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화되는 내수 부진에 수출로 가속 페달 밟는 ‘르·케·쉐’(르노·KG·쉐보레)
  • 박성수 시사저널e. 기자 (holywater@sisajournal-e.com)
  • 승인 2023.10.31 10:05
  • 호수 1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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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차 신차 공세에 르노·KG·GM 입지 갈수록 좁아들어
북미·유럽·중동·동남아 등에서 활로 모색

국내 완성차 업계를 둘러싼 ‘힘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졌다. 이른바 ‘르·케·쉐’로 불리는 르노코리아자동차, KG모빌리티, GM한국사업장(쉐보레) 등은 그동안 현대차와 기아차의 강세 속에서도 나름의 영역을 구축하며 선방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바뀌었다. 현대·기아차가 매달 완전변경(풀체인지),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 모델을 포함한 신차를 쏟아내고 있지만, 중견 3사는 상대적 신차 부재로 설 곳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특히 하이브리드가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강세지만, 중견 3사 하이브리드 라인업이 빈약하다는 점도 점유율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GM은 2018년에 군산공장, 지난해 부평2공장을 폐쇄했고, KG모빌리티도 구 쌍용자동차 시절 매각 과정이 순탄치 못했다는 점 등이 국내 소비자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줘 판매에 간접적인 악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풀이된다.

쌍용자동차는 지난해 KG그룹에 인수되면서 사명을 KG모빌리티로 변경했지만 내수 점유율은 시간이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사진은 KG모빌리티 평택 본사 모습 ⓒ연합뉴스
쌍용자동차는 지난해 KG그룹에 인수되면서 사명을 KG모빌리티로 변경했지만 내수 점유율은 시간이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사진은 KG모빌리티 평택 본사 모습 ⓒ연합뉴스

 

‘르·케·쉐’의 내수 점유율은 고작 ‘9%’

실제로 올해 중견 3사 내수 성적은 그야말로 처참한 수준이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및 완성차 통계자료에 따르면 올해 1~9월 3사 내수 점유율은 도합 9%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KG모빌리티 4.7%(5만984대), GM 2.7%(2만9056대), 르노코리아 1.6%(1만7128대)다. 3사 점유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진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르노코리아의 국내 판매가 본격화된 1998년 이후 3사 점유율은 20~25% 수준을 유지하다, 2016년 이후 내리막길이 시작됐다. 2016년 점유율은 25%였으나, 2017년 21%, 2018년 19%, 2019년 18%로 계속 떨어졌으며 지난해엔 11% 수준까지 내려갔다.

3사의 부진에는 앞서 언급한 대로 신차 부재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현대·기아차의 경우 올해에만 코나, 아반떼, 쏘나타, 싼타페, 쏘렌토, EV9 등 전 라인업에 걸쳐 신차를 내놨다. 반면 3사의 신차급 차량은 GM의 트랙스와 트레일블레이저, KG모빌리티 토레스 EVX 정도에 불과하다. 여기에 4분기 현대차그룹은 싼타페 하이브리드, 카니발, K5, GV80 등 추가 신차를 준비 중이다.

예전과 달리 3사가 노릴 만한 마땅한 틈새시장이 없다는 점도 악재다. 과거 3사는 소형 및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픽업트럭 등 현대·기아차가 집중하지 않는 시장을 노려 살길을 모색했다. 하지만 최근엔 현대차그룹이 해당 차급 신차를 내놓아 이마저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KG모빌리티는 예전에 티볼리를 통해 소형 SUV 시장을 개척했으나, 이후 현대차그룹에서 니로, 코나, 셀토스 등 경쟁 차종이 나오면서 점유율이  하락했다. 르노코리아도 QM6 LPG 모델로 나름 재미를 봤지만, 스포티지 LPG 출시 등으로 판매량이 감소하는 추세다.

무엇보다 하이브리드(HEV) 차량 부재가 아쉬운 부분이다. 최근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차종은 단연 HEV다. 자동차 시장 조사기관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 3분기 누적 기준 HEV 판매량은 22만3872대로 전년 대비 41.5% 성장했다. 같은 기간 전체 신차 시장 성장률은 6.5%에 그쳤다. 올해 HEV 판매는 경유차(23만9874대) 뒤를 바짝 쫓고 있으며, 현 추세대로라면 연간 기준에선 경유차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의 경우 아반떼, 쏘나타, 그랜저, 코나, 투싼, 싼타페, K5, K8, 니로, 스포티지, 쏘렌토 등 대부분의 차량에 HEV 라인업을 갖추고 있는 반면, 중견 3사는 르노코리아 XM3 외에는 HEV가 없는 상황이다.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중견 3사는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국내는 현대·기아차가 시장을 꽉 잡고 있으며 수입차 시장도 커지고 있는 데 비해, 해외는 국내에 비해 시장 자체가 크고, 우수한 가격 대비 성능(가성비)을 앞세워 중저가 시장에서 경쟁력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GM의 경우 올해 출시한 트랙스와 트레일블레이저가 북미 시장에서 대박을 터뜨리며 수출 시장을 견인하고 있다. 올 1~9월 GM 수출은 전년 대비 81.4% 증가한 29만4263대로 이미 작년 연간 수출을 뛰어넘었다. 이 중 트레일블레이저는 15만9202대를 수출하며 전년 대비 59.6% 늘었고, 올해 초 출시한 트랙스도 13만5013대를 판매하며 GM 성장을 이끌고 있다. 현 추세대로라면 GM은 연간 40만 대를 가뿐히 넘어서며, 올해 초 목표로 한 연간 50만 대 생산체제 구축에도 한 발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GM은 올해 생산량을 전년 대비 2배 이상 끌어올려 흑자 폭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르노코리아자동차 XM3(수출명 르노 아르카나)가 5월15일 수출을 위해 부산공장 선적장을 올라가고 있다. ⓒ연합뉴스

중견 3사 수출량, 내수의 10배 전망

한동안 내수에 집중했던 KG모빌리티도 지난해 KG그룹에 인수된 이후 본격적으로 수출을 늘려 나가고 있다. 올해 1~9월 KG모빌리티 수출은 4만5415대로 전년 대비 43.8% 증가했다. 앞서 곽재선 KG모빌리티 회장은 지난 9월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오는 2026년까지 국내 판매 12만 대, 해외 10만 대, KD(반조립 제품) 10만 대를 포함해 연간 32만 대 판매를 달성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KG모빌리티는 최근 동유럽과 중동, 중남미 등을 중심으로 수출을 확대하고 있으며 향후에도 지역별로 네트워크망을 넓혀 나갈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내년에 독일에 직영 판매 법인을 설치하고 토레스 EVX를 출시해 유럽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낸다. 미주 지역의 경우 멕시코에선 KD 사업을 중점적으로 하고, 칠레를 중심으로 남미 지역 판매를 늘려 나갈 방침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호주 법인 판매를 확대하는 한편 베트남 KD 사업을 통해 물량을 확대할 계획이다.

르노코리아는 올해 내수뿐 아니라 수출도 부진한 상황이다. 1~9월 르노코리아 수출은 7만73대로 전년 대비 16.4% 감소했다. 르노코리아는 지난해 XM3 하이브리드를 유럽 시장에서 선보이며 연간 수출 10만 대를 넘어섰으나, 올해는 XM3 신차 효과가 약화된 데다 선박 문제까지 겹치면서 수출 물량이 줄어들었다. 다만 르노코리아는 내년에는 ‘오로라 프로젝트’를 통해 분위기 반전을 꾀할 계획이다. 오로라 프로젝트는 르노코리아, 르노그룹, 중국 지리그룹이 협업해 진행하고 있는 신차 프로젝트다. 루카 데 메오 르노 회장은 지난해 한국을 방문해 “르노코리아는 르노그룹이 내놓는 신규 중·대형 차량의 수출 허브가 될 것이며, 여건이 갖춰진다면 향후 6년간 한국에 수억 유로를 투자할 계획이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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