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중개사는 스펙용?...불황에 활용 애매해진 ‘국민자격증’[공성윤의 경공술]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3.12.04 09:4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험생·사무소 개설 수↓ vs 시험 난도·사무소 폐업 수↑...경찰 시험에선 '컴활 2급'과 동급 취급

[편집자주] 무협지를 탐독하신 분들은 '경공술(輕功術)'에 익숙하실 겁니다. 몸을 가볍게 해서 땅이나 물 위를 날아다니는 기술이죠. 그 경지에 오르면 시공간을 초월해 이동할 수 있습니다. 경매와 공매를 공부하는 분들도 이처럼 누구보다 더 빨리,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현실에도 경공술이 있습니다. '경매와 공매의 기술'입니다. 무협지는 그 터득 방법을 알려주지 않지만, 꼼꼼한 현장 취재로 경공술을 발굴해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공인중개사의 인기가 부동산 경기 침체와 함께 대폭 사그라들었다. 자격증 응시자 수는 줄어드는 반면, 간판을 내리는 중개사 사무소는 늘고 있다. 일각에선 아예 개업을 포기하고 중개사 자격증을 ‘스펙 쌓기’ 수단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효용성이 좋지 않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한때 ‘국민 자격증’으로 불렸던 위상이 경기 한파에 깎인 모양새다.

부동산 시장 회복세에도 전국 개업 공인중개사 수가 감소 중인 가운데 11월27일 오후 부동산 중개업소가 밀집한 서울의 한 상가에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연합뉴스
전국 개업 공인중개사 수가 감소 중인 가운데 11월27일 오후 부동산 중개업소가 밀집한 서울의 한 상가에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연합뉴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지난 10월28일 치러진 제34회 공인중개사 시험의 1∙2차 접수자 수는 총 28만7756명으로 집계됐다. 작년 33회 시험 접수자 수인 38만7710명 대비 약 10만 명 줄어들었다. 부동산 경기의 바로미터로 통하는 공인중개사 시험 접수자 수는 2019년(29만8213명)을 제외하면 2017년부터 줄곧 30만 명을 상회했다. 경기의 고점을 찍었던 2021년에는 접수자 수(39만9921명)가 40만 명에 육박했으나 이후 점차 감소하는 추세다. 더욱이 중개사 시험을 상대평가로 바꾸자는 견해에 힘이 실리면서 ‘절대평가 막차를 타자’는 분위기가 감지되는데도 접수자가 많지 않은 점은 이례적이란 분석이 뒤따른다.

회계사 시험보다 좁아진 구멍…”법조인에게도 어려워”

중개사 시험에 등을 돌리는 현상은 점점 어려워지는 시험 자체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정부는 2021년 ‘부동산 중개보수 및 중개서비스 개선방안’을 통해 중개사 시험 난도를 올려 중개사 수를 조절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후 작년 합격률(2차 최종합격 기준)은 31.6%를 기록해 회계사 합격률(33.3%)보다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번 중개사 시험의 합격률은 그보다 더 낮은 23.07%로 떨어졌다. 지난해 33회 시험 때 ‘동차(1∙2차 시험 동시 응시)’로 합격한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송사와 골프 약속을 대부분 제쳐 두고 반년 동안 매달려 겨우 합격했다”며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시험”이라고 말했다.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고시(高試) 수준”이란 얘기도 나온다.

게다가 중개사 자격증을 힘들게 따도 그 활용법이 모호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은퇴 후 이모작을 염두에 두고 중개사무소 개설을 목표로 한 시험 응시자가 비교적 많았다. 2020년 이전 40대 이상 중장년층의 시험 접수율은 60%에 달했다. 또 작년까지만 해도 전국 월평균 사무소 개설등록 수는 1100건을 웃돌았다.

반면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월평균 개설등록 수는 1067건으로 낮아졌다. 8월에는 최저치인 826건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올해 월평균 폐업건수가 1176건으로 증가해 개설등록 수를 앞질렀다. 협회가 관련 자료를 집계한 이후 문을 연 사무소보다 문을 닫은 사무소가 더 많은 해는 올해가 처음이다. 주요 원인으로는 금리 인상으로 인한 부동산 경기 위축이 꼽힌다. 중개사의 중개 주택 중 거래 액수가 가장 높은 아파트의 경우 전국 거래량은 올 1월 1만7841건으로 나타났다. 최근 10년 통틀어 가장 적다. 2월부터는 3만 건대로 회복했지만 10년 간 평균 거래건수인 5만2000건에 비하면 여전히 낮다.

2016년 9월18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로의 한 공인중개사 학원에서 중년층 수험생들이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6년 9월18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로의 한 공인중개사 학원에서 중년층 수험생들이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중개사무소 대표’ 되려고 자격증 따는 청년 적어 

이렇다 보니 시험에 합격해도 당장 개업 전선에 뛰어들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중개사 자격증을 개업 목적이 아닌 ‘스펙용’으로 간주하는 경향도 발견된다. 지난해 프롭테크 기업 직방이 20~39세 자격증 취득자 100명을 대상으로 취득 이유에 대해 설문조사(복수응답 가능)한 결과, 37.6%가 “취업∙진학 시 우대”를 꼽았다. 단순히 “부동산 투자∙공부”를 목적으로 딴 사람도 45.5%를 차지했다. 또 같은 조사에서 10명 중 7명 이상은 중개사무소 개설을 미루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에선 자격증 취득의 어려움에 비해 우대 정도가 크지 않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도 있다. 일례로 경찰공무원 시험에서 중개사 자격증 소지자는 가산점 2점을 받을 수 있는데, 이는 토익 600점 이상과 같은 수준이다. 또 중학생도 흔히 취득하는 컴퓨터활용능력 2급 역시 가산점 2점 부여 대상이다. 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중개사 자격증 본연의 역할이 활성화되려면 부동산 거래량뿐만 아니라 전세사기로 잃어버린 민심도 같이 회복돼야 활 것”이라고 자평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