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병립형 몰아가기? 민주당, 선거제 내부 설문조사 ‘편향성’ 논란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3.12.1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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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립형’ 보기에만 지역구‧비례대표 동시 출마 가능한 ‘이중등록’ 명시
‘국민의힘이 위성정당 만든다면’ 전제 달아 ‘답변 유도’ 논란도
더불어민주당이 진행하고 있는 선거제 개혁 관련 내부 설문조사안 ⓒ시사저널
더불어민주당이 진행하고 있는 선거제 개혁 관련 내부 설문조사안 ⓒ시사저널

더불어민주당이 선거제에 대한 의견 수렴을 위해 진행 중인 내부 설문조사에 ‘병립형 회귀’를 유도하는 듯한 문항이 기재돼 중립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현행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할지, 병립형으로 회귀할지를 두고 당내 팽팽한 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민주당 지도부는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오는 의원총회에서 최종 당론을 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시사저널이 12일 입수한 ‘비례대표제 관련 의원 설문안’에는 크게 두 가지 질문이 담겨 있다. 첫 번째 문항은 ‘다음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출방식 중 더 선호하는 방식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으로 선호하는 비례대표 선출 방식을 묻고 있다. 여기엔 ①연동형 비례대표제 ②이중등록이 가능한 병립형 권역별 비례대표제 ③잘 모르겠다 등 세 가지 보기가 주어졌다.

당내에선 ②병립형 보기에만 ‘이중등록이 가능한’이라는 설명이 부연돼 있는 데 대해 문제가 제기됐다. ‘이중등록’은 총선 출마자가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동시 입후보할 수 있다는 제도를 의미한다. 지역구에 출마해 패배하더라도 비례대표로서 재도전할 수 있어 ‘지역주의 해소’에 도움이 되는 제도로 주로 거론된다.

 

“병립형으로 선택 유도하는 설문조사”

일부 의원들은 ‘병립형’ 보기에만 이 같은 문구를 추가해 ‘선택’을 유도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종민 의원은 민주당 전체 의원들이 속한 텔레그램 방에 “‘이중등록이 가능한 연동형 비례제’로 가야 한다”고 공개 비판했다. 그는 통화에서도 “①번 연동형 비례제 앞에도 ‘이중등록이 가능한’을 똑같이 붙이거나 아니면 다 빼야 중립적”이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정치학 박사)는 “연동형도 ‘이중등록’이 가능한데 왜 ‘병립형’ 앞에만 ‘이중등록’을 기재했는지 의문”이라며 “‘이중등록’에 대한 지지 여부는 별도 문항으로 분리해 묻는 게 적절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지는 두 번째 문항의 경우 질문 자체가 ‘편향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여기엔 ‘국민의힘 위성정당 출현 시 더불어민주당 대응 방안’이란 주제로 ‘만약 국민의힘이 위성정당을 만든다면 더불어민주당은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이 실렸다. 이에 대한 보기로는 ①더불어민주당은 위성정당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②더불어민주당도 위성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③잘 모르겠다 등 세 가지가 제시됐다.

질문에서 국민의힘이 위성정당을 만들었을 때를 ‘전제’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당도 이에 맞서 위성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응답을 유도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김종민 의원은 “위성정당과 관련해선 이렇게 질문을 하면 안 된다”며 “‘위성정당을 안 만들겠다던 민주당의 대국민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보나,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보나’라고 질문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 역시 “위성정당과 관련해 우리 당이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먼저 앞세워야지, 국민의힘을 걸고 넘어지는 건 문항을 설계한 쪽의 의도가 뻔히 느껴진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 “문항 자체에서 문제 많이 발견돼”

복수의 여론조사 전문가들도 “문항 자체에서 문제가 많이 발견된다”고 지적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통화에서 “첫 문항의 경우 ‘이중등록’이란 개념이 왜 보기 ②에만 투입돼 있는지 이해가 잘 안 된다”고 평가했다. 또한 “두 번째 문항은 질문에서부터 편향성이 담겨 있어 더 문제가 크다”며 “민주당 의원으로선 당연히 ‘우리도 위성정당 만들어서 국민의힘에 대응해야지’라고 생각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이 기존에 세웠던 원칙을 수정하기 위한 정당성 확보 차원의 조사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전문가 역시 “세련되거나 프로페셔널한 설문지가 아닌 건 확실하다”며 “의도성도 다분히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 전문가는 “이 설문지가 선거제에 대한 확고한 판단이 정립돼 있지 않은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어느 쪽으로든 소신을 갖고 있는 의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내용의 문항들이 조사 결과를 크게 좌우하진 않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민주당은 오는 14일 예정된 의원총회에서 논의할 방침이다. 당 지도부의 병립형 회귀 움직임에 대한 당내 반대 목소리가 잇따르는 만큼 이날 의총에서도 난상토론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설문조사와 관련된 논쟁도 불거질 전망이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전날 “여러 선거 사무와 예비 후보자들을 고려했을 때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선거제를 결정해야 한다”며 늦어도 이달 중 확정짓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무조건 병립형 비례제를 전제로 협의하겠다는 입장”이라며 “선거제는 수적 우위로 관철할 수 없는 만큼 병립형 논의도 하나의 옵션”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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