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숙원’ 전남 국립의대 신설되나…전남도에 공 넘긴 尹대통령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4.03.15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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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록 지사 의대 신설 건의에 윤 대통령 ‘추진’ 첫 공식 언급 주목
지방시대위원장 “전남에 선물…도가 대학 선정하면 尹 임기 중 추진”
“지자체가 대학 먼저 선정하면” 조건부에 공동유치 부정적 해석도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전남도청에서 열린 호남 첫 민생토론회에서 지역 최대 현안인 전남 국립 의과대학 신설에 대해 언급해 도민의 30년 염원인 국립의대 신설이 가능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의대 불모지’ 전남 국립의대 신설 문제는 그동안 정부 부처와의 간담회, 당정협의회는 물론 선거철이면 어김없이 나왔던 이슈지만, 윤 대통령이 취임 후 공식석상에서 추진 입장을 밝히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전남은 전국 광역시도 중 유일하게 국립 의대가 없어 의대 신설이 지역 최대 숙원 사업으로 꼽혀왔으나 역대 정부에서 난항을 겪어 왔다. 이런 와중에 이날 윤 대통령이 전남지역 의대 신설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일단 청신호가 켜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윤 대통령의 발언에서 ‘전남도가 대학을 먼저 선정해 알려주면‘이라는 조건부 단서가 붙어 의대 신설에 대한 과제를 전남도에 넘겼다는 해석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전남도청에서 ‘미래산업과 문화로 힘차게 도약하는 전남’이라는 주제로 열린 스무 번째 민생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3월 14일 전남도청에서 ‘미래산업과 문화로 힘차게 도약하는 전남’이라는 주제로 열린 스무 번째 민생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연합뉴스

尹 대통령, ‘조건부’ 시사…전남권 국립의대 급물살

윤 대통령은 이날 토론회 말미에 김영록 전남지사의 국립 의대 신설 건의에 대해 “국립 의대 (신설) 문제는 어느 대학에 할 것인지 전남도가 정해서, 의견 수렴해서 알려주면 추진하도록 하겠다”고 짧게 언급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전남도가 먼저 유치 경쟁을 벌였던 순천대와 목포대 중 한 대학을 정해 정부에 요청하면 의대 설립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최근 의대 증원 추진과 맞물려 전남 국립 의대 신설에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관가에선 일단 이날 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전남 의대 설립을 언급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전남도는 반기는 분위기다. 전남도 관계자는 “대통령께서 의대 신설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도 토론회 후 브리핑에서 “다른 지역에서는 의대 설립 요구할 때 대답을 안 하셨다.(이날 대통령의) 예상치 못한 발언이다. 전남으로서는 굉장히 큰 선물을 받은 것 같다”며 “전남도가 대학을 선정해주면 임기 중 추진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신설 언급은 필수 의료가 위협받고 있는 전국 여러 곳의 지역사회와 시민단체 역시 의대 신설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가 신중한 가운데 나와 주목된다. 현재 정부에 의대 신설을 원한다고 밝힌 대학은 11곳이다. 신설을 원하는 대학은 △부산 부경대 △인천 인천대 △대전 KAIST △충남 공주대 △전북 군산대, 국립공공의대 △전남 목포대, 순천대 △경북 안동대, 포스텍 △경남 창원대였다. 증설을 원하는 대학은 울산대와 충북대였다. 

지역 명을 달고 발의된 의대 설립 법안만 8건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같은 전남 내에서도 민주당 김원이 의원은 ‘목포의대’ 설치 특별법을, 같은 당 김회재 의원은 ‘순천의대’ 특별법을 발의했다. 여당 의원들도 자신들의 지역 및 당 텃밭 위주로 의대를 설립해 달라는 법안들을 줄줄이 내놨다. 그런 점에서 이날 윤 대통령의 언급은 전남지역 의대 신설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1월 25일 오후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남 국립의대 신설을 촉구하는
1월 25일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전라남도 국립의과대학 유치 염원 범도민 서울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를 위한 전남도 의과대학 유치를 촉구하는 결의를 하고 있다. ⓒ전남도

공 넘겨받은 전남도 향한 두 시각…‘행복한 고민’ vs ‘과제 떠맡아’

하지만 이날 윤 대통령의 조건부 시사는 순천대와 목포대가 공동으로 의대를 유치하려는 데 대해 부정적 견해를 내놓은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대통령의 언급으로 전남도가 순천대와 목포대 중 의대를 설립할 대학을 선정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는 것이다. 그간 국민의힘 김화진 전남도당 위원장은 김영록 지사가 의대를 설립하려는 순천대와 목포대 중 한 대학을 정해 정부에 요청하면 의대 설립을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고 전했었다.

만약 정부가 대학 입지가 선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남에 의대 신설 입장을 먼저 밝히고 나면 동부권(순천대)과 서부권(목포대)간 갈등이 일어나, 정부도 여론 분열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는 리스크가 있다는 우려다. 또 ‘의대 통합 신청’은 ‘의대 통합 유치’로 받아들여지면서 순천대와 목포대가 대학을 통합하지 않는 이상 의대(부속병원)를 양 대학에 둘 수 있는지도 미지수란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전남도당 관계자는 “대학을 한 곳 정해서 유치 신청을 해야지 통합 신청을 하면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는 전남대 의대 정원을 대폭 늘려 순천과 목포에 분원(부속병원)을 설치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이와는 결이 다른 시각도 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선(先) 대학 선정, 후(後) 정부 추진’이어서 오히려 폭 넓은 선택지가 전남도에 주어졌다는 견해다. 특정 대학을 콕 집어 선정할 지, 두 대학을 통으로 묶어 공동유치 카드를 고수할지 전남도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는 것이다.   

현재 전남도는 의대 신설을 위해 순천대와 목포대 공동 의대 설립 추진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전남도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다양한 가능성은 열어두되 단일 공동의대 설립에 방점을 찍고 추진하는 게 순리라고 본다”며 “순천대와 목포대 공동 의대 설립을 보건복지부에 요청해 관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대 불모지’ 도민 숙원 사업…각계 한목소리 

전남은 1990년부터 전남 국립의대 신설을 추진해오고 있다. 하지만 신설 의대 입지를 놓고서 전남 서부권과 동부권이 ’2분지계‘로 갈라져 혈투를 벌였다. 서부권에서는 의대 부지를 확보하는 등 오래전부터 의대 유치에 뛰어든 목포대가, 동부권에서는 최근 ’글로컬 대학 30‘에 예비 지정된 순천대가 의대 설립에 적합지라고 주장했다. 정치권도 쪼개졌다. 목포와 순천이 각각 지역구인 김원이 의원과 소병철 의원은 서울 용산과 국회에서 의대 신설을 주장하며 삭발하는 등 ‘지역 민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처럼 전남지역 첫 의대 설립을 두고 오랜 기간 전남 동서부 지역을 기반으로 경쟁 관계였던 목포대와 순천대가 마침내 공동 의대 설립에 합의했다. 목포대와 순천대 총장이 지난 1월 22일 순천대에서 만나 전남 국립의대 신설 방안을 논의한 결과, 공동 단일의대를 추진키로 합의했다. 전남지역 의대 신설에 목포대와 순천대 대립 구도가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 있었던 가운데, 두 대학이 공동 설립에 뜻을 모았다. 

정치권과 민관도 뜻을 함께 했다. 김영록 지사는 지난해 전남도-민주당 예산결산협의회에서 국책사업 1개를 포기하더라도 국립의대를 신설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면서 당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전남도는 이미 의대유치추진단을 설치했고, 전문가·경제계·학계·시민사회단체 등이 참여하는 300여명 규모의 범도민추진위원회도 출범시키며 국립 의대 유치에 힘을 쏟고 있다. 

도는 숙원사업인 국립의대 신설을 위해 의대 정원 확대 발표에 2026~2027학년도 전남도 국립의대 신설 정원 100명을 반드시 반영해 줄 것을 정부에 건의한 바 있다. 지난해에는 전남 여야 4당 위원장의 공동 건의문 발표는 전남 의과대학 신설과 정원 배정에 대한 지역 정치권의 뜻을 정부에 전달하고 의대 유치역량을 모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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