건축왕', 강원 8269억 규모 개발권 따내

동해이씨티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현재 임원진은 대표 남씨를 비롯해 이사 2명과 감사 1명 등 4명으로 구성돼 있다. 시사저널이 미추홀구 전세 사기 피해 세대 현황과 비교해 보니, 남씨를 제외한 3명은 모두 임대인이나 공인중개사로 활동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 주택 중 이들 3명이 보유한 세대만 총 90세대에 달했다. 해당 세대들은 대부분 채무 불이행으로 경매에 나왔다. 또 동해이씨티의 김아무개 감사는 남씨의 상진종합건설과 그 자회사 2곳에도 각각 임원진에 이름을 올렸다.

남씨 일당은 임차인들로부터 받은 전세보증금을 사업 비용으로 쓴 것으로 밝혀졌다. 3월13일 남씨와 공범 등 6명을 기소한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전세보증금을 대출 이자와 직원 급여 등으로 지출했다. 또 남은 전세보증금으로 토지를 매입한 후 이를 담보로 돈을 빌려 다시 주택을 지었다. 건축 비용에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조달한 자금도 투입됐다. 그리고 또다시 주택에 세입자를 들여 전세보증금을 끌어모았다. 남씨 일당이 이런 작업을 반복하면서 보유한 주택은 2700여 채에 달했다. 검찰은 이 가운데 161채의 전세보증금 125억원을 남씨 등이 가로챘다고 보고 있다.

남씨가 전세보증금을 쓴 곳이 미추홀구 주택사업에만 한정돼 있지 않을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안상미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남씨가 전세보증금을 망상지구 개발사업 밑천으로 사용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남씨 측 법률대리인인 한웅 변호사도 “자금의 이동 경로까진 파악할 수 없지만 시기상 (망상지구 개발사업에) 일부 쓰였을 수도 있다고 본다”고 했다.

망상지구 개발사업의 시작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9월 동해시에서는 초대형 매물이 경매시장에 등장했다. 동해시 괴란동의 178만㎡짜리 임야다. 감정가는 143억원에 달했다. 규모와 시세 측면에서 동해시는 물론 강원도 전체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컸다. 이 토지는 2006년 한 건설사가 골프장 건설을 위해 매입했다가 경영난에 부닥치자 채권단이 경매로 내놓은 매물이었다. 이 토지를 낙찰받은 사람이 바로 남씨다.

남씨는 해당 매물에 단독 입찰해 감정가 100%를 써냈다. 가격을 전혀 깎지 않고 제값에 사들인 이유는 분명하다. 괴란동 땅이 남씨가 개발에 참여한 망상지구에 속해 있었던 것이다. 남씨가 매입한 괴란동 토지의 등기부등본을 보면, 낙찰받은 시점에 아무런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자금이 부족한 경매 낙찰자는 낙찰받은 물건을 담보로 경락대출을 받아 잔금을 치른다. 그런데 근저당권이 없다는 것은 경락대출을 받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다른 물건을 담보로 제공하거나 사금융에 손을 벌리지 않은 이상, 남씨가 낙찰가 전액인 143억원을 대출 없이 현금으로 납부했다고 볼 수 있다. 납부일은 2018년 1월15일이다.

최문순 전 강원지사 ⓒ시사저널 최준필
최문순 전 강원지사 ⓒ시사저널 최준필

21억짜리 회사가 143억짜리 요지를 무대출 매입

이 돈의 출처가 어디인지는 확인된 바 없다. 신용평가사가 집계한 재무제표로 확인되는 회삿돈은 턱없이 부족했다. 동해이씨티의 최대주주(60%)이자 남씨의 법인인 상진종합건설은 2017년 말 기준 자산액이 21억원이었다. 자산을 모두 팔아도 낙찰가 143억원에 한참 못 미친다. 남씨는 경매대금 지급 과정에서 소유권을 동해이씨티로 넘겼는데, 이 회사의 2017년 말 자산액도 14억원에 불과했다.

돈의 출처를 추측할 수 있는 자료는 따로 있다. 시사저널은 2017년 중순 강원도 산하 동자청이 망상지구 예비개발사업자를 공모했을 때 상진종합건설이 제출한 사업제안서를 입수했다. 당시는 남씨가 괴란동 토지를 매입하기 전이다. 사업제안서에는 재원조달 방안으로 ‘임대보증금’과 ‘임대료 수입’이 적혀 있었다. 또 “효율적 타인자본 조달 방법을 도입해 금융비용 발생 최소화”란 문장이 나온다. 대출이자 부담을 줄이는 대신 전세보증금을 돈줄로 쓰려 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상진종합건설이 2017년 망원지구 예비개발사업자 공모 당시 제출한 사업제안서 일부. 재원조달 방안으로 '임대보증금'과 '임대료 수입'이 적혀 있다. 또 "효율적 타인자본 조달 방법을 도입해 금융비용 발생 최소화"라고 밝혔다. ⓒ 시사저널 입수
상진종합건설이 2017년 망원지구 예비개발사업자 공모 당시 제출한 사업제안서 일부. 재원조달 방안으로 '임대보증금'과 '임대료 수입'이 적혀 있다. 또 "효율적 타인자본 조달 방법을 도입해 금융비용 발생 최소화"라고 밝혔다. ⓒ시사저널 입수

게다가 계획과 달리 거액의 이자 부담을 지며 대출을 받았다. 2018년 1월15일 괴란동 토지의 잔금을 치르고 2주일 뒤인 1월31일 동해이씨티는 해당 토지를 담보로 돈을 빌렸다. 그 액수는 채권최고액(120억원)을 고려했을 때 90억~11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이후 상진종합건설의 자회사는 2018년 10월 미추홀구에 O아파트를 준공했다.

O아파트는 동자청에서 2018년 8월 심의한 ‘망상지구 개발계획 변경안’에도 거론돼 있다. 여기에는 동해이씨티의 재원조달 방안으로 “자기자본금 1300억원을 개발사업에 따른 예상 매출액의 일부로 충당할 계획”이라고 적혀 있는데, 해당 개발사업 중 하나가 ‘O아파트 공사(예상 매출액 905억원)’였다. O아파트는 나중에 전세 사기 피해자가 대거 나온 곳이다. 피해대책위에 따르면 O아파트의 총 204세대 중 124세대가 경매에 나와 세입자들이 146억원의 전세금을 뜯길 위기에 처해 있다. 대책위가 집계한 피해 현황 중 세대 수와 피해액 측면에서 최대 규모다.

ⓒ시사저널 박정훈
3월15일 인천 미추홀구 한 오피스텔에 위치한 상진종합건설 사무실. 자회사 2곳도 모두 문이 닫혀 있었다. ⓒ시사저널 박정훈

“세입자 돈으로 쌓아올린 모래성”

이 외에도 남씨와 관계 회사는 수차례 수십억~수백억원의 돈을 빌렸다. 지난해 8월 미추홀구를 중심으로 전세 사기를 당했다는 주민들의 고소·고발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대출을 멈추지 않았다. 동해이씨티 등은 지난해 11월 괴란동 토지에 근저당을 설정하고 200억여원을 차입했다. 이를 포함해 괴란동 토지를 담보로 대출한 돈만 5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의 돈에 과도하게 의존한 남씨의 개발계획이 어떻게 강원도와 동자청의 심의를 통과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선 여러 의혹이 있다. 도의회와 시민단체에서도 숱하게 문제점을 제기했다. 그중 하나는 남씨 회사의 ‘몸집 부풀리기’ 여부였다. 회사 규모를 허위로 써내 사업개발권을 따냈다는 것이다.

상진종합건설이 2017년 제출한 사업제안서에는 ‘직원 2521명, 총자산 1조2000억원’이라고 나와 있다. 그러나 동자청 망상지구 범시민비상대책위원회(범대위)는 “신용평가기관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실제 직원 수는 9명, 총자산은 21억원에 불과했다”고 반박했다. 또 상진종합건설은 “2004~16년 누적 매출액이 4조5000억원”이라고 주장했으나 범대위는 “회사가 2011년 설립됐는데 그 이전 매출액은 뭔가”라고 반문했다.

동자청 망상지구 범시민비상대책위원회(범대위)가 주장하는 상진종합건설의 실체 ⓒ 범대위 제공
동자청 망상지구 범시민비상대책위원회(범대위)가 주장하는 상진종합건설의 실체 ⓒ범대위 제공

당시 동자청은 “상진종합건설의 재무제표는 회사가 밝히지 않는 한 확인할 방법이 없다”며 “자산과 매출, 종업원 수 등은 평가 대상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전종규 범대위 기획국장은 “세입자 돈으로 쌓아올린 모래성”이라며 “파도 한 번에 무너질 모래성에 강원도가 너무 많은 권한을 쥐여줬다”고 꼬집었다. 반면 남씨 측 한웅 변호사는 “남씨와 관계사가 보유한 자산은 8000억원에 가깝다”며 “전세보증금과 부채를 뺀 순자산도 1000억원 정도”라고 주장했다.

특혜 의혹도 불거졌다. 당초 남씨가 매입한 괴란동 토지는 망상지구 부지 총면적의 40%에 해당했다. 관련법상 개발시행자로 선정되려는 업체는 부지의 50%를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동자청이 공교롭게도 2018년 중순 개발계획을 변경해 망상지구 부지의 전체 면적을 축소했다. 이에 따라 남씨의 토지 지분율이 53%까지 올라가 자연스럽게 기준을 충족하게 됐다. 동자청은 “환경 보전과 주민 편의를 고려해 가파른 산지와 취락 지역, 백사장 등을 (부지에서) 제외했다”며 특혜 의혹을 일축했다.

망상지구 개발은 최문순 전 강원지사의 역점 사업이었다. 개발의 키를 쥔 동자청도 최 전 지사 임기 때인 2013년 설립됐다. 당초 동자청은 캐나다 던디사를 개발사업시행자로 선정했지만 2016년 2월 무산됐다. 던디사는 동해시의 땅 한 평 매입하지 않고 도비만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동자청이 ‘선(先) 토지매입 후(後) 개발시행’으로 전략을 바꿨고, 때마침 남씨가 괴란동 토지를 선점하며 유력 후보가 된 것이다.

ⓒ동해안권경제자유구역청 제공
2021년 8월31일 동해시 동해보양온천컨벤션호텔에서 망상1지구 개발사업 투자양해각서를 체결하는 자리에 남헌기 동해이씨티 회장(왼쪽 세 번째)과 최문순 강원지사(왼쪽 다섯 번째)가 함께했다. ⓒ동해안권경제자유구역청 제공

10년째 공전 중인 개발…˝도지사 배임 아닌가˝

최 전 지사는 남씨를 적극 밀어줬다. 2021년 8월에는 망상1지구 투자양해각서를 체결하는 자리에 남씨와 함께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5월에도 두 사람은 망상1지구 내 미국 사립학교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에 함께 서명했다. 앞서 2021년 3월에는 동해이씨티의 사업자 선정을 두고 의혹이 들끓자 강원도가 ‘문제 없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창수 동해시의원(더불어민주당)은 “강원도는 감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정작 의혹에 대해선 답변하지 않았다”며 “사실상 덮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황은 미추홀구 전세 사기가 터진 후에 급변했다. 검찰은 사업자 선정 과정과 관련해 지난해 11월 남씨를 경제자유구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경찰은 올 2월 그를 사기 등 혐의로 구속했다. 급기야 사기 피해를 당한 30대 임차인이 극단적 선택까지 했다. 결국 동자청은 최근 망상1지구 개발사업시행자를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2013년 사업이 출범한 후 10년째 삽 한 번 못 뜬 셈이다.

범대위는 “대장지구의 화천대유와 망상지구의 동해이씨티는 판박이”라며 “초과수익 환수나 재투자 계획 등 안전장치 하나 없는 망상동은 대장동보다 더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사업이 공전하는 동안 도비가 지출됐다는 측면에서 최 전 지사에게 배임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반면 최 전 지사 측 관계자는 "지자체장의 정책적 판단을 배임으로 볼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최 전 지사는 이 밖에 알펜시아 리조트 헐값 매각 의혹으로 수사선상에 올라와 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해당 의혹과 관련해 최 전 지사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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