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황우석의 잔재...국가적 손실 낳은 ‘Mr. C’와 ‘Mr. H’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4.01.06 16:05
  • 호수 1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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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인터뷰] 황우석 사태 제보자 류영준 교수, '네이처' 발행사 통해 ‘그날’ 담은 연구윤리 부정史 출간
법무부 장관 자녀의 논문 조작과 전체주의 코로나 방역 고발...“젊은 세대가 황우석의 전철 끊어야”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른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햇수로는 정확히 19년이 흘렀다. 이른바 ‘황우석 사태’가 발생한 지는. 2005년 당시 황우석 서울대 수의대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실을 처음으로 폭로한 류영준 강원대 의대 교수가 영문 소책자를 낸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제목은 《Between Truth and Profit(진실과 이익 사이)》이다.

이 책은 세계적 과학 학술지 ‘네이처’ 발행사인 영국 ‘스프링거 네이처’가 지난해 11월15일 출간한 단행본 《Ethical Innovation for Global Health(세계 보건을 위한 윤리적 혁신)》에 수록됐다. 스프링거 네이처의 단행본에 국내 학자가 글을 싣는 경우는 이례적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황우석 사태의 민낯을 낱낱이 알고 있는 당사자가 공개적으로 이를 고백한 건 이번이 최초다. 류 교수는 시사저널에 단독으로 출간 사실을 전했다.

1월2일 서울 용산 드래곤시티 호텔에서 만난 류 교수는 출간 계기에 대해 “친분이 있던 일본 생명윤리학회 교수진이 코로나 시대의 생명윤리에 대해 원고를 부탁해 한국 대표로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단행본에는 한국 외에 브라질, 남아공, 대만, 일본 등의 사례가 담겨있다.

류 교수의 소책자 부제는 ‘복제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과학적 위법행위와 코로나 대유행 시기의 사례 재탐색’이다.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책의 총 분량 39페이지 중 초반의 약 30페이지를 할애해 황우석 사태에 대한 소회를 서술했다. 방점은 책 말미에 찍혀있다. 류 교수는 황우석 사태가 끝난 지 19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는 논문 조작의 실태를 고발했다.

책에는 조작의 장본인이 ‘Mr. C’ ‘Mrs. J’ 등으로 익명 처리돼 있다. 그래도 한국인은 누군지 바로 알 수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부인 정경심씨다. 또 본문과 주석에는 ‘법무부 장관이 된 검사 H의 딸’이 또 다른 장본인으로 등장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다. 그런데 류 교수는 인터뷰 내내 두 사람의 실명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학술적 얘기만 하고 싶을 뿐 명예훼손에 대한 오해는 받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류영준 강원대 의대 교수 ⓒ시사저널 임준선

“기성세대 답습”하는 익명의 X세대

류 교수는 “코로나 유행 시기에 한국 학계에서 가장 큰 윤리적 이슈를 꼽으라면 단연 두 전직 법무부 장관 자녀의 연구윤리 위반일 것”이라며 “그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황우석 사태에 대한 긴 전술(前述)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의와 공정의 잣대가 돼야 할 법무부의 두 수장이 얽힌 논문 조작은 국가적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류 교수는 “황우석 사태와 논문 조작 문제가 별개라는 인식은 큰 잘못”이라고 했다. 그는 과거 학계에서 벌어지던 연구윤리 위반 행위가 요즘 뒤틀린 교육관과 결합해 입시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류 교수는 “자녀를 의대에 보내려는 욕망을 간파한 대치동 학원가가 일종의 컨설팅 산업을 만들어냈다”며 “컨설팅을 받은 학부모가 요즘도 지인을 통해 내 실험실에 ‘자녀 연구활동을 하게 해달라’는 청탁을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황우석이 저지른 연구 부정이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방증”이라고 꼬집었다.

조국 전 장관은 1965년생, 한동훈 위원장은 1973년생이다. 조 전 장관은 X세대로 접어드는 베이비붐 세대의 마지막 기수였고, 한 위원장은 전형적인 X세대다. 황우석 사태가 터진 2005년 당시 조 전 장관은 서울대 부임 5년 차의 소장파 학자로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는 등 진보진영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한 위원장의 경우 대선 자금 수사 등 권력형 비리에 칼을 겨눠 이목이 집중되던 때였다. 2005년에는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까지 따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류 교수는 “그때 기성세대에 저항했던 X세대가 기성세대의 폐해를 답습하고 있다는 건 시대적 비극”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어 “X세대는 물론 베이비붐 세대까지 권력을 놓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황우석의 전철을 끊어낼 사람은 지금의 젊은 세대뿐”이라고 강조했다.

세대는 다르지만 조 전 장관과 한 위원장, 황우석 전 교수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학사 학위를 서울대에서 땄다는 사실이다. 류 교수는 책에서 “서울대 인맥은 한국을 학벌주의를 기반으로 한 경직된 사회로 만들었다”고 표현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대 카르텔을 지적하고 싶었던 건가’라고 물었다. 류 교수는 완강히 고개를 저었다. ‘카르텔’이란 단어로 서울대를 규정하는 건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는 “육군에서도 하나회가 문제였지 전체 육군 장교를 깡그리 비난할 수는 없다”며 “서울대에서도 황우석 개인이 인맥과 학연을 이용해 사기극을 벌인 게 문제”라고 했다. 류 교수는 “서울대 출신 지식인들이 각성한다면 한국 사회를 더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황우석 탄생도, 전복도 국민이 해냈다”

류 교수가 파헤친 황우석 사태의 또 다른 치부는 ‘전체주의(totalitarianism)’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서 되살아났다. 류 교수는 책에서 “한국은 코로나 때 비교적 효과적인 예방조치를 취했으나 다방면에서 윤리적 문제를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의 위치를 추적하고, 신용카드 사용내역을 수집하며, 실내 방문 때마다 개인정보를 제출하게 한 사실이 그 예다. 백신 접종 강요도 마찬가지였다. 류 교수는 “방역을 명분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비판했다. 그는 “방역 성공은 인정하지만 그 절차는 공론화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이뤄졌다”며 “이는 분명 국가 운영의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래도 류 교수는 우리에게 최후의 보루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의 저항 정신이다. 그는 “전체주의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국민은 황우석을 영웅으로 떠받들었지만 진실을 드러내고 이를 받아들인 것도 국민”이라며 “우리는 황우석을 탄생시킨 토양도, 전복시킨 토양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소책자를 국문으로 펴낼 생각은 없다고 했다. 황우석 전 교수가 생존해 있고, 당시 논문 조작에 관여했던 인사들도 일부 현직에 있다는 이유에서다. 류 교수는 “《서울의 봄》 영화를 보면 44년 전 12·12 사태의 실체적 진실을 이제야 사회가 수용하는 느낌”이라며 “황우석 사태가 끝난 지는 그 반도 안 됐는데 지금 사회의 용인을 구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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