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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먹고살기 위해? 심심해서? 어쨌든 일할 때 살아 있음을 느낀다

도시 노인의 생애주기별 실버노동 세계 2주간 밀착 취재

김지영 기자·조아라 인턴기자 ㅣ abc@sisapress.com | 승인 2014.09.17(Wed) 17: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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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우주의 중심으로 보고 현재를 역사의 정점으로 보는 것, 코앞에 닥친 회의가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어쩌면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생활의 지혜일지도 모른다.” 알랭 드 보통이 말한 이 ‘생활의 지혜’라는 것, 바로 일이다.

현실이 그렇다. “목요일 오후 5시30분 팀 회의. 회의 후 팀 회식”이라는 일정을 북한의 미사일 발사보다, 중동에서 일어나는 민간인 총살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 바로 일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는 할 일이 있을 땐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일이 지긋지긋하면서도 일에 감사한다. 바로 이 점, 일이 ‘호모 헌드레드-100세 시대’를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처방약인 이유다. 만 60세 이상 노인들이 사는 세상, 그 세계를 견디게 하는 그들의 일하는 모습을 시사저널이 2주간 밀착 취재했다.

 

   
너무 빨리 찾아온 은퇴의 허탈함 혹은 끝나지 않는 생계의 어려움까지 노인들이 일자리를 원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 연합뉴스

고학력층 노인들, 자존심이 가장 큰 장벽

“늙어갈 때 문제가 되는 건 여전히 젊다는 것이다.” 젊었을 때 읽었던 프랑스 소설책의 문구가 자신의 상황이 될 줄은 몰랐다. 박경자씨(여·62)는 1970년 중앙대 가정과에 입학해 졸업했다. 결혼과 동시에 그만두긴 했지만 학원 강사 생활을 십 수년째 이어왔고, 50세가 넘어서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 부동산 사업을 직접 했다. 남편이 대기업에서 간부급으로 일하고, 현재 남편 소유의 개포동 H아파트에 살고 있다. 아줌마라는 소리는커녕 평생 ‘사모님’ 소리만 듣고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온 인생이다.

그랬던 박씨가 6개월 전부터 청담CGV에서 일을 시작했다. 박씨는 60세가 되기 전 2년 동안 집에만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일을 그만두니 불면증과 우울증이 찾아왔다. 급기야 간수치가 높아져 병원에 입원했다. 큰일 나겠다 싶어 일을 찾았다.

CGV 극장 일은 박씨의 기대 이상이었다. 업무 시간은 오전 11시~오후 4시, 월요일~목요일 주 4회다. 주로 청소를 한다. 화장실 청소가 조금 수고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할 만하다. 그렇게 한 달에 65만원가량을 번다. 70학번 박씨에게 ‘조상님’이라고 했던 손자뻘의 20대 아르바이트생들과도 많이 친해졌다. 할 수만 있다면 CGV가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 하지만 박씨가 CGV에서 일한다는 사실은 그의 친한 친구 몇 명만 안다. “내 친구들은 골프를 치러 다니곤 하는데, (내가) 이 일을 하는 거 알면 ‘어머 얘 봐라. 이런 일을 한다’는 말이 바로 나온다. 한국에선 아직까지 직업에 대한 귀천의식이 있더라.”

경복궁에서 문화해설을 하는 김선태씨(70)는 전직 교장 출신의 이른바 ‘화백’이다. 김씨처럼 매달 330만원씩 연금을 받는 화려한 백수를 줄여서 ‘화백’이라고 한다. 김씨는 연금이 없었다면 ‘화백’ 대신 다른 친구들처럼 ‘새끼’라고 불렸을 것이라고 했다. 은퇴 후 ‘세 끼’ 다 챙겨주기 힘들다고 해서 친구들은 집에서 ‘새끼’라고 조롱당한단다. 김씨는 은퇴 후 36가지가 없어졌다고 했다. 부인·가족 등 가족과의 단절부터 쓰던 방, 자기 전화기 등 소소한 물건까지 다 포함해서다. 김씨는 정년퇴직하기 3년 전부터 은퇴를 준비했다. 대학에서 노인교육 전문가 과정도 6개월 정도 이수하고, 국립민속박물관 전통문화유산 해설 자격증 등도 땄다. 현재 중국어학원을 다니고 있어 중국어도 조금 할 수 있다. 그런 그였는데도 재취업은 쉽지 않았다.

 

‘나 이런 사람이야’라는 자존심이 가장 큰 장벽이었다. 42년간 교단에 섰는데 시험을 보게 하고 떨어뜨린다는 사실이 불쾌했다. “우리끼리는 은퇴 후 취업이 군대 간 거랑 똑같다고 말한다. 자격증 100개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대기업에 있었다는 이력서는 오히려 안 적는 게 더 좋다. ‘나 뭐 했던 사람인데’라고 하면 바로 ‘저 새끼’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면 쫓겨나는 거다.”

박씨나 김씨처럼 중산층, 대졸 이상 고학력노인들 가운데 남의 시선이나 자존심 때문에 재취업을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내놓은 2013년 노인 통계를 보면, 60세 이상 연령층 중 대학을 졸업한 노인의 일자리 참여율은 전체 참여자의 4%(1만1759명)에 불과하다. 초졸 이하 학력자가 전체 노인 일자리 가운데 63.5%인 것과 대조적이다.

70세 이하 중산층 미만 노인, 밥벌이 투쟁 중

도명찬씨(64)는 C편의점에서 11개월 일하다 지난달에 잘렸다. 남양주에서 편의점이 있는 왕십리까지 두 시간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출근한 열정은 지금 생각해보면 ‘미련한 짓’이었나 보다. 다달이 15만원씩 내는 의료보험비가 부담돼 편의점 사장에게 의료보험에 가입해달라고 요구했더니, 바로 해고 통보가 왔다. 아르바이트라도 4대 보험을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법은 현실에서 무용지물이었다. 퇴직금이라도 받으려면 1년은 있어야 하는데 1년이 되기 한 달 전에 사장은 그만두라고 했다.

밤 10시부터 아침 8시까지, 주5일 10시간씩 일한 도씨에게 현재 남은 것은 질병뿐이다. 낮과 밤이 바뀌다 보니 불면증이 왔다. 잠을 잘 못 자 몸이 퉁퉁 붓고, 편의점에서 일하는 10시간 동안 화장실을 참다 보니 소변 볼 때도 이젠 아프다. 석 달 전쯤에는 제품을 진열하다 다리 인대가 늘어나 한 달가량 고생했다.

하지만 도씨는 일을 쉴 수가 없다. 도씨의 부인은 당뇨와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구입한 32평 아파트 대출금은 연거푸 사업에 실패해 아직 다 갚지 못했다. 프로게이머에서 은퇴한 아들, 출가해 마땅한 일이 없는 딸에게 손 벌리자니 면이 안 선다. 의료보험비, 아파트 관리비, 대출금, 교통비, 부인 병원비 등을 합치면 매달 100만원이 필요하다.

실제로 도씨처럼 생계를 위해 일을 하는 노인은 많다. 지난 5월 통계청 자료를 보면, 55~79세 고령층 경제활동인구의 절반 이상(54%)이 ‘생활비에 보탬’을 이유로 일을 원했다. 육체적으로 무리

   
 

가 가더라도 10~12시간 장시간 근무하는 ‘인력 파견형’에 종사하는 60~69세 노인이 전체 노인 일자리의 69.9%에 달한다는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보고서(2013년)도 있다. 인력 파견형 직종은 주로 여성의 경우 베이비시터나 식당 일, 남성은 주차장 관리나 경비, 편의점 등의 일을 말한다.

생계 때문에 일을 해야 하는 노인에게 질병은 재앙이다. 19개월 된 영지(가명)를 돌보는 장정옥씨(여·64)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감기다. 지난번에 목감기에 한 번 걸렸는데 아기를 돌보다 병을 옮겨 아이가 고열로 병원에 간 적이 있기 때문이다. 재작년 말에는 눈길에 미끄러져 왼팔이 부러졌다. 철심 6개를 박아야 했던 것보다  6개월을 쉬어야 하는 게 더 한스러웠다.

지난해까지 택시를 몰았던 최해백씨(61)는 잦은 병치레로 올 1월에 택시회사에서 잘렸다. 교통사고로 2년 전에 심장수술을 받고, 목 디스크까지 와 치료가 불가피했지만 잦은 병원행은 근무 태만으로 인식됐다. 택시에 비하면 지금 하는 빌딩 주차 관리는 휴일도 없이 12시간씩 일하고, 선풍기도 못 놓을 정도로 좁은 공간에서 근무하는 열악한 환경이다. 그래도 최씨는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최씨는 “이 일도 55세 이하를 구한다는 걸 내가 이력서 들고 사장을 직접 수차례 찾아간 끝에 얻게 됐다”며 “내가 아프다는 걸 알면 써주겠느냐”고 반문했다.

서울 동작구 ㄱ업체의 직원식당(급식)에서 만 2년째 근무 중인 진윤자씨(여·66) 역시 아프다. 40대 후반에 한 자궁암 수술 후유증으로 왼쪽 다리가 보통 사람 다리의 두 배 정도로 부었다. 병원에선 100명 중 10~20명에게 오는 임파부종이라고 했다. 순간순간 종아리가 터질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 허리디스크도 있다. 에어컨 없이 늘 가스레인지 옆에서 일해야 하는 작업 환경 탓에 온몸에 땀띠가 나는 건 기본이다. 비닐로 된 작업복을 입으면 흘러내리는 땀으로 화장실에라도 갈라치면 옷이 땀에 젖어 안 내려갈 정도다. 12시간 가까이 칼질을 해대 손가락엔 굳은살이 박이고, 오른쪽 어깨 통증으로 밤에 잘 자지 못한다. 이렇게 아픈데도 이 일을 포기할 수 없다. 신체적 고통보다 자녀들에게 ‘짐’이 된다는 게 더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다른 일을 하면 돈을 적게 주잖아. 그러면 아이들에게 의지해야 하잖아. 90세까지 산다고 하는데 그때는 지금보다 더 아프겠지. 어쩔 수 없이 아이들에게 의지해야 하는데 벌써부터 의지하면 애들이 나를 웬수로 생각할 거 아냐.”

75세 이상 도시 노인은 절대적 빈곤층

더 큰 문제는 75세 이상 후기 고령자들이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 5번 출구 앞에서 돋보기안경을 파는 김영기씨(85)가 대표적이다. 동대문구의 반지하방에서 혼자 사는 김씨는 노점 장사를 2년 정도 했다. 하루 종일 사가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안 팔려. 돈이 없으니까 이거라도 해야지. 누가 나같이 빼빼 마른 사람 쓰겄어. 일도 빠릿빠릿한 사람들한테나 주는겨.”

종로에서 유학원 전단지를 나눠주는 최 아무개 할머니(75)의 상황도 비슷하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전단지를 나눠줘서 손에 쥐는 돈은 7만원. 하지만 단속이 나와 걸리면 구청에 최고 10만원을 토해내야 한다. 지난달에도 5만원이나 냈다.

김씨와 최씨처럼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75세 이상 도시 노인은 절대적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한국은 2014년 기준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노인 빈곤율 1위다. 전체 65세 이상 노인 인구 가운데 47.2%가 빈곤층이다. 노인들이 한국 인구를 소득별로 일렬로 세웠을 때 한가운데에 해당하는 사람의 월 소득의 절반(약 91만원)도 못 벌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한국은 노년층을 위한 연금제도가 제대로 갖춰 있지 않아 이들의 빈곤은 장기화된다. 75세 이상의 노인들은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견뎌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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