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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리더십] 대항해 시대 개막한 ‘항해王’

엔리케 왕자, 치밀한 전략으로 포르투갈을 해양 강국으로 도약시켜

김경준 딜로이트 안진 경영연구원장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14(Sun) 08:00:43 | 13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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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케 왕자(1394~1460)는 유럽의 변방국 포르투갈의 왕 후안 1세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정치적 혼란을 극복한 약소국의 국가 에너지를 해외 개척으로 분출시켜 해외 영토를 확보하고 부국으로 도약하는 기반을 만들었다. 왕자 신분으로 평생을 아프리카-아시아 항로 개척에 헌신한 그의 사후 다음 세대에서 이뤄진 포르투갈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 항로 개척, 에스파냐가 후원한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으로 시작되는 대항해 시대를 개막한 항해왕으로 세계사에 족적을 남겼다.

 

포르투갈(Portugal)이라는 국가명은 라틴어의 포르투스 칼레(Portus Cale)로 ‘서쪽의 항구’라는 의미에서 유래했다. 유럽의 서쪽 끝으로 대서양에 면해 지중해 권역과 영국-북유럽을 이어주는 항로상 중계지라는 지정학적 중요성이 있었으나 로마·베네치아·제노바 등 이탈리아 도시들이 정치·경제적 주도권을 행사하던 르네상스 시대에는 변방의 약소국에 불과했다. 엔리케의 부친인 후안 1세는 아비스 기사단장으로 일종의 용병대장이었으나, 당시 포르투갈 왕이 아들 없이 사망하면서 발생한 정치적 혼란의 와중인 1385년 왕으로 추대돼 포르투갈 아비스 왕조의 시조가 됐다. 후안 1세의 옹립에 불만을 품고 침공한 카스티야를 막아내고 평화조약을 체결하면서 국내 정치적 혼란은 종결됐으나, 신생 왕조는 정치·경제적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야 존립할 수 있는 취약한 입장이었다.

 

엔리케 왕자 초상화


엔리케, 세우타 정복해 국가적 신망 높아져

 

내란과 카스티야와의 전쟁에서 성장한 군사집단들은 무력을 분출할 대상이 필요했고, 아비스 왕조의 설립을 지원했던 상인계층도 전쟁 후의 불황 속에서 탈출구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후안 1세는 이베리아 반도 남부에 남아 있던 이슬람 세력을 공격해 영토를 넓히고 이익을 취하려 했으나, 엔리케 왕자는 대외 개척으로 눈을 돌려 아프리카 사하라 교역로의 장악을 주장했다. 이베리아 반도의 이슬람 세력들이 오랜 기간 문화·경제적으로 번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프리카와 유럽을 이어주는 사하라 교역로를 통한 중계무역이라고 판단한 그는 사하라 교역로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이베리아 반도 남단의 지브롤터를 마주 보고 있는 아프리카 북단 모로코의 세우타를 공략하기로 결정했다. 세우타는 유럽으로 수입되는 아프리카의 황금과 상아, 중국과 인도 물품들의 일차적 집결지였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은 이슬람 세력에 대한 공격을 명분으로 1415년 세우타 정복에 나섰다. 200여 척의 전함에 1700명의 해군, 1만9000명의 육군을 동원한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포르투갈의 영토로 편입된 세우타 정복을 주도한 엔리케 왕자에 대한 국가적 신망이 높아졌다. 세우타 정복으로 아프리카와 유럽을 잇는 중계무역의 주도권을 확보했고 막대한 세금이 유입되면서 약소국 포르투갈의 도약은 시작됐다. 또한 세우타에 모여드는 아프리카와 아랍 각지의 상인들로부터 아프리카 내륙과 인도·중국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엔리케는 세우타 정복에 만족하지 않고 미지의 대륙 아프리카를 남쪽으로 항해하는 새로운 항로 개척을 구상하며 포르투갈로 귀국해 사그레스 성을 건축하고 아프리카의 험난한 바다를 항해할 수 있는 배와 정확한 항해도 제작을 위한 일종의 연구소를 개설했다. 유럽 전역의 조선 기술자, 항해 기술자, 지리학자, 천문학자가 모여들어 수집한 각종 기행문, 지리서와 지도, 항해 기록 등을 검토하고 연구하면서 미지의 대륙 항해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축적되기 시작했다. 이는 탐험에 대한 엔리케의 개인적 호기심이 아니라 신생국 포르투갈을 위한 장기 구상의 연장선이었다. 엔리케는 해로를 개척해 아프리카 남단에서 물품들을 직접 운반해 올 경우 수익이 대폭 늘어남을 알고 있었다.

 

다년간 축적된 아프리카 항해에 대한 지식에 아랍의 어선을 변형한 카라벨(Caravel)이라는 신형 원양항해 선박까지 개발하고 본격적인 아프리카 항로 개척에 나섰다. 아프리카 남방으로 향하는 대서양에서 1419년 마데이라 제도를, 1427년에는 아조레스 제도를 발견하고 영토로 편입했다. 이는 유럽 국가에 의한 최초의 대양항해로 기록됐다. 마데이라와 아조레스 제도는 이후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 개척과 남아메리카 브라질 등 해외 영토 확장의 전진기지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엔리케 왕자의 탐험은 계속돼 세네갈, 카보베르데, 적도 근방의 기니, 시에라리온까지 진출했다.

 

포르투갈 리스본에 있는 범선을 본떠 만든 약 52m의 기념비. 항해왕이었던 엔리케 왕자가 세상을 떠난 지 500년이 되던 1960년에 이를 기념하고자 세웠다.


엔리케 사후에도 포르투갈 항로 개척 계속돼

 

엔리케 왕자는 1460년 세상을 떠났으나 그가 시작한 포르투갈의 항로 개척은 계속됐다. 1487년에는 바르톨로뮤 디아스(1450~1500)가 아프리카 대륙의 남단에 도달해 희망봉(Cape of Good Hope)으로 명명했다. 1498년 바스쿠 다 가마(1469~1521)는 희망봉을 돌아서 동아프리카 해안을 북상해 인도 캘리컷에 도착했다. 그의 인도 항해는 편도 1년, 왕복 2년가량 걸리는 험난한 여정이었으나, 인류는 역사상 최초로 바닷길로 유럽과 아시아를 직접 연결하는 시대로 진입했다. 인접한 포르투갈의 인도 항로 개척에 자극받은 에스파냐도 바다로 적극 진출하면서 대항해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했다.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 콜럼버스(1446~1506)는 이사벨 여왕의 후원으로 1492년 카리브해에 도착해 신대륙과 유럽을 이었고, 포르투갈 출신 마젤란은 에스파냐 왕실의 후원으로 1519년 세계일주 항해로 세비야(Seville)를 출항해 3년 만인 1521년 귀환했다.

 

엔리케 왕자의 아프리카 항로 개척은 지금 개념으로는 달나라 기지 건설이나 화성 탐험과 같은 원대한 구상이었다. 신생국 왕자로서의 투철한 사명감에 기반해 새로운 시대를 열어 조국을 부강하게 만들겠다는 시대정신에, 항해 관련 지식을 수집하고 검증하는 연구소를 세웠던 치밀한 전략과 실행의 결과 포르투갈은 후세대에 전 세계에 무역기지를 확보하고 인류 최초의 세계 무역로를 운영하는 해양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또한 엔리케 왕자가 주역이 돼 개막한 대항해 시대는 에스파냐-네덜란드-영국으로 주도권이 이어지면서 세계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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