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문의 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다
  • 하재근 국제사이버대 특임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9.19 12:05
  • 호수 1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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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아스달 연대기》 부진 딛고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
‘고대 판타지 서사극’이란 생소함 뚫어내려 서사·액션 등도 보완

최근 매우 낯선 길을 가는 두 드라마가 동시에 방영되고 있다. 디즈니+ 《무빙》과 tvN 새 토일드라마 《아라문의 검》이 주인공이다. 두 작품엔 한국에서 보기 힘들었던 본격 판타지 액션 대작 드라마라는 공통점이 있다. 《무빙》은 현대 초능력 액션물이고 《아라문의 검》은 고대 판타지 서사극이다. 

먼저 시작된 《무빙》은 지금 세계적인 격찬을 받으며, 고전하던 디즈니+를 도약시킬 구원자로 평가받고 있다. tvN도 요즘 고전하긴 마찬가지다. 기대작이었던 《경이로운 소문2: 카운터 펀치》 《구미호뎐 1938》 등이 모두 큰 호응을 받지 못했다. 과연 《아라문의 검》이 대작에 걸맞은 인기몰이로 tvN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까. 

《아스달 연대기》 시즌2, 우려와 기대 

상황이 녹록지는 않다. 《무빙》에 비해 《아라문의 검》은 조건이 열악하다. 현대 초능력 액션물은, 우리가 기존에 잘했던 현대 몸싸움 액션물의 연장선상에 있다. 기존 액션물에서 주인공들의 능력치만 더욱 강해진 설정이다. 《무빙》처럼 본격 초능력 드라마가 아니었을 뿐이지, 이미 《마녀》 같은 영화에서 수준 높은 초능력 액션이 구현된 바도 있다. 

반면에 고대 판타지 서사극은 우리 입장에선 정말 하얀 도화지 같은 장르다. 아예 ‘0’에서 모든 걸 새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시청자 입장에선 그동안 고대 판타지를 서양인들을 통해 봐왔기 때문에 한국인의 연기가 너무나 어색하고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제작진도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만듦새도 서양에 비해 어설프게 느껴질 수 있다. 

이런 악조건 때문에 《아라문의 검》의 전작인 2019년작 《아스달 연대기》는 혹평을 면치 못했다. 당시 기준으로 충격적인 액수였던 총 제작비 500억원을 들였지만 시청자는 150억원을 들였다는 세트 이외엔 ‘돈 쓴 티’를 별로 느끼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무슨 얘기인지 이해하기 너무 힘들었다는 점이다. 가상의 대륙 아스에서 문명이 일어나고, 왕국이 만들어지고, 종교가 형성되는 거대한 문명사적 이야기를 그렸지만 모두 새로운 설정인 데다 우리 역사처럼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어서 시청자에겐 복잡하기만 했다. 원시 종족 뇌안탈, 뇌안탈과 사람 사이에 태어난 이그트, 아사신, 아라문 헤슬라, 아고족, 이아르크 등등 뭔지 모를 개념들이 난무했다. 

화면이 지나치게 어둡기도 했고, 젊은 두 주인공의 활약이 너무 미미해 시청자에게 고구마를 안겼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인이 연기하는 고대 판타지가 우습고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또, 맨 처음에 흉포한 원시시대 전사들처럼 등장했지만 한국인의 외형으론 그 느낌이 표현되기 어려웠다. 이미 시청자들은 서구 드라마를 통해 원시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강렬한 외형의 인물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마동석 정도가 아니면 일반적인 한국인의 몸과 얼굴에서 그런 분위기를 느끼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혹평 속에 막을 내렸지만 《아스달 연대기》는 그렇게 무의미하기만 한 작품이 아니었다. 문명 초창기의 이야기를 상상의 드라마로 풀어가면서, 낯설기만 했던 인물과 개념들을 큰 호흡으로 시청자에게 인식시켰다. 초반의 원시 설정은 어색했지만 후반부에 펼쳐진 청동기 부족국가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격돌, 그리고 여주인공 탄야가 노예에서 종교 지도자가 되고 남주인공 은섬이 탈주 노예에서 영웅 이나이신기로 거듭나는 결말은 시즌2를 향한 기대와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시즌2에서 아스달의 지도자 타곤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청동기 부족연맹체를 철기 왕국으로 바꿔 나가고, 은섬은 이나이신기로서 부족들을 하나하나 통일해 타곤의 숙적으로 성장해 나가고, 탄야가 대제사장이 되면서 대중의 욕망을 조종하는 정치력을 익혀 나가는 과정이 제대로만 그려졌다면 매우 흥미진진한 작품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아스달 연대기》의 흥행 실패로 인해 시즌2가 바로 제작될 동력이 사라졌다. 시간이 흐르는 사이 코로나19까지 덮쳤다. 결국 일정이 맞지 않았던 젊은 두 주인공, 송중기와 김지원이 하차했다. 주인공이 변했기 때문에 이야기를 바로 이어 나가기가 힘들어졌다. 

제작진은 젊은 주인공을 이준기와 신세경으로 바꾸고 아예 《아라문의 검》이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분위기를 일신했다. 《아스달 연대기》의 끝 지점에서 8년 후의 이야기다. 타곤, 은섬, 탄야가 권력자가 돼가는 과정은 생략됐다. 이미 각자 아스달의 왕 타곤, 아고족을 통일한 이나이신기 은섬, 제사장이 되어 아스달 백성을 정신적으로 장악한 탄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상태다. 

ⓒ월트디즈키컴퍼니코리아 제공
tvN 토일드라마 《아라문의 검》에 출연하고 있는 이준기(은섬 역), 장동건(타곤 역), 신세경(탄야 역), 김옥빈(태알하 역) ⓒMatthew Murphy 제공

“어떤 사극보다 액션 분량 많아” 

저마다 기반을 갖췄기 때문에 남은 건 격돌이다. 《아라문의 검》에선 이제 각자 검을 들고 대격전을 벌이게 된다. 김영현·박상연 작가는 시즌1을 너무 어렵게 푼 점을 보완하겠다고 했다. 또 은섬과 탄야가 지나치게 약했던 부분도 보완한다고 했다. 이젠 주인공들이 강인하고 카리스마 있는 영웅으로서 맞부딪치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제목에 ‘검’이 들어갔다. 

연출도 사극 액션 연출로 찬사를 받은 바 있는 《안시성》의 김광식 감독이 맡았다. 김 감독은 이 작품에 강렬한 액션을 이식한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봤던 어떤 사극보다 액션 분량이 많은 드라마”라며 “다른 액션 작품에서 보지 못했던 전쟁 드라마로서의 쾌감을 충분히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스달 연대기》가 돈 쓴 티가 별로 안 난다는 평을 받았지만 《아라문의 검》은 대형 액션으로 돈 쓴 티를 확실하게 내겠다는 것이다. 최근 방영된 1~2회에서 미국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전투신으로 박진감을 선사하기도 했다. 

국가와 문명이 어느 정도 형성되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사극 분위기가 나기도 한다. 너무 원시시대 분위기여서 어색했던 《아스달 연대기》 초반에 비해 좀 더 몰입할 여지가 커진 것이다. 제작진은 구도를 단순화하고, 이야기 전개를 간단하게 요약해 설명하는 등 시청자의 이해를 돕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확실히 《아스달 연대기》 때보단 성공 가능성이 커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반응은 미지근한 편이다. 조금만 봐도 한순간에 시대 설정이 이해되는 조선시대 사극에 비해 상상의 대륙 고대 이야기는 여전히 낯설고, 한국인이 그런 걸 표현하는 게 어설프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아라문의 검》은 문명사적 이야기를 상상의 구성으로 풀어가며 우리 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혹평만 받을 만큼 만듦새가 어설프지도 않다. 과연 앞으로 《아라문의 검》이 반전 성공작이 될 수 있을까? 만약에 그렇게 되면 K드라마가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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