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대신 채권 전성시대 열리나
  • 이승용 시사저널e. 기자 (romancer@sisajournal-e.com)
  • 승인 2023.10.31 07:35
  • 호수 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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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 장기화 전망에 美 10년물 국채 금리 5% 돌파
초단기채 ETF·만기매칭형 ETF 투자자들에게 인기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그동안 글로벌 금리의 벤치마크 역할을 해왔다. 이 국채 금리가 최근 빠르게 치솟고 있다. 지난 8월 심리적 저항선이라고 여겨졌던 4.25%를 넘어섰고, 두 달 만인 10월20일에는 일시적으로 5%까지 치솟았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5%를 넘어선 것은 2007년 7월 이후 16년 만이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해부터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0~0.25%였던 기준금리를 지난 7월 5.25~5.50%까지 올렸다. 2001년 이후 2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물론 이 같은 고금리가 10년 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보는 투자자는 없었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항상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보다 낮게 유지돼 왔던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오름세인 것이다.

고금리 상황이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주식 대신 채권으로 갈아타는 투자자들이 최근 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연합인포맥스 전광판 모습 ⓒ연합뉴스

미국 채권 금리 ‘고공행진’ 배경 주목 

미국 채권시장에서 악화하고 있는 수급 상황이 첫 번째 원인으로 꼽힌다. 정부가 발행하려는 국채 규모보다 수요가 부족하면 결국 자금 조달을 위해 금리를 높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바이든 정부는 엄청난 재정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는 지난 9월말로 끝난 2023 회계연도 기준 1조6950억 달러(약 2300조원)의 재정적자를 기록했다. 국내총생산(GDP)의 6.3%에 달하는 규모다. 미국 국가부채는 올해 33조 달러를 돌파한 상태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바이든 정부는 돈 풀기를 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의회에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사태 지원 등을 포함해 1000억 달러에 달하는 원조 및 안보 예산을 요청한 상태다.

문제는 미국 정부 발행 채권에 대한 큰손 투자자들이었던 일본과 중국이 최근 국채 매입을 줄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일본은 미국 국채 보유 1위 국가다. 일본은 보험사들이 미국 국채를 사들여왔다. 하지만 일본은행이 최근 ‘미국발’ 금리 인상에 동조하지 않으면서 엔화 가치가 폭락했고, 보험사들이 미국 국채 매입에 지불하는 환헤지 비용 역시 급증했다. 미국 국채 이자보다 환헤지 비용이 높아지면서 일본 보험사들은 지난해부터 미국 국채 매입을 줄이고 있다.

한국은행은 10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지난 1월부터 기준금리 3.5%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금리 벤치마크인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상승하면서 국내 채권시장 금리도 요동치고 있다. 국내 채권시장에서 지난 5월 3%대 초반까지 낮아졌던 10년물 국채 금리는 7월부터 상승세를 시작해 어느덧 4%대 초중반까지 상승한 상태다.

한국은행은 국내에서도 고금리가 장기간 유지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미국은 높은 금리가 장기화할 것(higher for longer)을 이야기하고 있고, 저도 금리가 금방 조정돼 금융 부담이 빨리 낮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혹시 금리가 다시 예전처럼 1%대로 떨어져 이자 비용 부담이 적을 거란 생각을 한다면 그 점에 대해선 경고를 드리겠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발생했던 레고랜드 사태도 올해 말 채권시장을 흔들 촉매제다. 레고랜드 사태로 국공채 및 회사채, 여전채 시장이 마비되자 채권 수요는 은행채로 쏠렸다. 금융 당국은 채권시장 정상화를 위해 은행채 발행을 제한했다. 자금이 필요했던 시중은행들은 1년 만기 고금리 정기 예·적금 특판상품을 쏟아냈고, 당시 은행권 정기 예·적금에 100조원 넘는 자금이 유입됐다. 은행들은 예·적금 만기 이후 유출되는 자금을 붙잡아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난해처럼 과도한 수신 경쟁으로 예금 금리가 다시 급등하면 대출 금리 급등에 따른 가계부채 문제가 확산할 수 있다. 금융 당국은 은행들의 고금리 예·적금 특판 경쟁을 막기 위해 올 4분기부터 은행채 발행 한도를 폐지했다. 은행들은 올 4분기에는 예·적금 특판 대신 은행채를 대거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예정이다.

 

주식 대신 채권으로 이동하는 투자자들

고금리가 지속되면서 국내 투자자들은 주식 대신 채권으로 대거 이동하고 있다. 채권의 최대 매력은 만기 시 확정 이자를 지급한다는 점이다. 금리가 상승하면 채권 가격은 하락하지만 만기 시 확정금리를 받을 수 있다. 금리가 높을수록 채권 투자의 매력은 높아진다. 특히 단기채의 경우 원금을 회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고 시중금리가 올라도 채권 가격 변동성이 작기에 더욱 투자자들이 쏠리고 있다.

삼성증권이 자사 고객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우리나라 국채에 투자한 고객 수는 1만2147명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2659명 대비 4.5배에 달한다. 전체 투자금액도 지난해 8880억원에서 올해 2조342억원으로 129% 증가했다. 

증시에서도 주식이나 주식형 ETF 대신 초단기채 ETF에 투자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초단기채 ETF는 시중금리를 추종해 가격이 움직이는 파킹통장형 ETF다. 양도성예금증서(CD) 91일물 금리를 추종하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CD금리투자KIS(합성)’는 지난 9월 순자산총액이 6조3000억원을 넘어서며 국내 ETF 시장 개설 이래 순자산총액 1위를 유지하던 삼성자산운용의 주식형 ETF ‘KODEX 200’을 제치고 국내 1위 ETF로 올라섰다. 10월19일에는 순자산총액 7조원을 돌파한 상태다.

만기매칭형 ETF도 인기다. 만기매칭형 ETF는 만기까지 보유하면 일반 채권처럼 투자자에게 원금과 이자를 지급하고 상장폐지되는 ETF다. 사실상 투자자들에게 확정이자를 제공하는 채권과 같은 셈이다. 예를 들어 ‘TIGER 24-10 회사채(A+이상) 액티브’는 2024년 10월 만기가 되는 신용등급 A+ 이상 회사채에 주로 투자하는 상품으로 내년 10월까지 보유하고 있으면 상장폐지 후 계좌에 순자산가치에서 운용보수 등 비용을 차감한 해지 상환금이 입금된다. 박윤철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금리 급등으로 주식, 채권 모두 압박을 받고 있는 가운데 주식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있지만 채권에 대한 투자자의 관심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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